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수 칼럼] KT · 삼성전자의 우물 안 싸움질

전면전이다. 한쪽은 접속을 끊었다. 다른 한쪽은 소송을 건다. 서로 원색적 비난을 쏟아낸다. 스마트TV를 놓고 KT와 삼성전자가 세게 붙었다. 통신사업자가 TV 제조사에 망 이용대가를 요구한 것은 처음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정보통신기술(ICT) 업계가 이 싸움에 주목한다.

KT 주장은 `무임승차론`이다. 삼성전자가 막대한 트래픽을 유발하면서 아무런 대가 지불 없이 망을 쓴다. 협상도 미온적이다. 그래서 본보기로 삼았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과 달리 통신사를 통하지 않는 스마트TV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처사로 봤다. 막대한 트래픽 유발 주장도 부풀려졌다. 그래서 분담금만 전제로 한 협상 강요를 받아들일 수 없다.

양쪽 주장 모두 일리 있다. 트래픽이 늘어난 망 관리와 투자 부담을 통신사업자만 지는 것은 부당하다. 스마트TV가 많아진다고 통신 가입자와 매출이 늘지 않는다. 되레 IPTV 시장만 잠식한다. 스마트TV를 스마트폰과 달리 대접하는 이유다. 그런데 스마트TV도 PC와 같은 단말기에 가깝다. 플랫폼이 있다 해도 콘텐츠를 직접 팔지 않는다. 트래픽이 늘었다고 통신사업자가 PC 제조사, 포털에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스마트TV에만 이를 요구하는 건 부당한 차별이다.

참 판단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시야를 좀 넓혀보면 어떨까. 디지털콘텐츠산업 가치 사슬이다. 콘텐츠-플랫폼-단말기-네트워크로 이뤄졌다. 스마트폰 등장 이전엔 네트워크와 단말기가 중요했다. 통신사업자, 휴대폰 업체가 득세했다. 이젠 플랫폼과 콘텐츠가 중요해졌다. 이를 쥔 애플과 구글 시대다. 애플은 단말기까지 장악했다. 안타깝게도 한국 ICT산업은 네트워크, 단말기에 치우쳤다. 유무선 인프라, 스마트폰 제조 강국인데 실속이 없다. 뒤늦게 플랫폼, 콘텐츠 영역으로 확장하지만 쉽지 않다.

삼성전자는 스마트TV로 단숨에 도약하려 한다. 그런데 통신사업자를 배제했다. KT로부터 공격을 받은 이유다. 정작 KT는 망 대가만 얘기했다. 기존 영역만 집착하는 것처럼 보인다.

재미있게도 두 회사 모두 상대방에게 애플처럼 해달라고 요구했다. KT는 삼성전자에 애플처럼 통신사업자와 협력해 생태계를 만들라고 했다. 삼성전자는 KT에 애플에 그러했듯이 대가를 요구하지 말라고 했다. 두 회사 모두 `콘텐츠 플랫폼 생태계`에 뜻을 같이 하는 셈이다. 다만, 삼성전자는 애플 역할을 원하고, KT는 또 다른 애플을 원치 않는다.

실리도 다르다. KT는 망의 가치 인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삼성전자는 플랫폼 조기 구축이 급하다. 해법 찾기는 이러한 간극을 얼마나 빨리 좁히느냐에 달렸다.

쓰는 만큼 이용자에게 요금을 물리는 종량제가 좋은 해법이다. 트래픽이 많으니 적으니, 대가를 내니 안 내니 통신사업자와 TV제조사가 다툴 이유가 사라진다. 다만, 이용자의 거센 반발이 걸림돌이다. 통신사업자의 숱한 노력에도 성공하지 못한 일이다.

공동 콘텐츠 플랫폼도 대안이다. 양쪽 모두 새 사업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갈수록 힘이 커질 콘텐츠업체에 대한 협상력도 커진다. 망 이용대가가 아닌 투자비라면 삼성전자도 낼 용의가 있다. 그러나 다른 회사가 모여 뭔가를 같이 해 성공한 사례가 없는 게 문제다.

KT와 삼성전자는 한국 네트워크와 단말기 대표주자다. 세계 ICT산업의 축은 플랫폼과 콘텐츠로 넘어간다.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비난이 거세자 KT는 결국 접속 차단을 풀기로 했다. 그래도 앙금은 남았다. 두 회사는 이전의 아이폰 앙금까지 함께 빨리 씻어내야 한다. 그래야 소모적인 감정싸움을 생산적인 대안 논의로 바꿀 수 있다. 지금 애플, 구글만 웃는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