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발생한 전국적인 대규모 정전사태는 예년에 없던 이상고온 현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력수급 상황이 급변할 것을 예측하지 못한 점은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았다.
한국전력과 전력거래소는 15일 전압 조정이나 기존에 계획돼 있던 전력사용 기업들과 협의해 전력을 확보하려 했으나 전력수요가 급격하게 발생함에 따라 순환정전 조치를 취했다.
순환정전 조치는 사실상 최후의 보루였다. 일반적으로 전력수급 위기 상황이 오면 정부는 3단계 조치를 취한다. 공급예비력이 500만㎾ 이하로 떨어지면 계획 중인 발전정지 및 시운전발전기 시험일정을 조정해 공급능력을 확보하고 기업 및 전력 과소비 시설물의 전력감축량에 대해 일정 보상을 해주는 식으로 수요관리를 시작한다. 400만㎾ 이하부터는 수급 경보를 발령하고 이때부터는 국내에서 가동이 가능한 모든 발전기를 가동하는 것은 물론이고 출력상승까지도 진행한다.
마지막은 공급예비력 200만㎾가 무너지는 순간으로 사실상 마지노선이다. 상황이 이 정도까지 오면 정부가 전력수요에 직접 개입한다. 15일 있었던 순환정전이 대표적인 예다. 순환정전 조치도 통하지 않으면 전국은 광역정전이라는 대재앙에 빠지게 된다.
15일 정전사태는 이 같은 정상적인 전력수급 대책 단계를 거치지 못하고 바로 마지막 단계를 적용하면서 빚어졌다. 지난 9일로 비상수급 상황이 종료하면서 정부가 사실상 여름이 끝났다고 판단해 23기의 발전소 계획정비에 들어간 이유도 컸다. 계획정비로 우리나라 전체 발전설비 중 11%에 달하는 834만㎾의 발전설비가 운전을 중지했고 15일 전력사용량 증가에 대응할 여력이 부족했다. 올해 1월 17일 7313만㎾의 역대 최대 전력피크를 경신했을 때도 발생하지 않았던 정전사태가 6726만㎾의 전력사용량에 발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정전사태는 충분히 전력공급이 가능한 설비가 있었음에도 이상고온으로 수요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와 전력거래소 입장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전력수급 및 계획예방정비 기간에 대해 재검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추석 연휴와 이상고온으로 평년과는 다른 수요가 발생해 예측이 어려웠고 발전소 정비도 안할 수 없는 만큼 불가항력적인 부분이 있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가능한한 발전소 정비를 조기에 완료해 추가 전력설비를 투입하는 등 보완대책을 마련해 유사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중장기적으로는 발전소 발전용량을 늘리고 국민의 에너지 절약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전력수급계획 및 계획예방정비 재점검과 같은 정책만으로 15일 정전사태 재발 방지를 바라는 데는 무리가 있다. 지난 5년간 우리나라의 전력사용량은 매년 평균 305만㎾씩 증가한 반면에 발전설비 규모는 매년 270만㎾ 정도씩 늘었다. 신규 발전설비 증설속도보다 전력사용량 증가속도가 더 빠른 셈이다. 지금 같은 전력사용 추세로는 전력수급계획과 수요예측을 아무리 잘해도 정전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는 게 전력 업계 시각이다.
김도균 지식경제부 전력산업과장은 “이번 정전사태는 수요 억제와 정비 설비 긴급 가동으로 정상화했지만 근본적으로는 향후 재발방지를 위해선 발전 용량 증대와 전력소비 감소가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염명천 전력거래소 이사장은 “이상고온 현상이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계획예방정비에 들어간 발전소 긴급가동 및 수요관리 시장 개설 등 가용수단을 모두 동원해 정전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표>정전사태 일지
조정형·정미나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