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디지털이다(Being Digital)’로 지금의 세계를 예측해 세계를 놀라게 했던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 그가 지난달 3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그의 전망은 놀라우리만치 맞아 떨어져 가고 있다. 그러면 앞으로 세상은 어떻게 변화할까.
스스로 “나는 미래학자가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미래에 대한 혜안을 가진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한 가지 화두를 놓고 자유롭게 그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네그로폰테 교수는 변화하는 정보기술(IT) 사회에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창의적이고 남들과 차별화된 생각을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더 이상 전통적인 방송, 컴퓨터, 출판사 간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에는 새로운 발상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애플의 폐쇄성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또 구글이 독점해가고 있는 구도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IT 생태계는 여러 산업 간 융합으로 발전해 나간다는 그의 믿음은 확고해 보였다.
-MIT 미디어연구소(랩)에서 하는 창의적인 연구 결과는.
▲미디어랩은 다양성을 우선으로 생각한다. 대학에서는 보통 특정 분야를 좁고 깊게 연구한다. 하지만 미디어랩에서는 굉장히 다양한 사람이 모여서 연구한다. 전자공학을 했다고 그 쪽만 공부하는 건 아니다.
미디어랩에는 각 분야에서 기존 틀에 적응하지 못하는 특이하고 창조적인 사람들을 모아놨다고 보면 된다. 이를테면 ‘괴짜(crazy)’들이 모여 있다. 또 교수 회의를 해보면 10~15명 중 전공이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냥 아무 제약 없이 자유롭게 연구한다. 우리 랩에서는 “누가 어떤 연구를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점은 꼭 기억하고 있다. 미디어랩에서는 누가 원하는 연구를 용역 받아 하지 않는다. 창조적인 발상을 한 당사자가 가장 창조적인 연구를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기회를 준다.
-미디어랩의 연구 분야는.
▲요요마 첼로 연주를 연구하고 라스베이거스에서 펼치는 마술 트릭을 연구했던 적도 있다. 차량용 아기시트 안정성 연구도 했는데 매우 가치 있었다. 우리는 누구를 가르치려고 연구하는 건 아니다. 미디어랩에서는 뭘 할지 말하고 싶지 않으면 말하지 않아도 된다. 항상 구성원들에게 “너는 너의 연구를 하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자신만의 금광에서 금을 캐내는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
미디어랩에서는 해결책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제기한다. 이게 미디어랩 창의력의 원동력이 된 것 같다.
-미디어랩 구성원의 특징이라면.
▲그 사람이 교수인지 학생인지 그들의 커리어가 어땠는지 신경 쓰는 사람이 있다면 미디어랩에서는 바보(Stupid) 취급을 받는다. 누구 눈치를 보지 않고 의견을 낼 수 있다. CEO에게 바보같은(Stupid)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내게는 해도 된다. 미디어랩에서는 괴짜들을 사랑한다. 그런데 한국의 괴짜는 정반대인 것 같다. ‘아웃사이더’가 되는 것 같은데 그들의 창의성 가치를 알아봐야 한다고 본다.
-산업계와 차이는 무엇인지.
▲산업계는 결정이 빠르다. ‘헤지(위험 분산)’ 개념도 갖고 있다. 삼성을 예로 들면 LCD를 생산하면서 다른 산업도 같이 갖고 있다. 또 비용을 생각해야 한다. 사람당, 시간당 얼마씩 들어가는지 보고 성과가 안 나면 빨리 실망한다. 디지털 위성에 투자를 한다고 생각하면 매킨지 같은 컨설팅 회사에서 보는 시각과 미디어랩에서 보는 시각은 다르다. 미디어랩에서는 흥미가 있다면 오랜 시간 그냥 둔다.
삼성전자에서도 연구원이 꽤 많이 와서 연구를 하다 갔다. 그들이 조금 달랐던 점은 언제나 ‘삼성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묻고 해결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좋은 경험이었다.
-미래 사회는 어떻게 변화할까.
▲15년 전 ‘디지털이다’를 썼을 때와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미래에는 아마도 학술적으로도 더 많은 디지털 기술이 등장할 것이다. 또 ‘색다른 사람들(others)’이 지형을 바꿀 것이다. 기다리다 보면 색다른 사람들이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시장에 등장할 것이라고 본다.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융합’ 키워드가 지배해왔다. 차세대 키워드는 뭐라고 생각하는가.
▲‘색다른 것(others)’이 될 것이다. 한국에서는 영어단어 하나를 키워드로 놓고 방향을 정하는 게 트렌드인 것 같다. 그리고 그 쪽으로 모두 몰려가는 것 같다. 3년 만에 한국에 와보니 ‘스마트’라는 단어가 너무 많이 보인다.
창조를 위해서는 너무 명확한 구분은 좋지 않은 것 같다. 1979년 MIT 미디어랩 설립 이전에 그렸던 다이어그램이 있다. 세 개의 원 안에는 각각 ‘방송’ ‘컴퓨터’ ‘출판’이 들어 있었다. 당시 2000년대 들어서면 이들이 융합할 거라고 얘길 했었다.
오늘날 실제로 모든 것들이 하나의 틀에 쏟아 부어졌고 서로서로 협력해서 뭔가를 이루게 됐다. ‘오믈렛 이론’과 일맥상통하는 얘기다. 아무튼 나는 ‘미래 학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믈렛 이론이란 예전에는 달걀프라이처럼 흰자와 노른자 경계가 명확했지만 이제는 흰자와 노른자가 섞인 오믈렛처럼 각각의 영역 구분이 모호해 진다는 이론을 말한다.)
-애플과 구글에 대해 얘기하자면.
▲애플은 이미 큰 문제에 직면하고 있고 구글도 마찬가지다. 애플은 트랜드를 잘 읽었고, 디자인이 뛰어난 제품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놓치고 있다. 사람들은 창의적인 무언가를 하길 원한다. 애플 정책은 아이튠스에 종속된 소프트웨어를 고집한다. 너무 폐쇄적인 시스템을 사용해 호환성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아이튠스는 사용자가 프로그래밍해서 바꿔 쓸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다. 내 생각에 이것 때문에 애플은 난관에 봉착할 것으로 본다. 애플은 모든 것을 제어하려고 하는데 그것이 문제다. 아이패드는 전형적으로 소비를 위한 도구다. 소비는 건설적이지도 않고 배움을 주지도 못한다. 구글은 독점 문제가 있다.
-한국 IT에 조언을 한다면.
▲한국에서 어릴 때 받는 일방적인 교육제도가 소프트웨어 개발에는 치명적일 수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치면서 사고방식에 제약을 받게 된다. 미국 교육제도에도 문제가 많다고 하지만 창의성을 발휘하는 데는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교육은 창조적이어야 한다.
-차세대 방송이란 어떤 것일까.
▲운동경기를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이 동시에 같은 것을 보는 ‘방송(Broadcast)’이라는 것 자체가 필요 없다고 본다. 왜 꼭 실시간 방송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요즘도 TV를 실시간으로 보는가. 참으로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앞으로 TV는 대형화될 것이다. 그리고 벽에 걸려서 창(윈도)으로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해상도를 높이거나 3차원(D) 디스플레이를 구현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 부분은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이다. 그 창으로 스위스의 경치를 볼 수도 있고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도 볼 수 있다. 이런 기능을 위해서 방송이 필요하지는 않다. 우리 손자 손녀들은 예능이나 드라마를 실시간 방송으로 보지는 않을 것이다.
사진=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