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한 업체를 취재차 방문했다. 이 업체 본사를 방문해 놀란 것은 눈에 보이는 모든 전자제품이 ‘메이드 인 재팬’이라는 점이었다.
TV는 물론이고 프로젝터, 데스크톱 PC와 모니터, 프린터, 통역기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기기에 익숙한 일본 전자 메이커가 붙어 있었다.
다른 한 기업의 공장에 방문했을 때도 에어컨 등 주요 제품이 일본 제품이었다. 겨우 발견한 것은 CCTV 카메라가 한국 제품이라는 것 정도다.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도로를 다니는 자동차는 물론이고 공사장 굴삭기까지 일본 제품 일색이었다. 심지어는 도쿄 한복판에서 유명한 글로벌 커피 체인점도 찾기가 어려웠다.
우리나라 용산전자상가와 비슷하다는 도쿄 아키하바라를 방문했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건물을 가득 메운 전자제품 중 상당수가 일본 제품이었다. 삼성, LG가 장악하고는 있다지만 글로벌 제품을 고루 발견할 수 있는 국내 가전매장과는 판이한 광경이었다. 카메라는 국내 브랜드를 아예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다른 제품군도 어쩌다 구색을 맞추기 위해 전시됐을 뿐 주빈 대접을 받는 제품은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것이 일본 전자산업의 위상일까.
물론 그곳은 한국이 아니다. 글로벌 제품이 넘쳐나는 미국이나 유럽도 아니었다. 일본 본토라고는 하지만 자국 가전업체가 이처럼 시장을 많이 장악한 예는 드물다.
일본은 국가 규모에 비해 내수시장이 큰 대표적 나라 가운데 하나다. 인구 1억이 넘는 거대한 섬나라. 충분한 내수시장이 존재하고 어떤 제품과도 싸워 이길 자신이 있기 때문에 외국 시장이나 다른 업체 동향에 둔감한 것일까.
그것은 자존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립이다. ‘갈라파고스 증후군’이란 말이 있다. 남태평양 갈라파고스 제도가 육지에서 고립돼 고유한 생태계가 형성된 것을 빗댄 표현이다.
옳고 그름을 바로 따질 수는 없다. 다만 일본 본토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시장에서 한국을 위시한 세계 브랜드에서 일본 제품이 밀리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전자산업부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