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소프트웨어(SW) 업체를 운영하는 비핀 아그라바트(35) 씨는 칠레에서 지구 반 바퀴 떨어진 인도 구자라트 주(州)가 고향이다.
지난 6월 홀로 산티아고 공항에 도착했을 때 그가 알았던 스페인어는 `올라(Holaㆍ안녕)`와 `그라시아스(Graciasㆍ고마워요)`가 전부. 친척이나 친구는 물론이고 남미에 와본 적도 없었다.
요즘은 산티아고 중심가의 사무실에서 인터넷으로 고국의 SW 개발팀에 작업 상황을 확인하고 투자자를 만난다. 칠레와 멕시코, 페루 등의 무선통신 업체에 자신의 SW를 납품하는 게 목표다.
아무리 벤처라지만 지리상으로 큰 모험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이 정도 지원을 해주는 곳은 미국이나 유럽에 없다. 오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아그라바트 씨는 `스타트업 칠레(Start-up Chileㆍ이하 SC)`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수백 명의 외국인 사업가 중 하나다.
SC는 `칠레에 남미판 실리콘 밸리를 만들자`는 기치 아래 이곳 정부가 지난해부터 운영하는 벤처 유치 제도.
매년 사업 아이디어가 뛰어난 외국 신생 벤처 300팀을 뽑아 1년 근로 비자와 산티아고 시내의 사무실을 준다. 첫 6개월 동안 2천만 칠레 페소(한화 4천600여만원)의 사업 비용도 지원한다.
◇"기술혁신 토대 마련" = 칠레는 국가 경제에서 몇몇 대기업이 주도하는 광업과 농업, 유통업 비중이 높다. 다양한 기술혁신이 일어나기 어려운 구조다.
이 때문에 외국에서라도 벤처 사업가를 데려와 첨단 산업 부흥의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강하다.
SC의 지원 조건은 이례적이다. 다른 벤처 육성 프로그램과 달리 지원금의 대가로 회사의 일부 지분을 요구하는 관행을 폐지했다. 업종과 국적 제한도 없다.
비(非)스페인어권 참여자를 위해 언어 장벽을 낮추는 데도 공을 들였다.
영어가 유창한 직원을 고용해 외국인 등록, 은행계좌 개설, 집 구하기 등의 절차를 대행한다. 칠레 기업인을 조언자(멘토)로 소개해줘 인맥 구축을 돕고 투자자와의 미팅도 주선한다.
아그라바트 씨는 2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금융권 인사들은 대다수 영어를 쓰기 때문에 소통에 문제가 없다. 남미권 투자자를 만날 기회 자체가 큰 혜택"이라고 강조했다.
참여자는 북미 출신이 가장 많다. 지난 9월 끝난 `2011년 2차 선발 라운드`에서는 뽑힌 154개 팀 중 미국과 캐나다 국적이 35%와 12%로 절반에 육박했다.
아시아에서는 인도(5팀), 싱가포르(3팀), 스리랑카(1팀) 등이 이름을 올렸다.
업종도 다양하다. 직원 2∼3인의 신생 기업을 위한 제도인 만큼 IT(정보기술) 서비스가 다수지만, 농산물, 포도주, 의료, 태양 에너지 등 칠레 유망 산업을 통해 거대 남미 시장에 진출하려는 예도 많다.
◇초기 자금ㆍ언어 흥미 필수 = 참여자에게도 의무 조건이 있다. 무조건 자금 지원 기간(6개월)에는 칠레에서 활동해야 하며, 현지 벤처인을 위한 설명회 등 행사에도 참석해야 한다.
비용 지원만 믿고 예비 자금 없이 칠레에 오는 것은 금물.
항공료와 급여 등 비용을 사후 환급(reimbursement)하는 방식이라 정산과 수령에 보통 20일이 걸린다. 비용에 따라 환급을 못 받는 때도 있다.
제대 군인을 위한 구직 서비스 `시비사이드닷컴(civiside.com)`으로 SC 지원을 받은 캐나다인 켄 세빌레 씨는 한 웹사이트에 게재한 글에서 "계약과 정산 절차를 볼 때 칠레 도착 이후 첫 두 달을 버틸 자금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페인어를 배우려는 의지도 필요하다. SC의 선발 절차와 주요 행사는 영어로 이뤄지지만, 칠레 생활에서 스페인어를 쓰지 않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
정부 측도 지망 사업가가 스페인어를 익힐 생각이 전혀 없고 남미 지역에 대한 흥미가 부족하다면 지원을 권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SC는 올해 선발 절차를 끝냈고 내년 3월 웹사이트(www.startupchile.org)를 통해 다시 신청서를 받는다. 지금까지 한국 벤처가 뽑힌 경우는 없었다.
SC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임정욱 라이코스 대표는 "남미에서 초기 사업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싶은 이들에게 좋은 기회다. 칠레 벤처 커뮤니티에 대한 공헌 가능성에 심사 배점이 상당히 높다"고 설명했다.
호텔 예약 사이트 `벙고로우(Bungolow)`로 올해 SC에 뽑힌 미국인 스콧 톰슨 씨는 "고국의 벤처 육성 프로그램과 달리 참여자들이 조언과 기술을 자유롭게 공유하는 분위기가 좋다. 한국 기업에도 참여를 권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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