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정의 어울통신]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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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死孔明走生仲達.’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긴다는 뜻이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향후 몇 년 간 그림을 그려놓았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잡스를 제갈량에 비유하고 삼성전자를 위나라에 빗댄 얘기로 회자됐다.

 정말 그럴까. 잡스의 창의력, 혁신, 혜안과 공명의 지략을 상상하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사마의가 갖고 있던 목표를 생각하면 반대의 경우를 유추해볼 수 있다.

 오히려 양국 입장에서 보면 공명의 죽음이 전쟁에서 역전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공명의 지략은 인정하지만 전쟁의 결과는 그게 아니라는 얘기다.

 삼성과 애플의 휴대폰 특허 대전도 이렇게 유추해볼 수 있지 않을까.

 삼성은 현재 판매금지 가처분과 특허소송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다. 이미 네덜란드에서 갤럭시S2와 갤럭시탭의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으며, 독일에서도 갤럭시탭 판매금지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호주 역시 판매금지가 됐다. 반면, 삼성이 제소한 아이폰·아이패드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은 기각됐다.

 간단히 생각하면 전선은 현재 삼성이 불리한 상황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미국 등지에서 신청한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삼성의 대응이 너무 안일했다는 지적이 뒤늦게 나오는 이유다. 공명처럼 갖은 전략과 전술로 덫을 쳐놓은 상황에서 삼성이 말려든 게 아니냐는 것이다.

 애플이 삼성과의 로열티 협상 국면을 특허침해 소송으로 선제 공격, 기선을 제압했다는 것이다. 독일과 네덜란드에서의 디자인 특허 소송이 대표적이다.

 결국 네덜란드 법원은 애플의 전략대로 움직여줬다. 삼성의 특허가 통신기능이 꼭 필요한 것이지만, 표준이 된 기술의 경우 공정하고 합리적인 조건으로 타 업체가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애플이 선제 공격을 택한 이유는 뭘까.

 현재 삼성은 애플에 모바일 CPU를 독점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애플이 부품 가격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다는 불만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갤럭시의 성공도 부담스럽다.

 삼성의 대응에 궁금증이 더해가는 대목이다. 삼성은 일단 개전 초반 애플의 전략에 말려든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중달의 경우처럼 수비 전략이 유효한데, 역공의 빌미를 줄 수 있는 공격에 치중했기 때문이다.

 표준 특허 약발이 없는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보다 본안 소송에 집중해 로열티를 많이 챙기는 실리전략으로 전환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특허와 함께 현재 부품 공급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압박을 가하는 방법도 있다. 부품가격을 대폭 인상하거나 공급량을 축소하는 방법도 있다. 수비 전략의 강점을 활용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두 방법 모두 출혈을 감수해야 한다. 막강 통신특허 화력에도 불구하고 적의 선공(先攻)에 내상이 없을 수 없다. 최악의 경우 결별 시나리오도 감수해야 한다.

 화해와 협력이 최선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삼성은 17일 일본 도쿄와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법원에 아이폰4S의 판매금지를 요청, 공세에 나섰다.

 전장에서 팀 쿡과 이재용이라는 양대 수장의 회담을 앞두고 치열한 지략 싸움을 벌이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초반 불리하게 돌아가는 형국에서의 전략치곤 꽤나 도발적이다.

 자신감이 없이는 역공을 취할 수 없다. 그러나 자칫 퇴각하려는 적의 군대를 무리하게 몰아치면 역습으로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 수비의 목적은 적의 군대를 효율적으로 물리치는 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공명은 죽었고, 중달은 살아서 후일을 도모했다는 사실이다. 촉나라는 망했고, 중달의 손자는 진나라를 건국했듯 철저하게 실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말이다.


 박승정 통신방송산업부 부국장 sjpar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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