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피아식별

`피아식별(彼我識別)`은 우리 편과 경쟁 상대를 구분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군대에서는 피아 구분을 위해 암구호를 사용한다. 어깨나 허리에 우리 편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별도의 띠를 두르기도 한다.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누가 적군이고 누가 우리 편인지 분명히 아는 게 기본이다.

산업계에도 피아식별이 요구된다. 그런데 누가 도움이 되는 사업자인지, 누가 잠재적 경쟁자인지 헷갈린다. 요즘 기업의 사업영역 구분이 모호해졌기 때문이다.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주 원인은 기술·산업의 융합이다.

인터넷 검색업체였던 구글은 더 이상 야후나 네이버만의 경쟁자가 아니다. 고유 콘텐츠에다 운용체계(OS) 개발 능력이 부각되면서 구글은 TV 제조업 1위인 삼성전자가 가장 경계하는 대상 가운데 하나가 됐다. 그렇다고 삼성전자와 구글이 꼭 경쟁만 하는 것도 아니다. 삼성전자 역시 구글 안드로이드 OS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팔고 TV에서도 협력을 진행 중이다.

오랫동안 TV 사업에서 경쟁해 온 삼성전자와 소니도 꼭 대척점에만 있지 않다. 삼성과 소니는 오랜 액정디스플레이(LCD) 패널 동맹 관계였다. 차세대 TV로 꼽히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분야에서도 이들 두 회사의 협력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기업 세계에서 피아식별이 어차피 어려워졌다. 차라리 복잡해진 업계 구도를 인정하는 것도 방법이다. 우리 편인지 경쟁자인지 분석할 시간에 자신이 원하는 생태계로 다른 기업을 끌어들이는 게 더 유리하다. 때로는 경쟁자와 협력도 필요하고 이익 공유 모델을 찾아볼 수도 있겠다. 더 큰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주변과의 동맹도 생각할 수 있다. 핵심은 복잡해진 생태계에서 주도권을 놓치지 않는 일이다.


김승규 전자산업부 차장 seu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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