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아보자’는 구호가 한창이던 43년 전 개발경제 시절, 함태용(78) 장은공익재단 이사장은 당시 민간 산업개발 금융기관으로 출범한 한국개발금융에 합류하면서 처음 산업화에 눈 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산업화 산파로 일했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건설도 그의 도움을 받았다. 이후 18년 뒤인 지난 1985년 한국장기신용은행 은행장으로 재직하면서 ‘장은기술상’을 창설했다.
“당시만해도 산업 현장에서 국가 경제를 일궜던 기능공이나 엔지니어를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들에게 주는 상도 전무했습니다. 진정한 산업 역군임에도 말입니다.”
함 이사장은 지난 40여년간 우리나라 산업발전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등 공신이다. 그는 지난 1982년 장기신용은행장까지 올랐지만 산업 현장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식을 줄 몰랐다. 그래서 당시 KIST와 함께 창업을 지원할 ‘한국과학기술진흥’도 설립했다. 지금으로 보면 창업투자금융, 즉 벤처캐피털을 이미 시작한 셈이다.
함 이사장은 “KIST가 지닌 연구개발 역량을 상업화로 이어낸다면 무한한 가능성의 씨앗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면서 “새로운 부품·소재 연구가 창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많은 힘을 쏟았다”고 회고했다.
누구도 눈길 주지 않았던 산업현장 기술인을 격려하기 위해 만든 장은기술상은 지난 1997년까지 12년간 총 651명의 공로자를 표창했다. IMF 한파에 장기신용은행 인수합병이라는 고비를 맞았지만, 30년 가까운 그의 소망은 멈추지 않고 이듬해 장은공익재단 발족을 이뤄냈다. 5대 기간산업 기술개발 유공자 기술상 제정을 시작으로 2000년부터는 지식경제부가 주관하는 ‘소재부품 기술상’을 만들어 매년 후원하고 있다. 또 비영리법인으로 과학기술 연구 및 중소기업 육성, 학술연구, 정책연구, 보고서 발간 등도 담당하고 있다.
함 이사장이 가장 큰 보람을 느낀 일은 바로 산업계 기술인력을 대상으로 주는 상이 훈장으로 격상된 때다. 그는 “CEO나 과학기술자에게는 훈장을 주는데 산업 역군인 기능공, 기술인력이 소외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면서 “오랜 기간 정부와 의견을 나누며 건의한 끝에 4년 전 비로소 산업훈장을 신설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평생 산업금융에 몸담은 그가 산업계에 당부하는 말은 바로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다. “지금은 산업환경 변화가 극심한 때 입니다. 우리나라 제조업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섰지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제조업 근간인 소재 산업에 더 큰 관심을 쏟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