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개발과정을 거쳐 포장까지 마치고 값만 매겨 팔면 되는 마지막 단계에서 제품에 결점이 발견되었다. 만들어진 제품을 뒤로 한 채 처음부터 모든 과정을 되풀이해야 할까, 일단 제품을 팔면서 뒷수습을 해야 할까? 당연히 전자의 선택이 옳지만 한 기업의 CEO라면 당연히 망설여지기 마련. 하지만 과감히 재도전에 나선 CEO도 있다. 새로운 형태의 스마트폰 보호필름 ‘스킨X’를 최근 시장에 선보인 디지로그X(www.digilogx.com) 구기회 대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 다 만든 줄 알았던 제품에 ‘복병’ 나타나
보통은 생산한지 얼마 안 된 신제품을 보여 주며 좋은 제품이라고 내세우기 마련이다. 그런데 구 대표는 ‘이거 시장에 못 팔았습니다’라며 실패한 제품부터 먼저 보여준다. “얇은 강화유리로 스마트폰 보호필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산학협력으로 꽤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들었죠. 얇은 유리를 0.1mm 단위로 갈아내야 하는 쉽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결국은 성공했습니다”
몇 개월간 연구 끝에 나온 제품은 매우 성공적으로 보였다. 스마트폰 강화유리와 같은 재질로 만들다 보니 밀고 누르면서 터치할 때 손 끝 느낌도 좋았고 저가 보호필름을 붙였을 때 느껴지는 답답함도 없었다. 강도도 손색이 없었다. 이쯤 되면 시장에 내놓아도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복병이 숨어 있었다.
“가공 과정에서 원재료인 유리 표면에 ‘크랙’(Crack)이라고 하는 가느다란 금이 생기더군요. 처음에는 이 금이 눈에 잘 안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커지고 깨질 위험도 높아집니다. 게다가 몇 개월 뒤에 스마트폰에 붙였던 필름을 떼어내려고 하니 결국은 깨지더라고요. 스마트폰이 직접 손으로 만지고 얼굴에도 닿는다는 걸 생각해 보니 ‘아, 이거 위험하겠구나’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 아이폰 박살나도 “소비자 안심한다면…”
팔아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하던 구 대표는 결국 출하 직전 단계까지 왔던 제품을 포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이번에는 유리가 아닌 특수 소재를 선택했다. 깨지지 않아 유리보다 안전하면서 투명도는 유리에 버금가는 소재를 찾느라 다시 몇 개월이 걸렸다. 대학 연구진들과 사흘이 멀다 하고 얼굴을 마주하며 테스트를 거듭한 끝에 시제품이 나왔다.
구 대표는 “막상 제품을 만들고 보니 분명히 잘 버틸 것 같은데 확인할 방법이 없는 겁니다. 어떻게 할까 상당히 고민스럽더라고요”라며 뭔가를 슬그머니 꺼내 보여준다. 강화유리가 박살난 아이폰이다. 무슨 말이 나올지 더 들어 봤다. “135g짜리 쇠구슬을 75cm 높이에서 떨어뜨리는 테스트를 해 봤죠. 처음에는 샘플을 아이폰 위에 붙이고 떨어뜨렸는데 멀쩡하더라고요. 그래서 필름을 벗기고 다시 해 봤더니 이렇게 박살이 났습니다”
직접 쓰던 스마트폰을 제물(?)로 삼은데다 더 이상 못 쓸 정도로 망가졌다. 구 대표에게 ‘아깝지 않더냐’라고 묻자 웃었다. “그냥 개발비 들인 셈 치는 거지요. 제품이 튼튼한지 소비자 대신 확인하는 게 만드는 사람 책임 아니겠습니까?” 새로운 보호필름, ‘스킨X’는 이렇게 빛을 보게 됐다.
■ 유리 못지않은 강도·투과성이 장점
스마트폰 액세서리 중 가장 잘 팔리는 것이 바로 화면 보호필름과 케이스다. 보호 케이스를 쓰지 않는 사람도 보호필름은 붙인다. 분명히 장사는 된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새로 장만하면 한두 장쯤 끼워주는 것이 보호필름이고 인터넷 오픈마켓에서는 5,000원에 3장짜리 보호필름도 흔하다. 그럼에도 스킨X를 꼭 사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봤다. 구 대표는 잠시 당황하다 그제서야 자랑(?)을 늘어놓는다.
“일단 유리를 안 썼으니 신축성이 있고 여러 번 뗐다 붙였다 해도 큰 이상이 없습니다. 특수 시트 두 장을 한데 붙여서 만들었는데 앞면은 긁히는 것을 방지하는 코팅층이고 최고 6~7H의 흠집까지 견딥니다. 뒷면은 화면에 가해지는 충격을 막아주는 완화층이죠. 각도를 달리해서 볼 때 생길 수 있는 유막 현상이나 레인보우 현상도 없습니다.”
구 대표가 필름을 하나 꺼내더니 직접 아이폰에 붙여주며 내밀었다. 정말로 잘 버틸까. 주머니에 있던 동전이나 보풀이 일어난 안경닦이용 천으로 문질러 봤지만 멀쩡하다. 열쇠를 꺼내 독하게(?) 마음먹고 그었더니 그제야 흠집이 났다. 필름을 벗겼지만 화면은 멀쩡하다. 벗기기 전이나 후를 비교해도 투명도에도 차이가 없다. 구 대표는 ‘이렇게 투명하게 만드는 것도 기술’이라며 웃었다.
■ 중국산에 실망한 일본 소비자에게도 ‘인기’
스킨X는 지난 1월 중순 아이폰4·4S용, 갤럭시S2용으로 처음 나왔고 최근에는 갤럭시노트용 보호필름도 나왔다. “갤럭시노트에 두께가 두꺼운 필름을 붙이면 펜을 인식 못한다는 소문이 돌아서 내심 걱정이 되더군요. 스킨X가 두께가 좀 있는 편이라… 하지만 테스트 결과 뜬소문이라 안심했습니다”
상품을 접한 다른 나라 바이어들도 수출을 권한단다. “물론 저가 중국산 제품들도 많이 있지만 스킨X는 원단도 일본 제품을 썼고 혼자 붙였다 떼기도 쉽습니다. 오히려 바이어들이 수출 단가가 너무 낮다고 놀랍니다” 얼마 전에는 일본 최대 오픈마켓인 ‘라쿠텐’에도 입점을 마쳤다. 중국산에 실망하고 발길을 돌린 일본 소비자들의 관심이 많다고.
구 대표에게 앞으로 계획을 물었다. 그러자 구 대표는 ‘컨버전스가 내 할 일’이라고 단언했다. “단순히 보호필름만 판매한다면 저가 중국산 제품 때문에 가격 경쟁에서 밀려 살아남기 힘들 겁니다. 그래서 한류열풍에 눈을 돌려 대형 연예기획사 몇 곳하고 제휴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보호필름과 여러 요소를 한 데 엮은 제품을 선보이겠다는 것이 구 대표의 구상이다. 하지만 혼자 벌이기에는 쉽지 않은 일이다. 가능할까?
예전에 컨설팅에도 몸담았다는 구 대표는 ‘그 때 얻은 노하우가 큰 자산’이라고 말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여러 아이디어를 가진 엔지니어나 업체가 많더군요. 원단이면 원단, 코팅이면 코팅, 인쇄면 인쇄 하는 식으로 말이죠. 이런 분들 의견을 조금씩 조율하고 제조·가공 공장도 한 데 엮어서 시너지 효과를 낸다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