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보통신대학교(7)
허가권자와 피허가권자. 갑(甲)과 을(乙)의 관계다.
한국정보통신대학원대학 인가권을 가진 교육부 문턱은 높았다.
정보통신부는 정보통신대학원대학 설립을 위해 1997년 3월 교육부에 대학설립계획서와 대학헌장을 제출했다. 대학설립 운영규정 시행규칙에 따른 조치였다.
정통부와 교육부간 줄다리기가 이때부터 시작됐다. 정통부는 대학설립추진위원회 위원으로 장오현 교육부 고등교육정책실장(현 동국대 명예교수)을 위촉해 대학 설립기본계획을 심의하고 확정했다. 위원회는 교육부에 대학원대학 설립이 범정부 합의사항이고 법적 근거도 확보한 만큼 1998년 3월 개교에 차질이 없도록 협조해 줄 것을 사전에 요청했다.
그러나 막상 정통부가 대학원대학 설립을 추진하자 교육부 태도는 완고했다. 실무선에서 사사건건 브레이크를 걸었다.
대학원대학 설립을 추진했던 양승택 초대 총장(정통부 장관. 동명대 총장. 현 인터넷스페이스타임컨소시엄 대표)의 회고.
“교육부와 접촉을 해보니 교육부 담당자가 설립추진 직원에게 `교육부는 시골에서 돈 좀 벌었다고 콧대를 세워서 들어오는 사람을 납작 엎드려서 들어오게 만드는 곳`이라면서 연구원 부설로는 허가해 줄 수 없다고 했답니다. 우리 직원이 `KDI는 부설로 할 수 있게 하면서 우리는 안된다고 하느냐`고 항의를 하니 `그건 장관들 사이에 서로 합의된 사항이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정통부에 알아보니 아직 장관간 합의를 못했다고 하더군요.”
양승택 총장의 계속된 증언.
“그 배경을 알아보니 관할권 다툼이었어요. 교육부는 사립학교로 허가해 자기 관할에 두기를 원하고 정통부는 정보통신기금과 통신업계 출연금으로 대학을 설립하니 당연히 관할에 두고자 했습니다. 사립학교로 허가를 받으면 교육부가 관할할 수 있고 사립학교 재단 이사장은 정통부 장관이 맡으면 정통부 소관이니까 그렇게 하는 것으로 양해를 얻고 사립학교로 설립신청서를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1997년 5월 28일. 서울 서초구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서울사무소 회의실.
이날 학교법인 한국정보통신학원 창립총회가 열렸다. 총회에서는 한국정보통신학원 이사장에 강봉균 정통부 장관(재경부 장관 역임. 현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을 선임했다.
당연직 이사로는 정홍식 정통부 정보통신정책실장(정통부 차관 역임. 현 한국정보기술협회 이사장)과 장오현 교육부 고등육실장, 양승택 한국정보통신대학원대학 총장을 뽑았다.
선출직 이사로는 이계철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장(한국통신 사장 역임. 현 방송통신위원장), 정창훈 핵심텔레콤 사장(정보통신중소기업협의회장 역임), 박성규 대우통신 회장(한국통신산업협회장 역임), 김영환 현대전자 사장(한국전파진흥협회장 역임), 이천표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현 서울대 명예교수), 이진 항공대학교 교수(한국통신학회장 역임), 윤덕용 KAIST 원장(현 포스텍 부이사장), 박찬모 포항공대 총장(대통령과기특보 역임. 현 평양과학기술대학 명예총장), 조백제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고문(현 서울디지털대학교 총장) 등이 선임됐다. 감사는 권영수 정통부 감사관(작고. 한국우취연합회장 역임)과 임병선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감사가 공동 선임됐다.
이사장 선임과 관련한 뒷이야기.
처음에는 강봉균 장관이 이사장직에 소극적이었다. 박성득 당시 정통부 차관(현 한국해킹보안협회장)이 교통정리를 했다.
박성득 차관의 회고.
“실무진에게 만약 장관께서 이사장직을 맡지 않으면 차관이 이사장직을 맡겠다고 장관께 보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에 강봉균 장관이 이사장을 맡는 것으로 정리를 했습니다.”
이사회는 대학원대학을 위해 한국전자통신연구원 6연구동과 행정 지원동을 포함하는 일대를 할애하기로 결정했다.
그해 6월 16일.
양승택 총장은 일간신문에 한국정보통신대학원대학교 교수초빙 광고를 냈다.
학부는 정보공학부와 통신공학부, 기초공학부, 산업경영학부 4개 학부로 산업체나 현장 경력자는 우대하기로 했다. 응모자격은 해당 분야 박사학위 소지자로 지원서와 자기소개서, 성적증명서, 석박사 학위증명서, 추천서 경력증명서 등이었다. 그해 7월 12일까지 대학설립추진단에서 접수를 마감했다.
이들에 대한 심사는 7월 하순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서울사무소에서 진행했다. 양승택 총장이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이병기 서울대 교수(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현 서울대 교수)와 김길창 KAIST 교수 등이 분야별 책임자로 심사를 했다.
정보공학부와 통신공학부 심사를 담당했던 이병기 교수의 회고.
“설립추진단에서 사전에 만든 기준에 따라 심사를 했습니다. 저는 정보공학부와 통신공학부 책임자였고 심사위원이 7~8명 됐습니다. 꼬박 이틀간 심사를 했는데 유능한 인재들이 많았습니다.”
설립추진단은 심사결과 모두 27명의 교수를 채용했다. 이중 13명이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출신이고 나머지는 다른 기관 출신이었다.
양승택 총장은 교수들에 대한 대우는 국내 최고수준으로 책정했다. 양 총장은 정보통신대학원대학을 세계 일류학교로 발전시키려면 우수 교수를 확보해야 하고 그러자면 국내 대학 수준보다는 높게 대우해야 한다며 이를 관철시켰다.
양승택 총장의 회고록 증언.
“대학을 처음부터 시작하다보니 모두가 신입 교원이었다. 그 중에 교수 경력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5명에 불과했다. 교수법 교육을 일주일간 합숙으로 실시키로 했다. 허운나 한양대학교 교육공학과 교수(16대 국회의원. ICU 총장 역임. 현 채드웍 송도국제학교 고문)에게 4천만원에 용역을 맡겼다. 충남 천안에 있는 상록회관에서 일주일간 합숙교육을 실시했다.(회고록 `끝없는 일신`에서)
허운나 교수는 서울대를 나와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에서 교육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한양대에 교육공학과를 국내 처음 개설했다. 16대 국회의원 시절 세계IT국회의원연맹을 구성해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허운나 전 총장의 말.
“교육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제자와 팀을 구성해 교수활동을 효과적을 수행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교수방법과 문제해결 방법을 비롯해 교육목표, 방향, 교육과정 설계 등 교육 전반에 관한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창의적인 교수법과 자기주도 학습 방법, 토론 방법 등을 설계했습니다.”
허운나 전 총장은 천안 상록회관에서 새 교수진과 합숙을 하며 이들에게 교수법을 강의하고 밤에는 토론을 했다.
허운나 전 총장의 회고.
“제가 2004년 4월 3대 총장으로 부임했더니 당시 합숙했던 교수들이 과거 일을 이야기하더군요.”
그해 7월 16일 교육부는 학교법인 한국정보통신학원 설립을 허가했다.
설립추진단은 7월 31일 학교인가서류를 교육부에 제출했다. 시설 및 교원 및 재산확보명세서를 비롯해 대학헌장, 학칙 등을 첨부했다.
강봉균 장관을 비롯한 정통부 간부들이 총동원돼 교육부에 대학설립 허가를 독촉했다.
강봉균 장관의 증언.
“경제기획원에 있을 때 KDI정책대학원 설립을 관철시킨 경험이 있습니다. 안병영 교육부 장관(교육부총리 역임. 현 연세대 명예교수)에 이어 이명현 장관(교육선진화운동본부 이사장 역임) 등에게 과거 사례를 들어 빨리 허가해 달라고 부탁했지요.”
박성득 정통부 차관의 회고.
“당시 교육부 장관은 차관을 거쳐 결재가 올라오면 곧장 처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차관은 장관이 오케이하면 결재하겠다는 식으로 서로 미루며 허가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용원 교육부 차관(진주교대 총장 역임)과 계속 협의를 했습니다.”
정통부 김창곤 당시 심의관(정통부 차관 역임. 현 한국디지털케이블연구원장)의 말.
“실무자들은 원칙에 어긋난다며 위에서 방침을 정해주기 전에는 자신들은 결재를 올릴 수 없다고 했어요. 실무자들은 원칙론을 내세우기 마련이지만 아무튼 애를 먹었습니다.”
김인식 정통부 당시 기술기획과장(한국정보인증 사장 역임)의 말.
“실무선에서는 처리할 수 없다고 버티는 것입니다. 그동안 정통부에서 열린 대학설립추진위원회에 교육부에서 위원으로 참석해 놓고도 딴소리를 하는데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담당 과장은 고시 1년선배인데 얼마나 완고한지 정말 고생 많이했어요.”
이 과정에서 당초 대학설립계획서에서 두 가지가 변경됐다. 첫째는 당초 특별법으로 추진했던 대학설립이 사립학교법으로 바뀌었다. 또 대학 명칭이 한국정보통신대학원대학교로 변경됐다.
그해 8월.
교육부 대학설립심사위원회에서 대학원대학 실사를 나왔다. 양승택 총장은 현금 100억원을 은행에 예치해 놓고 실사를 받았다.
실사 반원 중 한사람이 학교 경계선에 벽돌담을 설치해 놓지 않았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양승택 총장이 상황을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실사반장은 노승탁 서울대 기계과 교수(서울대 명예교수)였다. 그는 양 총장의 후배였다. 양 총장은 그를 만나 사정을 설명했다.
노 교수가 시원스럽게 말했다.
“선배님 걱정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그의 말대로 실사는 잘 끝났다. 일단 한 고비를 넘기자 마음이 불이 커진 듯 미래가 밝게 보였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