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12’에는 일반인에게 생소한 코너가 차려진다.
바로 초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이다. 지난해부터 별도 공간을 마련해서 MEMS 제품 위주로 전시하고 있다. 1990년대에도 쓰였던 MEMS가 주요 관심사가 된 이유는 스마트기기의 아날로그화 덕분이다.
바야흐로 디지털 시대, 아이러니하게도 빠르게 디지털화하는 세상에서 오히려 재미있는 트렌드가 나타났다. 디지털화가 진행될수록 오히려 시각·청각·촉각 같은 아날로그적인 요소를 디지털기기에 접목시키고자 하는 수요가 커지고 있다. 조금이라도 사람의 행동패턴과 심리상태에 맞는 사용자경험(UX)을 만드는 게 전자제품 업계에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스티브 잡스는 직관적인 사용자인터페이스(UI)를 무엇보다 중시했다. 이를테면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기기를 바라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인텔 역시 몇 년 전부터 미래학자, 심리학자들을 영입해 사람의 정서와 행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기기와 사람이 어떻게 만나는지, 어떻게 소통하는지가 중요한 화두가 됐다. 동작 감지 센서, 터치 센서, 온도 센서 등 우리 생활에서 센서는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분야다. 사람들이 보고, 듣고, 느끼듯이 기기에서 외부 신호를 받아들이는 첫 관문에는 여지없이 센서가 달려 있다.
새삼 센서를 주목하는 것은 기계가 인간 언어를 읽어 들이는 첫 접점이 센서기 때문이다. 기기의 눈과 귀로 작용하는가 하면 압력과 회전까지 인지한다. 스마트폰·스마트패드·스마트TV 제조사는 점점 많은 센서를 사용하고 감도를 높여가고 있다. 반도체 공정을 이용해서 크기도 줄어들고 있다.
◇초소형 센서, 어떤 것이 쓰일까=스마트폰 등 모바일기기에 쓰이는 센서는 다양하다. 터치 센서가 대표적이다. 초기에는 투명전극 소재 두 장 사이 공간 폭을 인지하는 감압식 터치 센서가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아이폰에서 정전식을 채택하면서 스마트기기 대부분이 정전식으로 선회했다. 사람 몸에 흐르는 전류를 인식하는 정전식은 대면적, 멀티터치가 불가능하다고 지적돼 왔으나 이 점도 해결됐다.
카메라에 쓰이는 센서는 반도체 ‘CMOS’ 공정을 이용한 CMOS이미지 센서(CIS)다. 렌즈 위나 아래에 눈에는 보이지 않을 미세 회로를 입히고 빛을 빨아들이면 뒷단에 붙은 이미지시그널프로세스(ISP)가 디지털 신호로 변환한다. 빨아들인 정보 손실을 최소화하는 게 관건이다.
휴대폰을 얼굴에 가까이 대면 화면이 꺼지는 것은 조도 센서 역할이다. 아이폰3GS까지는 스피커 옆에 흐릿한 동그란 점을 볼 수 있었는데 바로 조도 센서다.
아이폰4S에서 처음 선보인 ‘시리(Siri)’는 음성인식 센서를 사용했다. 디지털기기가 작아지면서 음향처리도 대부분 반도체 칩이 담당하게 됐다.
◇MEMS 센서의 진화=최근 몇 년간 무엇보다 각광받는 기술은 MEMS다. 스마트폰을 가로로 기울이면 화면 역시 가로로 변환되는데 x·y·z 축을 인식하는 자이로 센서 덕분이다. MEMS 센서의 대표사례다.
가속도와 압력 센서도 MEMS 기술을 적용했다. 위치를 읽어 들이는 지자기 센서와 음향을 인식하는 마이크로폰도 MEMS 기술로 구현되고 있다. MEMS란 몇 마이크로미터(㎛:1㎛는 100만분의 1m)에서 몇 ㎜ 크기 마이크로 머신 제작기술을 일컫는다. 실리콘 기판 위에서 회로, 기계부품, 센서 등을 모두 집적하기 때문에 반도체 회사가 주로 제조한다.
1990년대부터 쓰였지만 스마트 시대를 맞아 시장 규모가 최근 대폭 커졌다. 2010년 세계 MEMS 시장 매출액은 2009년 대비 25% 성장한 86억달러를 기록했다. 시장조사기관 아이서플라이는 2014년 스마트폰용 MEMS 시장 규모만 37억3000만달러로 5년 만에 세 배 가까이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허출원도 활발하다. 국내 MEMS 관련 기술 특허는 2010년 83% 증가했다.
의료기기 분야에서도 MEMS는 활발하게 채택되고 있다. ST마이크로는 당뇨병 환자들이 쉽게 인슐린을 주사할 수 있도록 인슐린 분비 펌프를 개발했다. 피부에 패치형태로 붙여놓으면 자동적으로 일정 분량이 매일 분사된다. 녹내장을 진단할 수 있는 스마트콘택트렌즈에도 MEMS 기술이 쓰인다. 몸 속 혈관을 따라 움직이며 병을 진단하고 병원균과 싸우는 마이크로로봇에도 MEMS 기술이 녹아들어갈 전망이다.
◇센서 발전이 불러올 변화=MEMS 센서를 비롯한 각종 센서는 앞으로 어떤 변화를 이끌어낼까.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미 상용화한 동작인식 센서(키네틱)가 앞으로는 상당수 전자제품에 쓰일 예정이다. 이미 손을 대지 않고 스마트폰에 걸려온 전화를 받을 수 있는 기술이 개발돼 쓰이고 있다. 최근 스마트TV 애플리케이션(앱) 제조사들은 리모컨을 쓰지 않고 동작만으로 구현할 수 있는 각종 앱 개발에 착수했다. 스마트TV 앞에 앉아서 리모컨 없이 손을 옆으로 움직이는 동작만으로 채널을 이동시키는 날도 머지않았다. 각종 게임에서도 활용하는 건 당연하다.
이미지 센서 역시 진화를 거듭할 예정이다. 눈·코·입을 인식하는 얼굴인식 센서가 초기단계라면 음식에 갖다댔을 때 유통기한과 부패 정도를 감지할 수 있는 센서, 식물 생장 과정에서 특이사항을 관찰할 수 있는 센서도 등장할 수 있다.
음성인식 센서는 여러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미국에서 출시된 자동차에는 음성인식 센서가 있어서 시동을 걸고 라디오나 깜빡이를 켤 수 있는 기능이 내장돼 있다.
이런 추세 덕분에 최근 스마트폰 액세서리 업체를 중심으로 스마트폰 기본 규격 이외의 센서를 개발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본 기능으로 탑재하기에는 비용이 들지만 따로 센서를 이용하고자 하는 수요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새해부터는 각종 스마트폰용 센서 액세서리 시장이 꽃을 피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