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특허분쟁에 대한 삼성전자 ‘플랜C(양사간 합의)’의 유일한 통로로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부상하고 있다.
19일 홍콩에서 강한 어조로 애플에게 전면전을 선포한 신종균 무선사업부 사장과는 달리 이재용 사장은 ‘대결’보다 ‘협력’을 강조했다.
이 사장은 이날 오전 김포공항에서 기자와 만나 “팀 쿡 애플 CEO와 스티브 잡스 추도식이 열린 다음날(현지시간 17일) 쿡의 사무실에서 2~3시간에 걸친 별도 만남을 갖고 두 회사 간 좋은 관계 구축을 더 발전시켜야 한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반면 추가 특허 소송에 대해선 “필요하면 더 할 것”이라면서도 “법무팀과 경영진이 협의해 결정하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비록 삼성전자가 ‘부품은 계속 협력하지만 세트는 경쟁한다’는 기조로 애플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특허공세에 초강경 대응 방침을 공식화했지만 이 사장만은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키를 쥐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지성 부회장·신종균 사장·이영희 전무 등이 애플에 대한 발언 수위를 점점 높이고 있는 것과 달리 이 사장은 협력 유지에 방점을 찍고 있다. 팀 쿡 애플 CEO가 잡스 추도식에 개인적으로 초청하고 일 년에도 수 차례 만남을 가질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로 꼽힌다.
이 사장은 특히 사업 파트너가 아닌 친구 자격으로 초청되면서 자신만의 인적 네트워크를 보여줬다는 평가다.
따라서 법조계에서 예측하는 대로 내년 중 두 회사 간 합의가 이뤄진다면 그 중심 역할은 이 사장이 해낼 전망이다. ‘특허전쟁’의 저자인 정우성 변리사는 “(삼성전자가 바라는 플랜C는) 싸움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극적으로 타결되는 것”이라며 “법리 싸움 물밑에서 양사가 비즈니스적 관점으로 장래의 모양새를 갖춰 간다는 느낌”이라고 분석했다.
이 사장이 이날 “내년까지 부품공급 계획은 상반기에 다 세웠고, 그 다음 해와 2014년 계획은 더 이야기해봐야 한다”고 말한 것도 그가 두 회사 협력에 그가 해결사로 부상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삼성전자 측은 부인하고 있지만 애플이 차세대 프로세서 A6 파운드리(위탁생산) 물량을 대만의 TSMC 일부 돌린다는 설이 업계에선 유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사장이 향후 팀 쿡 CEO와 추가로 만나 협상한다면 특허 분쟁 해결과 함께 주문량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게 될 가능성도 높다. 그의 입지도 자연스레 높아진다.
이 사장의 부각은 연말 삼성의 조직 개편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이 많다. 재계에서는 삼성이 미래전략실 감사 결과와 구상에 따라 예년보다 큰 폭 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사업영역을 크게 ‘완제품’과 ‘부품’으로 나누고 최지성·권오현 투톱체제를 가동할 방침이다. 두 경영진과 의견을 조율할 적임자로 이재용 사장이 거론되고 있다.
삼성 내부 사정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는 “애플과 특허 분쟁에서 얼마만큼 역할을 해내는지 여부가 그동한 이건희 회장에 가려졌던 차세대 리더로서 이재용 사장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하나의 척도가 될 것”이라고 봤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