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통신장비 공급사가 중계기 업체들에 약속한 기술 이전을 꺼려 업계가 혼란에 빠졌다. 지난해 의욕있게 출발한 통신사와 장비공급사, 중소 중계기업체의 동반성장 프로젝트가 헛바퀴를 돌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 LG에릭슨, 노키아지멘스네트웍스(NSN) 등 주요 통신장비업체는 자사 핵심 규격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에 LTE 장비를 공급하는 이들 3사는 지난해 상반기 중기 동반성장이라는 명분 아래 중계기 업체에 소형기지국(RRH:Remote Radio Head) 기술 이전을 약속했다. 프로젝트에는 방송통신위원회와 통신3사가 함께 참여했다.
이 사업은 처음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장비 공급사가 인터페이스 공개를 미뤘기 때문이다. 난항 끝에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 인터페이스 이전이 이루어졌지만, 중계기 업계는 다른 난관에 부딪혔다. 장비공급사가 표준 규격 외에 특수 규격을 공개하지 않아 상품을 만들어 놓고도 시장에 내놓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삼성전자, LG에릭슨, NSN은 각각 `CPRI` `OBSAI` 규격 속 세부 항목에 자사 LTE 기술을 집약해 놓고 있다. 이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장비(RRH)는 LTE망을 구성하는 디지털유닛(DU)과 라디오유닛(RU)을 연결할 수 없다. 통신사에 장비를 공급하는 벤더사와 RRH를 생산하는 중계기 업체의 규격이 맞지 않으면 제품은 `무용지물`인 것이다.
중계기 업체 한 임원은 “장비 공급사가 특수 규격을 공개하지 않아 제품을 상용화하지 못하는 상태”라며 “고품질 LTE 장비를 싼 값에 공급하고 중계기 업체가 기지국 기술을 확보한다는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에 장비 공급사는 `할 만큼 했다`는 입장이다. 장비공급사 관계자는 “약속한 수준에서 인터페이스 공개가 이루어졌다”며 “중소업체가 소프트웨어 인력이 부족하고 기술력이 없어 기술 이전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핵심 규격을 공개해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자사 기술을 함부로 열수 없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억측이라는 게 중계기 업계의 목소리다.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일부 업체의 소프트웨어 인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핑계로 기술력이 있는 회사까지 이전을 꺼리는 것은 꼼수”라고 반박했다.
통신 동반성장 프로젝트가 지지부진 한 것은 이를 관리·감독하는 통신사와 방통위 책임이 크다. 중계기 업체 위에 있는 장비공급사가 알아서 기술 이전를 바라는 것은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과 상위 사업자의 지속적인 감시와 조율이 필요하지만 사실상 이 프로젝트는 방치돼 왔다.
구교광 네트워크산업협회 사무국장은 “기획 단계에서 세부 항목을 설정하지 않고 명분에 취해 계획 없이 사업이 시작된 것이 문제”라며 “이후 관리 단계에서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 중계기 업체들이 속병을 앓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공급사를 압박할 수 있는 통신사와 방통위가 나서야 한다는 이야기다.
오히려 지식경제부를 중심으로 대책 마련이 분주하다. 산하 네트워크산업협회는 이 프로젝트에 뛰어든 중계기 업체와 함께 다음 주부터 현황 파악에 나선다. 구 국장은 “정부 대책이 미흡할 경우 동반성장위원회에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겠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