[유영만의 體認知]<80>좌절이 없다면 성취도 없다!

나를 긍정하는 길은 먼저 지금의 나를 부정하는 길이며, 지금의 나를 부정하는 길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길이다. 여기서의 부정은 낡은 나를 경멸하고 철저하게 절망하는 것이다. 정직한 절망만이 희망을 낚을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절망적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절망의 중간이나 그 밑에 걸려 있는 절망인 때가 많다.

절망이 절망적일수록 절망을 뒤집어 희망의 끈을 잡을 수 있다. 대충 대강 절망하면 계속해서 대충 대강 절망을 반복할 수 있다. 나를 철저하게 부정하고 경멸해야 처절하게 절망할 수 있으며, 절망의 끝에서 다시 희망의 싹을 틔울 수 있다. 지금까지 쌓은 학식과 경험을 송두리째 부정하고 경멸하며 환멸을 느껴야 환상을 깨고 새로운 상상을 시작할 수 있다. 지금의 나를 경멸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곧 희망이 있다는 것이며, 위대한 절망과 경멸일수록 존경받을 점이 많다는 것이다.

좌절이 없다는 것은 도전이 없었다는 방증이며, 경멸이 없다는 것은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는 증거다. 한계에 도전하고 경계를 넘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끊임없이 색다른 나로 변신할 수 있다. 좌절이 없다면 성취도 없다. 결핍된 상황은 수중에 있는 재료를 십분 활용해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한계가 없다면 예술은 불가능하다. 한계는 집중을 낳는다. 한계는 맞서는 데 그치지 않고 협력해야 할 대상이다. 시냇물은 장애물에 부딪혀야 노래한다.” `놀이,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을 쓴 스티븐 나흐마노비치의 말이다.

한계는 한계라고 생각하는 지점에, 경계는 넘을 수 없는 한계라고 생각하는 지점에 존재한다. 나의 한계를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계를 넘어서는 경험을 해보는 것이다. 한계를 경험하지 않고서는 한계를 알 수 없다. 불가능도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에 불과하다고 하지 않는가. 불가능을 뛰어넘는 유일한 방법은 불가능에 도전해보는 것이다. 불가능에 도전하지 않고서는 불가능을 알 수 없다. 한계와 불가능에 도전해봐야 이전과 다른 방법으로 한계와 불가능에 도전하는 방법을 체험으로 깨달을 수 있다. 한계와 불가능에 도전하는 방법을 깨달으려면 한계와 불가능에 도전하는 수밖에 없다.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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