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칼럼]현실국가 vs 가상국가

  안철수 교수 열풍이 불었다. 4일 안철수 교수 바람을 타고 박원순 변호사가 조직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서울시장 통합후보로 선출됐다. 겉으로 보기에 현실 정치판에서 기적적으로 승리를 쟁취한 것처럼 보이지만 박원순 변호사 측의 승리는 가상 공간이 기반이었다. 실제로 투표 마지막에 트위터를 중심으로 젊은이끼리 현실 정치 참여를 독려했던 게 큰 도움이 됐다.

 요사이 현실 세계에서 실체가 없는 사이트를 국가와 유사한 개념으로 말하는 학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바로 ‘페이스북(facebook)’이야기다. 데이비드 포스트 템플대 포스트 법학과 교수는 “페이스북은 근대 민족국가와 비슷하게 사람이 모이게 하고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다. 정치학자 베네딕트 앤더슨 역시 “페이스북은 상상 속 공동체”라면서 “그 속에서 수백만 명의 익명 동료·시민과 유대감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7월 이미 5억명을 돌파한 이 거대한 인터넷 사이트는 인구 규모 면에서 중국과 인도에 이어 3번째로 큰 국가에 해당한다. 페이스북 크레디트(facebook credit)를 중심으로 세금도 징수하면서 자체 경제 시스템도 계속 확장되고 있다. 온라인 포럼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약관도 변경하는 등 초기 수준의 정치 체제를 갖추면서 국가의 초기 형태를 갖추어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가상 국가 등장으로 인해 현실국가와 갈등이 점차 표면화 돼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첫 번째 전쟁은 현실국가의 승리로 끝났다. 지난해 초 구글은 중국의 사전 검열에 대한 반발로 중국 정부와 첨예한 갈등을 벌였다. 결국 개인 사생활 정보보호를 위해 사전검열을 거부했던 구글의 원칙을 포기하면서 중국 정부의 요구를 수용하고 말았다. 정치적인 이슈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현실국가와 가상 국가의 힘겨루기가 시작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프랑스 의회는 2011년 7월부터 온라인 광고에 세금을 물리는 이른바 ‘구글세’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현실국가와 가상국가의 전쟁 2라운드는 지난해 7월 세계를 뜨겁게 달궜던 위키리크스(Wikileaks) 사건으로 시작됐다. 위키리크스 설립자 어산지가 미군의 아프가니스탄전 기밀문서 7만7000여건을 폭로한 것을 시작으로 이라크전 문서 40만건이 공개됐다. 11월부터는 미 국무부의 외교전문 25만건이 차례로 폭로되면서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가상국가가 현실국가의 비리를 폭로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여기에 놀란 현실국가가 어산지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됐다. 어산지가 체포되자 어산지와 위키리크스를 지지하는 네티즌이 현실국가의 사이트를 공격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현실국가와 가상국가의 2라운드 전쟁에서는 가상국가가 승리를 얻었다. 이로서 승부는 일 대 일이 됐다.

 그러나 전쟁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현실 국가와 가상 국가의 충돌은 정치, 경제, 사회 분야에 다양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측이 된다. 네티즌의 적극적 지지를 받아 선거에 승리한 노무현 정부, 트위터와 유튜브의 힘을 빌어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버락 오바마, 트위터로 승리한 국회의원들! 미래에는 가상국가가 현실국가의 정치인을 도와주는 수준을 넘어서서, 가상국가가 단독으로 현실정당을 무시하면서 대선주자나 총선주자를 내 놓을 수도 있다.

 네티즌이 ‘신상털이’로 정치인들의 과거 언행을 모두 드러내면서 현실 정당 등의 공천을 믿지 못하겠다고 선언을 하고, 자신들이 직접 국회의원 경선후보를 선정하고 네티즌끼리 경선을 거쳐 최종 후보를 선정한다. 이 후보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통해 현실 정당의 실제적인 공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현실국가는 현실의 법을 들어 이를 규제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시간문제일 뿐 그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미래에는 가상 국가가 스스로 경찰·공무원·국회의원·대통령을 선출하고 자체적인 경제·사회·정치 제도적 활동들을 더욱 더 활발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현실국가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현실 국가의 정보 통제권 역시 점점 더 약화되고 은밀한 정보를 지키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반면 정보를 순식간에 퍼뜨리기에는 너무나 쉬운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빨리 확산되는 정보는 다시 가상 국가 국민과 피드백을 통해 점점 확대 재생산 돼 나중에는 통제가 불가능해 질 수 있다. 향후 5~10년 내에 이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까. 앞으로 있을 총선과 대선에서 좀 더 빨리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최윤식 미래학자, 아시아미래인재연구소장 ysfuture@gmail.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