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연구재단은 연구지원 전문기관이다. 연간 예산이 3조517억원으로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의 20%가 넘는다. 예산만으로는 과학기술계 최대 기관이다.
수장은 취임 2개월째 접어든 이승종 이사장이다. 이 기관은 흩어져 있던 3개 기관을 하나로 통합한 지 3년이 됐다.
초대, 2대 이사장이 모두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그만뒀다. 기관이 자리잡을 중요한 시기였기에 아쉬움이 크게 남는 대목이다.
통합 초기 3개 기관이 합쳐지면서 서로 다른 문화에 익숙한 직원들을 화학적으로 결합하기도 쉽지 않았다. 출발 선상에 모인 다양한 `선수`들을 `종목`별로 정리하지 못한 탓도 있다. 게임 룰도 새로 정하다보니 주먹구구식 해석과 적용도 많았다. 보완할 룰이 많다는 의미다.
여전히 들떠있는 재단을 제대로 안착시켜야 하는 일이 이승종 이사장이 올해부터 향후 3년간 풀어야할 숙제다.
이 이사장은 지난 2008년부터 2년간 재단 기초연구본부장으로 일하며 이공계 기초연구사업 통합과 구조개편을 수행했다. 지난해엔 재단 핵심인 프로젝트 매니저(PM) 역할 정립과 연구비 배분 방안을 연구했다.
재단에 관한 한 누구보다 속을 잘 안다. 이 이사장이 풀어낼 숙제와 비전, 발전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한국연구재단의 현 상황 진단과 풀어야 할 과제는.
▲지난 2009년 6월 3개 조직 통합 출범 이후 여러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나름대로 뿌리를 잘 내리고 있다고 봅니다. 지난 3년간 분야별로 PM과 비상근전문위원(RB)를 두고 연구기획부터 과제선정, 지원관리까지 책임지는 `선진형 PM제`는 정착됐다고 봅니다.
학술과 R&D 정책기획을 전담하는 부서(정책연구팀)를 설치해 기초·원천연구에 대한 기획 기능과 성과관리시스템도 강화했습니다.
행정 위주 연구관리시스템에서 벗어나 연구자 중심의 연구지원서비스를 구현하려고 공을 들여왔습니다.
물론 출범 후 숙원이던 3개 노조가 통합됐지만 여전히 서로 다른 문화와 역사 때문에 직원 간 화학적 결합과 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전임 이사장들께서 임기를 다 못 채운 것도 아쉽습니다. 상호 소통·신뢰하고 화합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어갈 필요성을 느낍니다. 그리할 것입니다. 사기 진작을 위해 능력 위주의 성과연봉제와 공정한 인사제도도 시행할 계획입니다. 다양한 조직 통합 프로그램도 구상 중입니다.
지난해 `한국연구재단 행복 나눔 봉사단`을 창단했습니다.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이웃사랑-나눔 경영도 실천할 것입니다.
직원 간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자리로 `티앤톡(Tea & Talk)`을 격주간격으로 수요일 실시합니다.
-올 한해 역점 추진 사항은.
▲연구환경 조성에 힘쓸 것입니다. 도전연구지원형 사업을 늘리고 연구의욕이 가장 왕성한 신진연구자 지원을 대폭 강화합니다.
1907~1972년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살펴보면 노벨상 수상업적을 논문으로 발표했을 당시 평균 연령이 38.7세입니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10년 내외 신진연구자들이 이 연령대에 해당합니다. 그들 대부분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도전적인 의지를 갖고 획기적인 연구를 많이 진행했습니다.
이와 함께 연구지원시스템을 학문분야별 특성과 수요를 반영한 `맞춤형 연구지원체계`로 개선합니다. 예를 들어 수학은 연구 장비보다 교류가 더 필요하고, 생명공학은 초기 고가 연구기자재가 필요한데 지금은 사업별로 예산이 배분되도록 돼 있습니다. 학문 분야별 특성에 맞는 지원체계가 필요합니다. 올해 이를 개선할 것입니다.
-21세기 학문의 흐름은 융합연구입니다. 이를 진작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요.
▲기존 문과학문 만으로는 복잡한 사회현상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기가 어렵습니다. 학문 분야별 융·복합 연구와 특히 과학기술 및 인문사회를 연계한 융·복합 신(新)지식 창출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문제해결형 학제 간 연구와 융합형 인재 양성도 절실합니다.
이를 위해 기초연구본부(전자정보·융합과학단)와 인문사회연구본부(문화융복합단)로 나뉜 융합연구지원 조직을 하나로 통합합니다. `융합연구단(가칭)`을 오는 5월 신설할 예정입니다.
융·복합 분야 특화사업도 확대합니다. 융합연구를 뒷받침할 평가자 이력시스템 등도 구축, 운영할 것입니다.
-소통이 화두입니다.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재단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입니다. 납세자인 국민에게 재단 사업을 알리고 우수한 성과를 되돌려 주는 것이 재단에 부과된 가장 중요한 의무 가운데 하나입니다. 국민이 알아주지 않으면 소용없는 것이죠.
국민 인지도와 체감도를 높이기 위해 매주 금요일에 여는 과학터치·석학 인문강좌 등 대중화 사업을 확대합니다. 과학터치 사업 대상이 되는 지역과 계층을 늘리고 콘텐츠를 국민 눈높이에 맞춰 양적·질적으로 대폭 개선할 것입니다.
-한국형 PM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책임전문위원(CRB)를 새로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는데.
▲규정에는 있었지만 미처 운영하지 못했던 `CRB제도`를 도입합니다.
현재 연구재단에는 상근 PM(본부장 3명, 단장 13명) 16명과 비상근RB 284명이 연구기획부터 과제선정, 평가관리까지 책임지고 있습니다. 3조원이 넘는 예산을 집행하기에는 부담이 좀 있다고 봅니다. 기초연구사업 예산만 봐도 지난 2008년 4936억원에서 올해 9750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그러나 인력배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PM에게 집중된 과중한 업무량을 CRB에게 나누고, CRB가 PM과 RB 사이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도입 시기는 임기 내로 잡아 놨습니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를 확대하기 위해 모험연구 체제를 개선한다고 했는데.
▲전구를 비롯한 1000종이 넘는 발명을 한 토머스 에디슨의 혁신적인 연구 기반은 수많은 실패였다고 봅니다. 최근 세계적으로 실패 자체를 진지하게 다시 생각하자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미국 대학에선 실패를 주제로 한 경영학 강좌가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일본서는 `연구실패 지식도 연구결과의 일부`로 인정해 실패 정보를 연구자들에게 제공하는 관리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재단도 지난 2010년부터 개인연구자지원사업에 `모험연구` 체제를 도입했고, 지난 2008년에는 원천기술개발사업 `미래유망융합기술파이오니어사업`에 한해 `성실실패 용인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는 모험연구 체계를 한층 더 강화합니다. 1년차 단계평가를 과감히 폐지하고 3년간 확실히 지원합니다. 연구자가 다양한 연구주제를 기획·수행할 수 있도록 연구비 규모를 주제에 따라 최대 1억 5000만원까지 파격 지원합니다.
과제신청도 연구 아이디어가 도출되면 곧바로 연구계획서를 작성·제출할 수 있는 연중 수시 접수제를 도입합니다.
성실실패 용인제도는 연구환경 변화에 따라 연구방향, 내용 및 타당한 사유가 인정될 때 연구자가 중도 포기할 수 있도록 제도의 범위도 크게 확대합니다.
-현행 과제신청 제한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연구 자율성을 확대할 계획이지요.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세부사업인 핵심연구에 참여하는 연구자도 같은 사업의 세부사업인 도약연구에 신청할 수 있도록 신청 제한을 완화했습니다.
리더연구자지원사업(창의적 연구)에 참여하는 내·외부 연구원(박사후 연구원 포함) 전일제 근무 원칙도 폐지했습니다.
재단의 모든 기초연구사업(개인연구자지원 및 집단연구지원)은 연구자가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연구과제가 최대 5개고, 그 중 연구책임자로서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연구과제는 최대 3과제(3책 5공)로 참여율 100% 이내에서 자율적으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독 리더연구자지원사업(창의적연구)은 연구책임자를 포함한 모든 내·외부 참여연구원들이 전일제 근무 원칙을 적용받아 다른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었습니다. 참여연구원들의 불만이 많았습니다. 이를 개선합니다.
연구현장 수요를 감안해 학문후속세대양성사업(국내 연수) 선정을 매년 한 차례에서 상·하반기 두 차례(5, 9월 연구 개시)로 나눠 선정합니다.
△1952년생
△학력사항
-경기고등학교 졸업
-서울대 화학공학과 졸업
-미국 델라웨어대학원 화학공학 전공 박사
△주요경력
-현재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서울대 연구부총장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본부장
-서울대 BK21 화공분야 인력양성사업단장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장
-미국 미주리대학 방문교수
-미국 델라웨어대학 방문교수
-영국 웨일즈대학 박사후과정
-미국 델라웨어대학 박사후과정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위촉연구원
-국방과학연구소 과학장교(군복무)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