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올해 마무리하려던 220만대 규모의 원격검침인프라(AMI) 교체·보급 사업이 핵심부품 부재로 해를 넘길 전망이다. 한전이 지난 5월 저압 AMI 시스템용 전력선통신(PLC) 모뎀과 데이터 집중장치(DCU) 등의 입찰을 돌연 취소한 후 아직까지 구매규격에 맞는 핵심부품인 PLC 칩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전은 구매규격과 관련, 전기연구원이 시험평가를 거쳐 재입찰을 공고한다는 입장이다. 업계는 입찰공고가 나더라도 조건에 맞추기 위해서는 최소 3개월의 시간이 걸리는 만큼 보급 사업이 차질을 빚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전은 ‘한국인정기구(KOLAS) 시험 충족제품 부재’를 이유로 관련 입찰을 마감 하루 전날(5월 25일) 전격 취소했다. 한전 구매규격을 충족하려면 KOLAS 시험 조건을 통과해 △국내표준(KS X 4600-1) △국제표준(ISO/IEC 12139)에 부합해야 한다.
하지만 업계는 사업 연기 원인을 규격제품 부재보다는 칩 제조사인 젤라인이 2010년 첫 사업에 입찰물량을 독점하는 등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젤라인은 과거 산업자원부 시절 전기연구원 등과 100억원 규모의 PLC 칩 개발 국책사업을 수행해 관련 원천기술을 보유한 회사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구매규격도 사실상 젤라인 칩을 기본 가이드로 한 것으로 일감 몰아주기와 같다”며 “올해 입찰도 젤라인 칩이 KOLAS 시험항목 가운데 일부를 빼놓고 진행한 사실이 발각되면서 중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감사원은 2010년 입찰에 대해 공정성을 담보하지 못했고 한전KDN과 젤라인의 독점적 지위가 지속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고 구매계약에 특정업체가 계속 낙찰되는 일이 없도록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한전은 젤라인이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는 있지만 공동 개발한 국책 연구결과가 구매규격이었지 젤라인 칩 자체가 규격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관련 표준 역시 공개돼 있어서 다른 업체들이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김중겸 한전 사장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PLC 칩과 관련 새로운 규격표준 마련이 마무리 작업에 있다”며 “앞으로는 관련 입찰공고가 의혹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기연구원은 관련 시험 장비를 보완하는 등 PLC 칩 평가기준을 다시 손보고 있으며 곧 작업을 완료할 계획이다.
박태준·조정형 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