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께서 오십니다.”
회의실 입구에 서 있던 정보통신부 직원이 실내를 항해 나직이 말했다. 기자들의 시선이 화살처럼 중회의실 입구로 쏠렸다. 강봉균 정보통신부 장관(재경부장관 역임, 현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이 발표자료를 손에 들고 모습을 드러냈다. 다소 소란스럽던 중회의실이 이내 조용해졌다.

1997년 6월 13일 오후 두 시 97신규통신사업자 선정결과 발표장인 정보통신부 21층 중회의실.
강봉균 장관은 기자들을 향해 가볍게 눈인사를 한 후 97신규통신사업자 선정결과를 발표했다. 사진기자들의 플래시가 `펑펑` 터졌다.
“지금부터 신규통신사업자 선정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정통부가 5개 서비스 분야에 사업권을 신청한 16개 업체의 심사를 한 결과 시내전화 독점체제를 복수경쟁체제로 전환시킬 제2 시내전화사업자로 데이콤 주도의 `하나로통신`(가칭)을 확정했습니다. 또 제3 시외전화사업자로는 지난해 국제전화사업권을 따낸 온세통신을 선정했습니다.”
이날 신규통신사업자 선정으로 지난 1990년부터 정통부가 추진한 국내 통신산업 구조개편 작업은 마무리됐다. 제2 시내전화사업자가 등장하게 됨에 따라 100년 만의 시내전화 독점체제라는 둑이 무너졌다. 이에 따라 1998년 통신시장 개방을 앞두고 국내 통신시장은 전면 경쟁체제로 바뀌었다. 아울러 외국통신사업자들의 국내 진출에 대비해 국내사업자들은 수비벽을 구축했다.
강 장관은 계속 분야별 사업자 선정결과를 발표했다.
“회선설비 임대사업은 국내회선 설비임대사업을 신청한 한국전파기지국관리와 드림라인이 적격 판정을 받았기에 각각 사업권을 허가했습니다. 국제회선 임대사업에서는 온세통신을 선정했습니다. 그러나 국제회선 설비임대사업에 가허가를 신청한 APII와 현대전자산업·삼성전자 3개 업체는 오는 7월 심사를 완료할 계획입니다.”
정통부는 또 제일텔레콤과 부경이동통신, 21세기통신이 경쟁을 벌였던 부산·경남권 무선호출사업자로는 부경이동통신을 선정했다.
지역주파수공용통신(TRS)사업권은 충남TRS와 충남텔레콤이 경쟁을 한 대전·충남권에서는 충남TRS가 뽑혔다. 전북이동통신과 전북TRS가 2파전을 벌인 전북지역 TRS사업권은 전북이동통신에 돌아갔다. 2 대 1의 경쟁을 보인 강원권 TRS사업권은 강원텔레콤이 차지했다. 충북권에서는 단독 신청한 새한텔레콤이 사업권을 따냈다.
강 장관은 97신규통신사업자 심사와 관련,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사업자를 선정한다는 원칙 아래 통신망 고도화, 정보통신 관련 기술개발 촉진, 중소기업 육성 및 지원, 전문인력 양성에 중점을 두고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정통부는 발표에 앞서 이날 오전 10시 21층 중회의실에서 열린 정보통신정책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쳤다. 청와대에는 별도로 최종 선정결과를 보고했다.
당시 심의위원장이었던 곽수일 교수(현 서울대 명예교수)의 회고.
“심사결과에 대해 위원들 간 이견은 없었습니다. 시내전화사업자는 데이콤 컨소시엄인 하나로통신(가칭)이 단독 신청한 상태여서 경쟁자가 없었고 다른 분야 경쟁률도 과거에 비해 높지 않았습니다. 정통부는 심사기준에 따라 사업자를 공정하게 선정했어요. 사업자 선정은 과거에 비해 차분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습니다.”
정통부가 적격만 심사한 하나로통신은 시내망 고도화 및 초고속 멀티미디어 개발을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사업목표를 제시, 총점 81.29점을 받아 제2 시내전화사업자로 뽑혔다.
시외전화사업은 1차 사업계획서 평가에서는 한국고속통신이 82.23점을 얻어 79.71점을 받은 온세통신에 앞섰으나 2차 일시출연금 심사에서 온세통신이 490억원, 한국고속통신이 245억원을 제시해 온세통신이 선정됐다.
강 장관은 이날 이례적으로 사업권 신청업체의 심사 항목별 점수와 총점을 모두 공개했다. 96신규통신사업자 선정 때는 채점표를 공개하지 않았다. 정통부의 이날 점수 공개는 투명하고 공정하게 심사했다는 자신감의 결과였다.
97신규통신사업자 선정에서 실무작업을 한 이규태 정통부 통신기획과장(서울체신청장 역임, 현 한국IT비즈니스진흥협회 부회장)의 증언.
“사업자 선정과정은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진행해 아무 하자가 없었습니다. 그런 자신감이 심사위원과 점수를 모두 공개하게 한 배경이었습니다. 과거에 비해 사업자 간 치열한 경쟁이나 비방이 없었습니다. 일부에서 심사결과 발표 요구를 했습니다. 정통부는 심사결과를 공개해야 잡음이 나오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시외전화사업 티켓을 놓고 2파전을 벌였던 온세통신과 한국고속통신의 성적표였다.
1차 사업계획서 심사에서는 한국고속통신이 82.23으로 79.71점을 받은 온세통신보다 박빙의 차이로 앞섰다. 그러나 2차 출연금 심사에서 온세통신은 490억원을 제시한 반면에 한국고속통신은 245억원을 써냈다. 결과는 온세통신이 사업권을 따냈다. 한국고속통신은 출연금을 적게 제시해 탈락했다. 돈이 승패를 갈랐다.
3파전을 벌였던 부산·경남권 무선호출 분야는 시외전화사업 심사와는 반대 현상이다.
사업권을 따낸 부경이동통신과 경쟁사인 제일텔레콤, 21세기통신은 출연금으로 모두 28억원을 제시했다. 하지만 심사항목별 점수에서 부경이통이 81.49점을, 제일텔레콤과 21세기통신은 각각 78.57점과 79.91점을 받아 탈락했다. 점수가 당락을 결정했다.
사업권을 얻으면 일시에 정통부에 내야 하는 출연금 제시액은 하나로통신이 450억원을 제시했다. 이 금액은 시외전화사업자인 온세통신이 써낸 490억원보다 적었다.
강 장관은 사업자 선정결과 발표 후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했다.
-97신규통신사업자 선정 의미는.
▲이번 신규 통신사업자 선정으로 통신시장 개방에 대비한 경쟁체제 구도가 마무리됐다. 시내전화를 비롯해 모든 통신서비스가 경쟁체제로 변했다. 정부가 추진해온 선(先)국내 경쟁 후(後)국제 경쟁으로 국내업체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앞으로 통신시장 개방에 대비해 분야별 통신사업자들이 얼마나 이용자 편익에 충실하느냐가 경쟁의 관건이다. 소비자야 당연히 값싸고 품질 좋은 서비스를 선택할 게 아닌가.
-심사항목별 점수와 총점을 모두 공개했는데 이유는.
▲96신규통신사업자 선정 때는 점수를 공개하지 않았다. 신청업체의 영업이나 기술력, 재무상태를 평가해 혹시 기업비밀이 공개될 수 있어서였다. 그런데 비공개로 하자 잡음이 일고 공정성과 투명성에 의혹을 제기했다. 올해 심사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한 것은 그런 잡음을 없애기 위해서다. 물론 일부의 공개요구도 있었다. 공정하게 심사했고 일부이긴 하나 점수공개를 원하는데 구태여 비공개로 할 이유가 없었다.
-하나로통신의 2대 주주인 두루넷과 한국전력의 동일인 여부는 어떤 결론을 내렸나.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두루넷과 한전을 동일인으로 볼 수 없다는 해석을 받았다. 그래서 법적인 문제는 없다는 게 정통부의 판단이다.
-앞으로 정통부의 통신정책 방향은.
▲일단 이번 사업자 선정으로 외형적인 경쟁구도는 마무리했다. 기업의 경쟁력은 이제 기업들 몫이다. 정부는 업체들의 경쟁력 강화를 지원하고 핵심 기술 개발에 노력하겠다.
97신규통신사업자 선정은 1996년과 달리 조용하게 끝났다. 과거처럼 사업자 간 상호 비방이나 사전 내락설로 인한 문제 제기가 없었다. 사업자 발표 후 일상이 되다시피 한 탈락기업들의 이의 제기나 반발이 없었다.
7월 8일 오전 10시.
국회 통신과학기술위원회(위원장 박구일)는 강봉균 정통부 장관과 박성득 차관(현 한국해킹보안협회장)을 비롯한 간부들을 출석시켜 정통부 주요 업무계획을 보고받았다.
강봉균 장관의 인사말이 끝나고 이성해 기획관리실장(현 큐엔에스 회장)이 97신규통신사업자 선정과정과 심사결과를 보고했다.
“사업자 선정심사는 1차와 2차로 나눠 실시했습니다. 1차는 전기통신사업법에서 규정한 기간통신역무 제공계획 타당성의 6개 항목에 대해 적격성을 심사했습니다. 2차는 허가대상 사업자별로 정한 출연금을 제시토록 해 최고액 순으로 선정했습니다. 같은 출연금이면 1차 점수 순으로 결정했습니다. 14명의 대학교수, 연구기관의 정보통신 관련 전문가들로 자격심사반과 비계량평가반, 계량평가반을 구성해 심사했습니다. 자격심사는 신청법인의 법적사항을 다뤘습니다.”
정통부 업무에 관해 의원들의 질의가 시작됐으나 97신규통신사업자 선정에 관해서는 별 질의가 없었다. 유용태 의원(노동부 장관 역임)만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따졌다.
△유용태 의원=결과적으로 돈 많이 낸 기업이 사업권을 따냈다는 말이 아닌가.
△이성해 실장=1차 심사를 통과한 업체는 그렇다.
△유용태 의원=정통부 관계자 중에서 심사위원으로 누가 들어갔나.
△이성해 실장=아무도 안 들어갔다. 공정한 심사를 위해 공무원이 심사위원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97신규통신사업자 선정으로 국내 통신시장은 이른바 소비자 선택시대에 접어들었다. 이는 소비자가 공산품을 사듯 품질 좋고 값싼 서비스를 골라 쓰는 시대 개막을 예고했다. 통신사업자 간 소비자 모시기 경쟁이 치열하게 시작하는 출발점이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