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원전인생 김종신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에게 원자력은 자식과 같은 존재다. 올해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세계적으로 주춤하고 있는 원전 산업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사회 진출을 앞두고 힘겨워하는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와 같다. 세계원자력협회에서 수 년째 원전 도입을 검토만 하는 각국 대표에게 “총만 겨누고 쏘지는 않으니 나중에는 방아쇠 당길 힘도 없을 것 같다”고 쓴 소리를 아끼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이후 제2·제3의 원전수출을 성사시켜 국내 원전 기술이 해외에서 큰 뜻을 펼치도록 하는 게 그의 최대 목표다.
김종신 한수원 사장은 국내 원자력 역사의 산 증인이다. 청년기 시절 원자력인력 양성 장학금을 받은 것을 계기로 지금의 원자력 컨트롤타워에 오르기까지 반세기 가깝게 원자력과 맺은 인연은 그의 삶 전부와 다름없다. 그만큼 원자력에 대한 신념 또한 과감하고 냉철하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때도 원자력에 대한 그의 신뢰는 더욱 강인하게 뿌리내렸다.
◇일관된 정책이 지금의 한국 원자력 산업 이끌어=“다양한 변수에도 원자력 정책은 일관되게 추진해야 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방향타로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원전 시장의 주도권은 물론 에너지위기 시대 대응력을 갖춰나갈 수 있습니다.”
김 사장은 우리나라가 단기간에 원전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발돋움 할 수 있었던 것은 주변 이슈에 흔들리지 않고 추진한 일관된 정책의 역할이 컸다고 평가한다.
고리원전 1호기 상업운전 1년 만에 미국에서 스리마일 섬 원전사고가 터졌지만 국내 원전정책은 유지됐다. 체르노빌 원전사고 때도 ‘10년 국가 원자력 자립계획’을 통해 첫 한국형 원자로인 ‘OPR 1000’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IMF 경제위기에는 차세대 원자로 개발에 착수 ‘APR 1400’이라는 결과물을 이끌어냈다.
김 사장은 국내 원전기술 발전사를 설명하며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도 세계 원전산업은 계속 발전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과거 몇 차례 원전 사고에 선진국들은 매번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관련 기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왔다”며 “이는 마땅한 에너지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의 선택으로 우리나라 역시 뒤쳐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지금 많은 나라들이 소극적인 원전 정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당장의 현상이 아닌 에너지 위기라는 현실을 직시하고 기술과 안전성 확보를 통해 위기를 기회로 바꿔야 한다는 견해다.
◇안전 최우선 경영이 곧 원전의 경쟁력=김 사장이 원전산업 경쟁력 중 가장 최고로 꼽는 가치는 ‘안전’이다. 한수원 사장으로 직무를 시작함과 동시에 내걸었던 ‘안전 최우선 원전’ 경영방침은 그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전부터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방증이다.
최근에는 안전 최우선 경영의 강도를 한층 높이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 직후 ‘원자력산업계 CEO 원전 안전 최우선 경영 다짐대회’를 열어 원전 관계자들의 관행적 업무태도를 강하게 질책하며 시작한 안전 강화운동은 ‘안전성 확보가 곧 원전의 경쟁력’이라는 그의 지론을 근간으로 한다.
한수원은 기술·설비·운영은 물론이고 작업자 마인드까지 포함한 원전 전반의 안전 점검을 실시했으며 이를 통해 지진·해일 등 중대 사고에 대응할 수 있는 6개 분야 50개 장·단기 개선대책을 세웠다. 개선대책은 연내 모두 착수할 예정이며 향후 5년간 약 1조원의 예산을 투입해 2015년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 지난 5월에는 ‘안전처·위기관리실·기술기획처’로 조직된 ‘안전기술본부’를 새롭게 구성, 원전안전 및 기술개발을 전담토록 했다.
노력의 성과로 지난 7월 국제원자력기구(IAEA) 통합규제 검토서비스(IRRS) 수검을 받은 결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한국의 대응이 신속하고 효과적이며 대중과 국제 이해관계자가 함께한 높은 수준의 조치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김 사장은 “국내 원전기술 국산화는 약 95% 수준으로 미자립 핵심기술인 설계핵심코드·계측제어시스템 등의 국산화를 달성하고 안전성이 대폭 향상된 신형경수로 ‘APR+’로 해외 원전 수주 우위를 선점할 것”이라고 밝혔다.
◇9.15 정전사태는 원전의 중요성을 각인시켜준 계기=“70·80년대 정전은 사회적으로 큰 혼란을 야기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난 15일 정전의 여파는 과거와 사뭇 달랐습니다. 그만큼 현 사회가 전기에너지에 대해 얼마나 의존적인 지를 알 수 있는 계기였습니다.”
김 사장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모든 것들이 전기와 연결돼 있는 현대 사회에서 원자력은 유일한 에너지 대안이라고 말한다. 9.15 정전사태와 관련해선 순환정전만으로도 사회 대혼란이 발생한 만큼 에너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신재생에너지가 완벽하게 자리 잡거나 핵융합 에너지가 상용화되기 전까지의 징검다리 역할을 위해서라도 원전은 육성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사람은 확률을 기반으로 삶을 살아갑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확률적으로 안전하고 효율적인 대안을 찾아갑니다. 난기류에 흔들리는 비행기를 걱정하면서 원거리 이동에 이용하는 것도 불안하기는 하지만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김 사장은 “원전은 양날을 가지고 있는 문명의 이기로 단점은 줄이고 장점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천만분의 일의 사태에도 철저히 대비해 에너지 위기를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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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동욱기자 gphoto@etnews.com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