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 전략발표
서류와 펜이 없는 ‘페이퍼리스회의’.
1996년 10월 14일 청와대에서 사상 처음 대통령이 주재하는 서류없는 회의가 열렸다. 정보화 새 지평(地平)을 여는 일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청와대 영빈관에서 제1차 정보화추진확대보고회의를 1시간여 주재했다. 회의에는 이수성 국무총리(새마을중앙회장 역임, 현 통일을 위한 복지기금재단 이사장)와 권영해 안기부장(국방부 장관 역임)을 비롯한 국무위원과, 전국 시·도지사, 정계와 재계, 언론계, 학계 주요인사 120여명이 참석했다.
청와대가 정보화보고회의에 각계 인사를 대거 참여시킨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는 청와대가 국가정보화 사업의 종합기획과 조정을 적극 지원하고 앞장서서 추진하겠다는 의미였다. 정보화에 대한 김 대통령의 강력한 정책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날 회의장은 기존 개념을 완전히 뒤집는 생소한 모습이었다.
잠시 그 시절로 돌아가 회의장 풍경을 스케치해 보자.
넓은 회의장에는 컴퓨터가 놓여 있고 전면에는 커다란 멀티비전이 설치돼 있었다. 그전까지 청와대 회의는 보고자료를 책상 위에 놓고 시작했다. 대통령 말씀자료나 지시사항은 사전에 대통령 책상 위에 가져다 놓았다.
그런데 이날 회의장 책상위에는 대통령 말씀자료나 서류가 한 장도 없었다. 참석자 앞에 도 없었다. 더욱이 청와대는 사전에 참석자들에게 ‘회의장에 종이 한장 가지고 입장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회의 내용 메모도 금지했다. 이날 보고회의는 종이와 펜 없이 오직 컴퓨터와 멀티비전만 설치해 놓고 진행했다.
오전 10시.
김 대통령은 만면에 엷은 미소를 띤 모습으로 영빈관에 입장해 국민의례를 한 뒤 자리에 앉아 회의를 주재했다.
김 대통령은 책상 위에 놓인 데스크탑 컴퓨터 마우스를 클릭, 17인치 모니터에 나타난 내용을 보면서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보화 전략’에 관해 연설 했다.
이에 앞서 강봉균 정보통신부 장관(재경부 장관 역임, 현 민주당 국회의원)은 정보화 추진내용을 노트북을 책상 위에 놓고 미리 입력시킨 자료를 보면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참석자들은 41인치 멀티큐브 16개로 만든 대형 영상을 통해 보고내용을 시청했다.
김 대통령은 보고 후 연설에서 “정보통신산업을 21세기 주도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천명했다.
김 대통령은 “정보화는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한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수단”이라며 “우리나라가 아시아 대륙의 정보화를 선도하고 정보유통의 중심지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정보화추진 원칙과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보화 과제도 밝혔다. 김 대통령은 정보화 추진원칙으로 △정부와 민간의 역할분담 △보편적 서비스 △균형과 통합의 정보화 △선별적 정보화 추진△ 정보화 역기능 방지 등 5대 원칙을 제시했다. 김 대통령은 정보화 전략으로 △정부의 정보화 실천 선도 △경쟁력 제고 핵심 분야의 정보화 우선투자 △산업화 과정상의 문제 해결 △소프트웨어와 영상산업 육성 △정보화 추진기반 정비 △통일대비 정보화 추진 등 6대 과제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통령은 이를 위해 “소프트웨어와 영상산업을 비롯한 정보통신산업을 21세기 주도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면서 “전문인력 양성등 세계수준의 기술이 확보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벤처사업의 지원, 외국 초일류기업 유치 등 정보산업에 적합한 기업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정부부터 앞장서서 정보화를 실천함으로써 정부 내 능률을 높이고 국민의 편익을 넓히는 생산성 높은 정부를 실현하겠다”며 “정보화를 위해 기구와 인원을 늘리지 않고도 민원행정서비스가 획기적으로 개선되도록 정부운영에 조속히 정보화 개념을 도입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어 김 대통령은 “산업화 시대에 제정된 법과 제도를 정보화 시대에 맞도록 조속히 정비하고 정보통신 분야의 표준화를 추진하겠다”며, “정보화의 혈맥인 정보통신망 구축사업도 본격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김 대통령은 회의를 주재하면서 관련부처 장관과 민간 자문위원에게 정보화추진 현황과 계획에 대해 일문일답을 했다. 참석자들은 이어 ‘국가경쟁력 정보화로 승부한다’는 제목의 10분짜리 영상물을 대형화면으로 시청했다.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실은 회의가 끝난 뒤 회의 내용이 담긴 플로피디스크를 복사, 참석자들에게 나눠주었다. 회의 내용은 정보EXPO추진위가 개설한 ‘정보EXPO96센트럴파크’라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이날 하오부터 중계돼 일반인들도 인터넷에 접속, 그 내용을 알 수 있었다. 당시로서는 모든 것이 파격, 그 자체였다.
김 대통령은 회의가 끝난 후 강봉균 장관에게 격려의 말을 건냈다.
강봉균 장관의 기억.
“대통령께서 ‘강 장관, 수고 많이 했어요. 고맙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단히 만족해 하셨습니다.”
이날 보고회의는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실에서 기획, 연출했고 정보통신부가 파트너가 돼 준비했다.
당시 청와대 정책기획수석비서관이었던 이각범 KAIST교수(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위원장 역임. 현 한국미래연구원장)의 회고.
“김 대통령의 국가정보화에 대한 의지는 확고했습니다. 이 영상 보고회의는 1996년 3월부터 준비를 했어요. 김 대통령은 그해 3월 4일 제1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등에 참석하고 귀국하면서 공항에서 ‘세계가 무서운 속도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만큼 국정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화와 정보화를 더욱 힘차게 추진해 국력을 키워나가는 것만이 우리의 살길’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김 대통령은 세계화와 정보화를 국가발전 2대 전략목표로 제시한 후 “세계화 정책의 핵심은 국가사회 정보화에 있다”며 국가정보화사업에 역점을 두었다.
정책기획수석실은 이에 따라 그동안 정보화추진체계 확립과 국가정보화 개념 정립 등 정보화를 국가전략의 핵심과제로 추진했다. 특히 정보화는 모든 영역과 연계해 추진해야 하는데 각 부처가 각개약진 식으로 정보화를 추진하면 부처 정보화에 그칠 수 있었다.
이각범 기획수석은 그런 연장선상에서 김 대통령에게 “종이문화에 익숙한 풍토에서 사회지도층이 디지털문화를 솔선수범해야 한다”면서 “당시로선 파격적인 종이 없는 영상회의를 대통령이 주재할 것”을 건의했다.
김 대통령은 “문서를 컴퓨터가 대체한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청와대가 앞장서서 그런 회의를 하면 일선 행정기관들도 서류를 없앨 것”이라며 “회의 참석자들은 종이 한장도 가지고 오지 말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보고 회의는 이각범 기획수석 주도로 박봉수 정책기획 비서관(기술보증기금 이사장, 안진회계법인 부회장 역임)과 차양신 행정관(방통위 이용자보호국장 역임, 현 한국전파진흥협회 부회장), 그리고 정보통신부 안병엽 정보화기획실장(정통부 장관, 국회의원, 피닉스자산운용 회장 역임), 노준형 기획총괄과장(정통부 장관, 서울과학기술대 총장 역임) 등의 긴밀한 협조아래 준비했다.
당시 정통부 과장이었던 노준형 전 장관의 말.
“오래전 일이긴 하나 안건 자료는 정통부에서 준비했습니다. 회의 시나리오나 진행방식은 정책기획수석실에서 총괄했습니다.”
그래서 이날 회의보도 자료도 청와대 기자실에 배부했다.
이각범 기획수석은 회의를 앞두고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당시 청와대 행정관이었던 차양신 부회장의 기억.
“컴퓨터 사용이 능숙하지 못한 김 대통령을 위해 사전에 집무실에서 실전과 같은 연습을 했습니다. 컴퓨터를 집무실로 가져가서 리허설을 한 것이죠. 김 대통령이 혹시 데스크탑 컴퓨터의 마우스를 잘못 클릭할 경우 파워포인트의 내용이 반대로 나타날 수 있었습니다. 회의장 준비에는 한국전산원(현 한국정보화진흥원)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김 대통령은 이런 연습과정을 거쳐 당일 회의를 매끄럽게 주재했다.
이각범 기획수석의 증언.
“이날 청와대에 모인 인사들은 국내 각 분야 리더들이었습니다. 전 각료와 시·도지사, 정당인사, 경제계 등의 대표들이 참석했습니다. 이런 날 혹시 회의장에서 무슨 일이라도 발생하면 그야말로 국가적인 재앙이라는 생각이 다 들었어요.”
1시간여의 회의가 끝나자 김 대통령은 결과에 몹시 만족해했다.
이각범 당시 기획수석의 기억.
“김 대통령이 회의가 끝난 후 밝은 표정으로 저한테 ‘역사에 기록될 회의인데’라며 말끝을 흐리셨어요. 저는 나름대로 대통령의 당시 심정을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정보화의 필요성을 사람들이 얼마나 알까’하는 여운이 담겨 있다고 봅니다.”
이각범 기획수석은 재임 시 정보화촉진기본법과 정통부 정보화기획실 설치, 벤처처산업육성지원 육성법 제정 등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는 1996년에는 전자정부에 역점을 뒀고 이듬해인 1997년에는 벤처육성을 중점 추진했다.
이각범 수석의 계속된 증언.
“당시 국가발전전략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 각 부처 실·국장들로 CIO(정보화책임관)회의를 구성했어요. 대통령이 총체적 국가경영에 대한 정보화를 진두지휘하면 경제사회 전반에 걸친 효율을 높이고 사회전체의 정보화를 가속화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매년 2회에 걸쳐 대통령 주재의 정보화추진 보고회의를 열기로 하고 그 후 계속했습니다.”
이날 서류 없는 회의에는 IT업계를 대표해 한국통신 이준 사장(국방부 장관 역임)과 서정욱 한국이동통신 사장(과기부 장관 역임), 이봉훈 서울이동통신 사장(현 노바트로닉스 대표), 김을재 중소정보통신기업협의 회장(현 금양통신 회장)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영상회의는 전자정부 구현을 위한 새로운 출발점이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