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업계 머리 맞대고 윈윈 방안 서둘러야
사회적으로 큰 혼란을 가져올 통신망 블랙아웃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선제적 대응이 절실하다.
사업자 간 이해관계가 엇갈린다는 이유로 소모적 논쟁에 함몰돼서도 안 된다. 규제기관인 방통위가 앞장서야 하며, 통신사·제조사·부가서비스사업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특히 유럽과 미국 등 해외사례를 참고하고, 동시에 국내에서도 상호 윈윈할 수 있고, 나아가 국가 산업발전과 활성화를 위한 묘책을 내야 한다.
◇핵심은 통신망=무엇보다 통신망을 운영하는 통신사업자의 투자 확대가 필수다. 지난해 통신업계가 사상 최대 규모 설비투자(CAPEX)를 기록했지만 롱텀에벌루션(LTE)이라는 신규 서비스 론칭을 위한 것이었다. 올해 역시 대부분 투자가 LTE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사이 현재 가장 많은 트래픽을 수용하는 3G 광대역부호분할다중접속(WCDMA)망은 등한시될 수 있다. WCDMA망은 국내 이통 가입자 중 70%에 달하는 3500만명(2011년 말 기준)이 사용한다. LTE와 달리 데이터 무제한 서비스가 제공돼 트래픽 발생량도 높다. 통신사로서는 LTE망 조기 확산으로 가입자를 분산하는 한편 기존 WCDMA망 보완작업도 강화해야 한다.
코어망과 트래픽 관리 기술 강화도 요구된다. 데이터 트래픽 급증은 대용량, 다접속 두 가지 요인에 기인한다. 동영상 스트리밍 등 대용량 트래픽은 코어망 투자를 늘려 전송망을 다원화해야 한다.
원재준 노키아지멘스네트웍스코리아 사장은 “전송망 백업이 충분하지 않으면 전체 망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마트폰 앱이 수시로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나타나는 다접속 문제는 통신사와 서비스 개발사 간 협의가 선행돼야 한다. 통신사가 앱 기능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트래픽을 관리하는 기술 도입이 필요하다. 앱이 서비스 서버와 주고받는 신호 간격을 넓히는 식이다.
오성목 KT 무선네트워크본부장은 “다행히 앱 시그널링 문제는 통신사 자체 필터링, 개발사와 협력 등을 통해 많이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소통 원활한 도로 확보=더욱 근본적으로는 광대역 주파수 발굴이 시급하다. 무선 데이터 서비스는 주파수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아무리 빠른 자동차도 도로가 막히면 무용지물인 것처럼 주파수가 수용할 수 있는 트래픽을 넘어서면 차세대 통신서비스도 소용없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국내 이동통신 주파수는 2015년 추가로 320㎒ 폭, 2020년엔 610㎒ 폭에 이르는 신규 주파수대역이 필요하다.
정부는 광대역 주파수 발굴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모바일 광개토 플랜을 수립해 오는 2020년까지 600㎒ 폭 이상의 주파수를 추가로 발굴한다. 다만 아직까지 불투명한 700㎒ 디지털 전환대역 잔여분 용도를 서둘러 확정해 통신사가 중장기 주파수 로드맵을 세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줘야 한다.
분산기술도 중요하다. LTE망을 비롯해 와이파이, 와이브로 등으로 데이터 트래픽을 흡수 분산하는 것도 통신망 블랙아웃을 피하는 방법이다. 이미 전국 규모로 구축된 와이파이와 와이브로망 활용도를 높인다면 추가 투자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트래픽 대란을 피할 수 있다.
◇망 중립성 가치 존중=전문가들은 통신망 트래픽 부담이 통신사에 망 중립성 면죄부를 주는 방향으로 호도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대로 망 중립성이 통신망 블랙아웃 대응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돼서도 안 된다는 지적이다.
모정훈 연세대 교수는 “망 투자를 늘려야 하는 통신사, 망을 이용하는 콘텐츠·단말업체 속성상 이해관계는 엇갈릴 수밖에 없다”며 “통신사 비즈니스 여건이 좋지 않다는 점과 차별적으로 접속을 막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양측이 서로 인정하면서 협의를 이어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망 중립성이 통신 트래픽 문제에서 빠질 수 없는 만큼 이를 빨리 해결하는 것도 방법이다. 명확한 원칙이 수립되면 통신사는 본연의 투자에 충실하고, 콘텐츠·단말업계 역시 반복되는 논쟁을 피하며 예측 가능한 서비스를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재천 인하대 교수는 “중요한 것은 통신망이라는 도로를 이용하며 서비스가 일어나는 생태계에 관한 것”이라며 “지금은 일방적인 주장만 나오는데 서둘러 트래픽 문제 등의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