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신규통신사업자 허가(1)
“누가 신규 통신사업권을 따낼 것인가.”
1997년 신규통신사업자 선정은 마이너리그에 속했다. 1996년도 통신사업자 선정은 메이저리그였다. 재벌들의 혈투였다. 하지만 마이너리그라도 승자에게는 도약의 기회였다. 패자에게는 위기였다.
국내기업들은 미래사업인 97신규통신사업자 허가를 놓고 승자와 패자라는 필연의 갈림길 앞에 서야 했다.
새해 업무를 시작하는 첫날인 1월 3일 오전 정보통신부 21층 대회의실.
강봉균 정통부 장관(지경부 장관 역임.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은 시무식에서 신년사를 통해 “올해는 정보화 시대의 새 길을 여는 한 해가 될 것이란 꿈과 믿음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면서 “정보화 시대 세계의 주역이 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나가자”고 말했다.
강 장관은 “역점으로 추진해야 할 사업이 많지만 올해는 통신사업 경쟁체제를 정착시켜 더욱 값싸고 품질 좋은 통신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면서 “올해 시내전화와 시외전화 부문에 각각 1개의 사업자를 추가로 허가해 국내 경쟁체제를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강 장관의 이날 신년사는 한국통신(현 KT) 시내전화사업 독점체제 붕괴를 의미했다. 신규 통신사업자 선정은 정보통신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선(先)국내경쟁 후(後)국제경쟁`이란 정책에 따른 조치였다. 이런 원칙에 따라 정통부는 내부 토론과 전문가 그룹 연구결과를 토대로 97신규통신사업자를 허가하기로 결정했다.
97신규통신사업자 허가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시내·시외전화사업자 선정이었다. 이는 통신서비스 경쟁 시대를 알리는 서막이었다. 나머지는 지역 부문 통신사업자 허가여서 비중이 크지 않았다.
그해 1월 20일.
정통부는 새해 주요 업무계획을 발표했다. 정통부는 신규 통신사업자 허가 방침과 통신요금 정책 방향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정통부는 시내와 시외 전화, 주파수 공용통신(TRS), 위성 해저광케이블 임대사업 및 무선호출 부문 사업자를 신규 허가하겠다고 밝혔다. 정통부는 이를 위해 역무별 허가심사기준, 허가신청 요령을 사전에 고시하기로 했다.
정통부는 통신요금에 관해 자율성을 확대해 신고제로 전환하고 지배적사업자 요금만 인가하기로 했다. 정통부는 이용자 요구에 부응하는 다양한 요금제도 도입하고 역무별 경쟁상황과 시장 영향을 고려해 가격상한제의 단계적 도입도 검토하기로 했다.
한국통신의 경영효율화와 민영화를 위해 한국통신을 정부출자 기관으로 전환해 내부 경영 혁신과 책임경영 체제를 구축하기로 했다. 한국통신 정부 지분은 71%에서 49%로 줄이기로 했다.
그해 1월 31일.
정통부는 재계의 관심이 집중된 97신규통신사업자 허가 신청요령과 심사기준 시안(試案)을 발표했다. 말 그대로 임시 기준안이었다.
이 허가업무라인은 서영길 정보통신지원국장(TU미디어 사장 역임. 현 IGM세계경영연구원장)과 이규태 통신기획과장(서울체신청장 역임. 현 한국IT비즈니스진흥협회 부회장)이었다.
이 업무를 총괄한 서영길 국장의 증언.
“시안은 내부 논의를 거쳐 마련했습니다. 이미 지난해 PCS(개인휴대통신) 등 신규통신사업자를 선정한 경험이 있어 시안 마련에 별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정통부는 이 시안에 대해 2월 1일부터 6일까지 전자공청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해 최종 방안을 확정키로 했다. 정통부는 허가신청 요령과 심사기준(안)을 컴퓨터통신망 하이텔과 천리안 매직콜(go.mic)에 올리고 통신사업 희망업체를 비롯한 각계의 의견을 수렴했다.
전자공청회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이규태 과장이었다. 그는 1995년 12월 신규통신사업자허가안과 관련해 전자공청회를 국내 처음으로 열어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적이 있었다.
당시 이규태 과장의 기억.
“전자공청회는 시간과 장소의 제약이 없습니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지요.”
정통부는 전국 시내전화와 시외전화, 부산, 경남지역 무선호출, 대전과 충남, 충북, 전북, 강원지역 주파수공용통신 등 7개 통신부문 사업자를 6월 중 확정하기로 했다.
정통부가 발표한 시안 중 가장 큰 특징은 심사항목 중 `전문기술인력양성과 훈련을 위한 투자계획`에 가장 높은 점수를 배정한 것이다. 그 대신 1996년 심사에서 중요하게 다뤘던 `도덕성 평가` 항목은 제외했다. 정통부는 이번에도 지역 통신사업자의 경우 30대 그룹 참여는 배제했다.
시내전화는 초고속통신망 서비스가 가능한 신기술이나 광대역 통신방식을 투자계획에 포함시킨 신청기업이나 전국적인 망고도화 계획이 우수한 컨소시엄은 우대하기로 했다. 또 기존 통신사업자나 자가통신설비를 보유한 공기업, 초고속망사업 희망업체, 통신제도업체 등으로 구성한 컨소시엄은 점수를 더 주기로 했다.
신규통신사업 참여기업들이 서비스 지역을 분담해 영업하는 방식을 제안할 경우 가점을 주기로 했다. 시외전화는 기존 통신사업자 등 선발업체 경쟁 기반을 조기 구축할 수 있는 기업이나 컨소시엄은 우대하기로 했다.
주파수공용통신은 강원과 전북, 충북, 대전, 충남 등지의 해당 기업을 우선 선정하고 무선호출은 시장규모가 1500억원 이상인 부산지역에 제2사업권을 허가해 주기로 했다.
전자공청회에는 각계의 다양한 의견이 제기됐다.
하지만 정통부는 지난해처럼 실시간으로 질의응답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과거처럼 별 쟁점이 없었고 이미 한 번 통신사업자 허가 경험을 가진 정통부가 미흡했던 기준을 사전에 보완했기 때문이었다.
그해 2월 26일.
정통부는 그동안 수렴한 각계의 의견을 반영해 97신규통신사업자 허기신청요령 및 심사기준 고시안을 확정, 발표했다. 서영길 정보통신지원국장이 기자실에서 고시안을 브리핑했다.
정통부는 고시안 확정 전에 정보통신정책심의위원회 의결을 거쳤다.
정보통신에 대한 주요 정책을 심의하는 정보통신정책심의위원회는 곽수일 서울대 경영대학원장(현 서울대 명예교수)이 위원장이었다.
위원은 안병우 재경원 제1차관보(예산청장. 충주대 총장 역임 )와 정홍식 정통부 정책실장(정통부 차관 역임. 현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이사장), 박한규 연세대교수(현 명예교수), 양승택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정통부 장관. 동명대 총장 역임. 현 인터넷스페이스타임 컨소시엄 대표), 박성규 대우통신회장 등 산학연언관 시민단체 인사 19명으로 구성했다.
당시 곽수일 위원장의 회고.
“당시 정통부 고시안에 대해 아무 이견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한국통신에서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정통부가 확정 고시한 내용은 시안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다만 일시 출연금 상한액을 내려 참가기업 재정 부담을 줄여주고 허가신청 업체 편의를 돕기 위해 불필요한 서류를 대폭 축소한 게 다른 점이었다.
제2시내전화사업자와 제3시외전화사업자의 일시출연금 상한액이 860억원과 490억원으로 각각 결정했다. 일시출연금 상한액은 허가대상 서비스별로 5년간 총 예상매출액 7%(하한액은 3.5%)로 정했다. 시내전화는 통화료와 기본료를 합해 예상매출액을 산정했다. 지난해 사업권을 얻은 PCS(개인휴대통신) 사업자는 일시 출연금 상한액은 1100억원 선이었다.
지역별TRS사업은 일시 출연금 상한액은 대전과 충남권이 3억원, 충북과 전북권은 각각 2억원, 강원권은 1억원으로 결졍했다. 부산과 경남권의 무선호출 사업자는 28억원을 상한으로 정했다. 희망지역에 대해 사업권을 부여키로 한 전기통신회선설비임대 역무의 경우 출연금은 사업자 선정후 부과하기로 했다.
서영길 국장의 설명.
“공청회를 거쳐 의견을 수렴한 결과 1996년 통신사업자 선정 당시 출연금이 너무 많아 사업자 부담이 컸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내 및 시외전화 사업자들의 사업 개시 후 5년간 예상 시장점유율을 5% 선에 머물 것으로 판단해 상한액을 내린 것입니다.”
정통부는 사업허가 신청 시 제출하는 서류도 대폭 간소화했다.
지난해 통신사업자 허가 시 신청서류가 방대해 신청업체의 부담이 적지 않았다. 당시 허가신청 업체마다 허가서류가 너무 많아 대형 트럭에 서류를 싣고 가는 불편함을 겪었다.
이런 점을 고려해 정통부는 중소기업확인서와 대주주를 제외한 5% 이상 주주에 대한 동일인 관계 증빙서류, 기존 기간통신사업자의 변경 허가 신청 시 구성주주 명세, 대주주와 관련된 법인등기부등본, 임원의 호적등본 등은 제외시켰다.
심사는 1차와 2차로 구분했다. 1차는 사업계획서를 심사하고 2차는 일시출연금 심사로 허가업체를 선정하기로 했다.
이규태 통신기획과장의 말.
“지난해 심사와는 달리 97사업자 선정 시 청문심사는 하지 않았습니다. 필요한 경우에는 청문심사도 할 수 있도록 했으나 실제 청문심사는 없었어요. 그럴만한 일이 없었습니다.”
1차 사업계획서 심사에서는 6개 심사항목별 적격여부를 판단하기로 했다. 점수는 100점 만점에 60점 이상을 받아야 하며 전체 평균 70점 이상을 얻어야 합격이었다.
심사항목 및 배점은 △기술개발 실적 및 기술개발계획의 우수성(30점) △기술계획 및 기술적 능력의 우수성(20점) △허가신청법인의 적정성(20점) △기간통신역무 제공계획의 적정성(10점) △전기통신설비규모의 적정성(10점) △허가신청법인의 재정적 능력(10점) 등이다.
정통부는 신규 통신사업자 허가 계획을 그해 3월 열린 국회 통신과학기술위원회에 보고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