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 캠리가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승용차라면, 혼다 CR-V는 `콤팩트 SUV` 중 베스트셀러로 손꼽힌다. 세대교체를 앞두고 있었던 지난해에는 포드 이스케이프에게 역전을 당하기도 했지만, 미국에서는 2007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20만대 내외의 고른 판매실적을 유지하며 명성을 쌓았다.
전 세계적으로는 500만대 이상이 팔렸고, 국내에서는 2004년 첫 출시 후 지난해 말까지 1만4000대 가량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 2004년부터 3년 연속으로 국내 수입차 판매 3위 안에 들었던 기록도 남아있다.
이번에 시승한 CR-V는 지난해 12월, 일본과 거의 같은 시기에 한국 시장에도 출시된 4세대 모델이다. 이 차를 타고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는 동안,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의 구형 CR-V들과 마주치며 새삼 많이 팔리는 차의 기세를 실감했다.
새 CR-V는 볼륨감을 강조했던 기존 모델보다 늘씬하고 단단해진 인상이다. 차체 크기도 소폭 줄었다. 국산차 중에서는 기아 스포티지와 견줄만한데, 폭은 좁고 길이가 길다. 2620㎜의 휠베이스는 승용차로 말하면 준중형급으로, 구형과 같다.
날카롭게 각을 준 얼굴과 부드럽게 둥글린 뒷부분은 다소 상반된 느낌. 17인치 휠이 차체 안쪽으로 살짝 들어가 보인다. 대신 배기구 장식은 큼지막하다. 테일게이트(짐칸 문)는 유리 부분만 열리거나 위아래로 나뉘어 열릴 것처럼 생겼지만 실제로는 검정색으로 튀어나온 뒷 범퍼의 바로 윗부분까지 통째로 열린다. 우선 짐칸 바닥이 낮아 쓰기 편하고, 레버나 끈을 한번만 당겨주면 뒷좌석의 머리받침과 등받이, 방석을 한꺼번에 접을 수 있어 간편하다.
뒷좌석은 바닥이 평편하고 천장 부분이 깊게 파여 있어 여유롭게 느껴진다. 뒷좌석 열선은 없지만 송풍구는 따로 마련했다. 전동 조절되는 운전석은 승용차에 길들여진 이도 자연스럽게 갈아탈 수 있는 높이다. 시야가 넓고 운전이 편하다. 처음에는 앞부분이 가늠되지 않는 것에만 적응하면 될법하다.
실내는 요즘 혼다차 특유의 디자인으로 꾸며져 있다. 대시보드를 단단한 플라스틱들만으로 구성했지만 시각적으로는 깔끔하고 촉감이 좋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실제로, 버튼이나 다이얼류의 조작감은 좋은 편이다. 중앙 상단에 깊숙하게 배치된 5인치 화면은 선명한 그래픽으로 오디오 정보나 설정 등을 보여주는데, 내비게이션 사양은 빠져있다. 작고 먼 액정에 후방카메라를 보여주는 것이 이채롭다.
`크로스오버` SUV답게 운전은 그야말로 승용 감각이다. 착 붙는 느낌의 운전대를 돌리면 차체가 경쾌한 반응으로 쫓아오고, 좌우 쏠림도 억제되어 있다. 승차감이 부담스럽지는 않으나 도로 이음매 등에서 통통 튀는 감은 있다. 2.4리터 가솔린 엔진과 5단 자동변속기를 조합한 파워트레인은 1.6톤의 체구를 움직이기에 너끈한 힘을 제공한다. 무려 7000rpm까지 회전시켜야 190마력의 최고출력을 토해내는 엔진은 평상시 조용하고 부드럽게 본색을 숨긴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발놀림이 좋지만 원한다면 변속 패들을 이용해 운전 재미를 쥐어 짤 수도 있다.
더욱 지능화된 4륜구동 시스템은 든든한 안전장비. 기본은 앞바퀴 굴림이다. 있는 듯 없는 듯 하는 구동계 소음과 달리, 노면마찰음 등 다른 소음들은 가끔 귀에 거슬릴 때가 있다.
시승차는 최고급 사양인 4WD EX-L로, 가격은 3670만원. 버튼 시동 스마트 키 등 일부 사양이 제외된 4WD EX는 3470만원, 2WD LX는 3270만원이다.
민병권기자 bkmin@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