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ICT 분야는 8만명 정도 인력이 부족할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이야기다. 혁신과 변화가 간절히 요구되는 스마트시대에 이공계 출신 전문가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과학과 기술을 천대하던 조선 시대 사회구조로 돌아가고 있다. 고등학생은 이과보다 문과를 선호하고 대학에서도 졸업 후 취업이 잘 안 되는 순수 과학(수학, 물리 등) 관련 학과는 정원을 채우지 못하거나, 학과 서열에서 뒤로 밀린다. 기업에서 봉급만 보더라도 이공계 출신보다는 비이공계 출신 봉급이 훨씬 많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앞으로 우리 미래는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
미국 루슨트 테크놀로지는 매년 매출의 11%(약 30억달러)를 벨연구소의 R&D 비용으로 지원한다. 특이한 점은 이중 1%를 순수학문 분야에 사용하도록 못 박고 있다는 점이다. 즉 단기적인 기술 성과보다는 중장기적인 혁신 아이템 발굴에 더 많이 지원한다는 증거다. 다른 글로벌 ICT 기업도 다소 차이가 있지만 비슷한 R&D 정책을 가지고 있다. 기술은 순수과학의 응용이다. 순수과학에 바탕을 두지 않은 기술은 결국 혁신과 변화의 사회에서 승자가 되기 어렵다. 순수과학을 전공하면 일자리를 찾기 어렵고, 찾더라도 중요성에 비해 대우가 안 좋은 우리 현실과 거리가 있다.
50~60년대 전후 복구의 어려움과 가난을 극복하고 반도체·휴대전화·TV·자동차 수출로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 된 데는 과학자와 기술자의 피와 땀이 있었다. 지금도 거대 글로벌 ICT 기업과 경쟁에서 이기려면 과학과 기술이 중요하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에서 이공계 육성을 위한 실천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과학기술 전문성이 요구되는 예산이 국가 전체 예산의 삼분의 일 정도에 이르는 데도 이를 심의할 국회의 이공계출신 의원은 5%도 안 되는 상황이다. 민생 현안 처리도 불투명한데 이공계 육성 대책이 무슨 중요한 안건이 되겠는가. 정부 부처의 주요 보직은 대부분 행정고시 출신 차지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부처별 전문성을 갖기 위해 특채로 고용된 이공계 출신은 일만 죽도록 하고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가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부처의 장차관급 고위층에도 이공계 출신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기업의 CEO 자리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연구의 성공과 실패를 구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연구 성과가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서 이를 실패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다. 그러므로 연구의 상업적 성공이 연구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서는 안 된다는 철학이 필요하다. 연구 위험성을 고려해서 주제를 제한하고 진행한다면 혁신과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하기가 어렵다. 미국 통신 분야의 대표 연구기관인 벨연구소에서는 성공 여부를 얼마나 “서프라이즈” 한가라는 잣대로 판단한다고 한다. 일반 연구소에서는 2~3년 안에 성과가 나와야 성공했다고 평가하지만 벨연구소에서는 깜짝 놀랄만한 성과를 내는 것을 가장 가치 있게 평가한다. 국가 예산이 수십억이 투자되었는데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다고 과제 자체를 중단하거나 기존의 예산을 대폭 삭감하거나 아니면 국책연구기관의 과제 책임자가 추궁을 당하는 우리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다.
미래의 나라 경쟁력은 ICT 경쟁력에 더 많이 의존할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21세기 선진국이 되려면 이공계 출신 과학기술자는 사회적 관심과 존경 속에 자긍심을 갖고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미래가 확실히 보장되는 환경을 반드시 조성해야 한다. 과학 기술인을 우대하고 과학기술에 집중 투자할 때 우리의 밝은 미래도 따라온다.
유지상 광운대 교수(jsyoo@kw.ac.kr)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