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진대제 특별대담]동반성장으로 국가 경제 업그레이드...기회 균등과 공정한 거래가 핵심

"형평과 효율의 균형을 맞추자는게 동반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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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극화와 불균형은 우리뿐 아니라 세계 공통의 문제입니다. 이를 해결하는 이기적 이타주의, 이타적 합리주의가 21세기의 화두입니다.”

 이명박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역임한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과 노무현정부에서 정통부 장관을 역임한 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큐베스트 대표가 만났다. 경제학자와 반도체 연구자 및 기업가로서, 국무총리와 정보통신부 장관이라는 최고 행정가로서 우리나라 경제와 산업의 기틀을 닦아 온 두 거두가 새로운 도전을 맞은 한국 경제의 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업그레이드된 자본주의, 따뜻한 자본주의, 함께 성장하는 민주적 경제의 필요성에 뜻을 모았다.

 정운찬 위원장은 “이제 세계 경제는 개별 기업 간 경쟁에서 기업 및 그 협력 기업 집단 사이의 시스템 대 시스템 경쟁으로 바뀌었다”며 “중소기업이 어려우면 대기업도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운찬 위원장과 진대제 대표는 우리나라가 지향하는 경제의 큰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정치적 민주화를 넘어 경제적 민주화를 이뤄야 한국이 진정 훌륭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비전이다. 이를 위해 부자와 가난한 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도권과 비수도권 등의 균형과 형평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진대제 대표=위원장께서는 경제학자로서 일찍부터 효율뿐 아니라 형평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해 오셨죠?

 ▲정운찬 위원장=20년 전부터 한국 경제의 과제로 ‘형평’을 강조해 왔습니다. 우리나라가 정치적 민주주의를 어느 정도 성취했듯, 이제 경제적 민주화가 필요합니다. 평화적 정권 교체가 정치적 민주화라면,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경제적 교환을 하는 것이 경제적 민주화입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납품가를 후려쳐도 중소기업이 ‘울며 겨자 먹기’로 거래를 할 수밖에 없다면 경제적 민주주의가 없다고 봐야죠.

 경제적 민주화의 조건은 최소한의 먹을 것은 있어야 한다는 점과 구성원 간 최소한의 평등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동반성장은 경제 민주화를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진대제=최근 사회 분위기를 보면 정부에 대한 여론이 시선이 싸늘합니다. 날로 심화되는 양극화 등이 원인일까요?

 ▲정운찬=동반성장의 중요성을 세 가지 차원에서 보고 싶습니다. 우선, 양극화가 계속 심해지고 있습니다. 외환위기 전까지는 성장을 하면 다 같이 그 혜택을 입는 시기였습니다. IMF 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며 경쟁과 효율만이 강조됐습니다. 경쟁에 유리한 사람은 계속 위로 올라가고,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격차는 더 벌어졌습니다.

 영국과 이스라엘에서도 청년 실업자들의 폭동과 소요가 있지 않았습니까. 이대로 가다간 한국 사회가 온전할 지 걱정입니다. 동반 성장을 통해 어려운 사람의 마음을 달래줘야 합니다.

 국제 경제의 경쟁 패러다임도 바뀌었습니다. 개별 기업 간 경쟁이 아니라 기업과 그 협력 업체들이 구성하는 시스템 간의 경쟁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나 머크 같은 기업이 우수 엔지니어를 많이 데리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모자라 외부와 협력을 계속하지 않습니까? 중소기업이 잘 돼야 대기업도 잘 됩니다. 우리 국민은 평등 의식이 강한 것이 현실입니다. 양극화가 심해지면 나라 경영이 더 힘들어질 것입니다.

 -진대제=혼자만 잘 살 수는 없다는 깨달음을 실천에 옮기려는 노력이 세계 곳곳에서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정운찬=불평등과 불균형은 세계적 현상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세계의 화두가 되고 있죠? 최근 테러가 심해진 것도 함께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퍼지게 된 원인입니다. 워렌 버핏이나 빌 게이츠가 세금 더 내겠다고 하는 건 자신을 돈 벌게 해 준 시스템을 안정시키려는 것인데, 우리 대기업은 아직 그런 점을 파악 못 한 것 같습니다.

 

 대화는 자연히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에 관한 내용으로 이어졌다. 동반성장위원회의 핵심 어젠다인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한 논의도 나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동반 성장이 경제적 민주주의의 기초라는 인식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처한 현실에 대한 지적도 빠지지 않았다.

 

 -진대제=형평과 효율의 균형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효율을 추구해 대기업과 국가 경제의 힘을 키워 그 우산 속에서 혜택을 나누는 것이 좋을지, 대기업이 그만큼 했으니 이제 자제하라 이렇게 두 가지 선택지로 나눈다면 선택이 애매합니다. 이익을 공유한다면 협력 업체의 기여를 어떻게 측정해 얼마나 보상할 것인가도 모호하고요. 대기업에 선의의 시혜를 바랄 것이 아니라 몇 가지 기초적 사항을 확실히 지키게 하면 어떨까요? 주문 관행을 투명하게 한다든지, 결제 기일을 앞당기거나 하는 것 말이죠.

 ▲정운찬=동반 성장을 위해선 기회 균등과 공정한 거래가 핵심입니다. 지금 말씀하신 불투명한 주문 관행이나 결제 기일 문제, 납품 단가 인하 압력 등은 대표적 불공정 거래 행위입니다. 현금 결제가 많이 늘었다지만 여전히 미진합니다. 기술 탈취와 인력 유출 문제도 있죠. 대기업이 설계도 갖고 오라 한 후 몇 개월 있으면 같은 제품이 다른 협력사에서도 나온다거나, 애써 키운 인력을 대기업에서 쓸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문을 투명하게 하고 현금 결제를 늘리면 동반성장지수 산정에 가산점을 주고, 지수가 높은 기업이 정부 발주 등에서 유리하게끔 하는 방안을 고민 중입니다. 원가연동제도 궁극적으론 해야 합니다. 전문 기술 인력이 이직할 때엔 프로 선수처럼 이적료를 내게 하면 어떨까 생각도 있습니다. 기술 보호를 위해서는 기술 임치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동반성장위원회가 민간 기구라 강력하게 몰아붙이기 힘든 한계는 있습니다.

 -진대제=굉장히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습니다. 다만 초과이익공유제 등은 여전히 애매하고, 자칫 사회적 저항만 더 커지지 않을지 우려됩니다.

 ▲정운찬=우리나라가 수출 의존형 경제라 국제 시장에서 가격으로 경쟁하려는 인센티브가 강한 측면이 있습니다. 폐쇄 경제라면 어떻게든 납품가 후려치기 막을 수 있겠죠. 하지만 수출 비중이 전체 GDP의 45%로 지나치게 높은 현실에서 품질은 물론이고 가격으로도 경쟁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결국 경쟁력 강화를 위해 사전적으로 협력 기업에 희생을 요구하는 것인데요, 그래서 대기업이 성과를 거두었다면 그 과실도 사후적으로 중소기업과 나누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기업 내에서 수익 나누고, 사내 유보금 쌓아두는 것도 좋습니다. 대기업이 기대 이상의 수익을 거둔 배경에는 협력 업체에게 좋은 품질의 제품을 공급받았거나 납품가를 내렸거나 하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

 이런 부분을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 개발을 돕거나, 중소기업이 인력을 고용할 때 대기업이 지원해 준다던지 하는 식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생각해 봤습니다. 나중에 보니 국내외에서 이런 사례가 적지 않게 있더군요. 저보고 급진 좌파니 하는 비판이 많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계속 국민을 설득해 나갈 생각입니다.

 -진대제=협력업체의 수익률이 대기업에 비해 많이 떨어집니다. 대기업이 협력 업체의 원가를 따지고 이익률을 결정해 가격을 매겨버리는 경우도 있죠. 대기업들이 이익을 계속 유보하는데, 그 돈으로 중소기업에 인력과 기술을 지원하거나 설비 지원을 해 주면 어떨까요? 장기적 협력 관계 가능할 것 같은데 대기업은 그런 부분에 아직 별 뜻이 없어 보입니다.

 ▲정운찬=대기업의 수익률이 8% 정도라면, 협력사는 2~3% 정도인 것이 현실입니다. 어떤 대기업은 ‘협력 업체에 몇 %의 수익률은 보장해 준다’ 이러기도 합니다. 대기업의 영업이익률을 0.5%나 1%만 낮춰도 중소기업 이익률 많이 올라갑니다.

 현재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100조원 정도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죠? 대기업은 투자가 여의치 않습니다. 이제 우리 경제가 상당히 높은 수준까지 올라와 고도의 기술 없이는 수지가 안 맞기 때문에 투자를 못 합니다. 반면 중소기업들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투자가 아직 많이 필요한데, 돈이 없어서 투자를 못 합니다.

 초과이익공유제는 이렇게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자금이 흘러가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나라 전체에 투자가 계속 활발히 이뤄져야 하지 않습니까? 이런 내용을 담은 보고서도 조만간 나올 예정입니다.

 -진대제=정권이 바뀐 다음에 동반 성장 분위기 흐지부지되면 중소기업 입장에선 더 힘들 수도 있겠습니다.

 ▲정운찬=동반성장위원회가 민간 기구라 일의 효율성에 한계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양극화는 모든 나라가 관심 갖는 세계적 현상이고, 동반 성장은 21세기의 화두입니다. 정권이 바뀐다고 모른 척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동반성장지수를 잘 정착시키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대기업과 거래하는 모든 협력 업체 명단을 받아 무작위로 조사해야 하는데, 현재는 대기업이 제공하는 협력 업체 목록만 갖고 조사하는 상황입니다. 정확한 실태 파악과 동반성장 지수 평가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동반성장을 통해 창의적 중소기업들을 육성하고, 소프트파워를 높이기 위한 방안들에 대한 고민도 이어졌다. 벤처 기업, 중소기업들이 창의적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이같은 노력들이 받아들여지는 건강한 생태계가 건실한 경제 발전의 핵심으로 떠오른 현실을 반영한다.

 

 -진대제=동반성장위원회의 정책이 대기업에 종속된 중소기업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대기업 협력 업체에 혜택을 주면 대기업만 바라보며 국내 시장에서만 활동하는 중소기업들을 양산할 우려도 있고요. 이는 결국 시장 경쟁력 저하로 이어집니다. 세계 시장을 겨냥하는 중소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 잘 진출할 수 있도록 돕는 방안도 필요합니다.

 ▲정운찬=물론입니다. 중소기업의 살 길은 기술 개발과 해외 진출밖에 없습니다. 그냥 도와주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코트라 등과 협력해 해외 진출 노력 하고 있습니다. 아직 규모는 작지만 계속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진대제=우리나라가 IT 강국이었는데, 요즘 소프트웨어 경쟁력에서 외국에 뒤지고, 플랫폼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우려도 큽니다. IT 전담 부처를 둬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고요.

 ▲정운찬=IT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이건 확실한 듯 합니다. 과거 정통부나 과기부를 통폐합한 것이 20~30대 젊은 세대가 현 정부에서 많이 돌아서게 한 원인이라고 봅니다. IT를 소홀히 한 것이 현 정부에 부정적 영향 미친 점이 있습니다.

 -진대제=위원장님은 언제나 정치권의 잠룡으로 거론되는데요.

 ▲정운찬=사실 이런 저런 권유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떤 일을 맡았으면 반드시 마무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살아왔습니다. 2006년에도 서울 시장 출마를 제안 받았지만, 서울대 총장 임기를 마치기 위해 고사했습니다. 지금은 동반성장위원회와 제주-세계 7대 자연경관선정범국민추진위원회 활동에 바쁩니다. 동반성장위원회 임기가 2년인데 적어도 1년은 해야죠. 4월에 분당 재보선 선거에 안나온 것도 그래서입니다.

 -진대제=세계 7대 자연경관 투표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으시죠?

 ▲정운찬=우연한 기회에 위원장을 맡게 되었습니다만, 아름다운 제주도를 널리 알리고자 적극 활동하고 있습니다. 7대 자연경관 투표가 사기라는 주장도 많이 나돕니다만, 제 양심을 걸고 해볼 만한 일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세계 많은 사람들이 관심 갖고 있는 이벤트이고, 우리나라 이미지를 높이고 관광 수입도 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후손들이 크게 덕을 볼 수 있으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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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희기자 hah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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