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신문 ‘미래팀’에서는 특별기획으로 세계적인 미래 석학을 직접 만나 그들이 말하는 기술 진화의 현주소, 앞으로 다가올 산업과 사회의 진짜 모습을 조망해 봤다. 인터뷰는 현지 미래연구소를 방문해 릴레이 형태로 진행했으며 세계 혁신포럼 창립자인 마리나 고비스 미래연구소장, ‘미래지향적 민주주의’ 저자 클레멘트 베졸드 대안미래연구소 창립자, 세계적인 통신연구소 벨렙의 김종훈 사장을 두루 만났다. 미래 석학 인터뷰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김흥남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 등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세 개 테마로 나눠 인터뷰 전문을 매주 목요일 3회에 걸쳐 연속으로 게재한다.
(상) 마리나 고비스 ‘스몰 캐피털’
(중) 클레멘트 베졸드 ‘사이버 민주주의’
(하) 김종훈 ‘스마트 네트워크’
세계 혁신의 근원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만난 마리나 고비스 미래연구소(IFTF:Institute for the Future) 소장은 “특정 기술로 생기는 사회 변혁은 일반적으로 40~50년 사이클을 보인다”며 “인터넷이 처음 선보인 이후 40년 만인 지금 격변기를 맞았다“고 진단했다.
고비스 소장은 이어 “실리콘밸리에 다시 혁신의 물결이 넘치고 있다”며 “흥미로운 점은 이전과 달리 젊은 기업가가 창업을 위해 큰 자본과 투자를 받는 대신 카페에 앉아 코드만 꽂고 바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형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마디로 클라우드 컴퓨팅 덕분에 ‘스몰 캐피털 창업 시대’가 열렸다고 분석했다.
이 자리에는 마이크 리브홀드 IFTF 명예연구원이 배석했으며 마리나 고비스 소장과 함께 질문에 답변했다.
리브홀드 명예연구원은 “기술 발전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 그만큼 파괴적인 혁신이 이뤄지고 있다”며 “지금까지 변화는 이제 시작일 뿐 앞으로 목격할 혁신은 더욱 거세고 복잡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세 가지 혁신의 모습으로 △하이퍼포먼스 모바일 디바이스 환경 △유틸리티 컴퓨팅이 진화한 클라우드 컴퓨팅 등장 △데이터가 빅뱅 수준인 ‘리퀴드 데이터(Liquid data)’ 현상을 꼽았다.
-가장 관심 있는 분야는.
▲미래연구소에서는 여러 기술과 관련한 연구와 투자를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보건 의료 미래에 관심이 높다. 여러 의료 자원을 이용해 어떻게 건강하게 살 수 있는지, 식량의 미래 등 트렌드에 주목하고 있다.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5~10년 후 미래에 집중한다.
-기술과 문화의 지체 현상이 심각하다. 세대 간 격차 해결 방법이 있나.
▲첨단 기술 특히 인터넷이 개발된 지는 상당히 오래됐다. 40년이 넘었다. 하지만 이제야 인터넷으로 사회 변화가 시작됐다. 사회 변혁이 일어나는 사이클이 40~50년 주기를 보이기 때문이다. 첨단 기술로 발생하는 사회 구조 변화는 사실상 이제부터인 셈이다.
지금 시대 변화상을 단순히 컨버전스, 트라이버전스로 말할 수 없다. 기술이 너무 빠르게 발전하고 성숙하기 때문에 파괴적인 변화가 속속 진행되고 있다. 앞으로 기술 변화와 이에 따른 사회 현상은 더욱 복잡하고 급격할 것이다.
실리콘밸리는 특히 변화를 목격하기 좋은 지역이다. 구글과 이베이·애플 등 모두 변화 중심에서 성장한 기술 기업이다. 실리콘밸리는 지금 작은 변화의 소용돌이 중심에 서 있다. 이는 이전과 다른 방식의 움직임이며 작은 변화가 전체 판세를 크게 흔드는 형국이다. 불과 5년 전에는 비용 때문에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이제는 가능해졌다. 소자본 창업이 대표적이다. 더 이상 젊은 기업가가 창업하는 데 큰 자본과 비용이 필요치 않다. 클라우드 컴퓨팅 덕분으로 카페에 앉아 코드만 꽂고 서비스와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게 가능하다. 비싼 컴퓨팅 자원이 필요하지 않다.
실리콘밸리가 특히 그렇다. 젊은이들끼리 서로 뜻만 맞으면 바로 창업하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세상을 바꾸고 사회적인 변화를 만드는 새로운 서비스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미래연구소 근처 1마일 반경 안에 50여개 신생기업이 있고 아마존 연구소, 페이스북 본사, 구글과 MS 연구소, 디즈니 게임 부문도 포진해 있다. 파괴적인 변화를 위한 환경이 갖춰져 있는 것이다.
-최근 메가 트렌드를 요약하면.
▲먼저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스마트패드 등 하이퍼포먼스 모바일 디바이스를 갖게 되었다. 두 번째는 유틸리티 컴퓨팅이 진화한 클라우드 컴퓨팅 시대가 우리 앞에 펼쳐졌다. 단순히 PC 수준 컴퓨팅 능력을 이용하는 데 벗어나 개인이 슈퍼컴퓨팅을 이용할 수 있는 시대다. 데이터 마이닝 등 종합적인 데이터 분석이 개인적으로 가능하다. 사진을 찍는 것인지 컴퓨터 그래픽(CG)으로 합성한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정교한 작업도 가능해졌다. 마지막으로 데이터 폭발 ‘리퀴드 데이터’ 현상이 뚜렷하다. 가령 안과·이비인후과·외과 등에서 쓰는 언어가 다른데 단일기기로 큰 언어 장벽 없이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 한 마디로 개인이 슈퍼컴퓨팅 능력을 갖게 된 덕분이다.
-스마트워크·러닝·헬스케어 등 스마트한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하나.
▲IT 힘을 빌려 능력이 확장된(Augmented) 개인이 등장한 것이다. 확장된 개인은 발달된 기술로 더 나은 능력을 발휘한다. 궁금하면 네트워크에 접속해 물으면 답을 찾을 수 있다. 개인 역량과 에코시스템이 결합해 특정 기관에 얽매이지 않고 보다 고도의 정보 인식과 분석 작업이 가능하다. 그 대신 인간이 늘 하던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은 기계나 소프트웨어가 대신해 준다. 기계와 파트너십이 만들어지고 있다.
-일자리를 늘리면서 로봇을 활용할 수 있나.
▲해결책을 찾고 있다. 쉽지 않다. 그러나 미국을 포함해 세계 일자리 현황을 보면 전문 지식, 법률 지식을 요구하는 일자리(Middle job:미들 잡)조차 사라지는 추세다. 일자리 감소는 지구적인 문제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의 하나는 소프트웨어가 대체하기 때문이다. 노년층과 베이비시터 일자리도 사라지고 있다. 일자리 감소 해결책을 예측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사실상 불가능하다. 단지 일부 일자리가 없어지는 대신에 새로운 종류의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가령 기존 제조업을 대체할 새로운 제조업, 분자 혹은 나노기술 단위의 정밀한 제조업이 그것이다. 중요한 점은 새로운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사고 구조를 가져야 한다. 어떤 식으로 공급과 소비가 이뤄져야 하는지 사회 구조에 많은 고민이 있어야 한다.
-파괴적인 혁신을 위한 정부의 역할은.
▲기술 진화로 미래에 발생할 문제를 어렴풋이 예상할 수 있다. 정부가 초기에 이를 인지하고 문제 해결에 나서면 그만큼 빨리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의료·의약 분야와 관련해서 수십년 동안 문서에 기반을 둔 의료와 의약 행위가 이뤄졌다. 컴퓨팅 시스템을 도입하면 이를 해결할 수 있지만 현실과 제도의 괴리가 불가피하다. 특히 대기업은 자신만의 시스템과 네트워크 안에서 정보를 갖고 상호 소통하지 않는 경향이 심하다. 정부 역할은 이런 딜레마를 인식하고 초기에 대응해 잡음을 줄이는 일이다.
게다가 정부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각계 전문가를 불러 모아 조기 대응이 가능하다. 질병통제센터·백악관 테러대응센터 등 이름은 다르지만 여러 정부 부처 전문가와 민간 전문가가 한자리에서 머리를 맞대면 그만큼 문제 해결 속도가 빨라진다.
-정부가 조정이 아니라 조율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정부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게 목적이다. 무엇보다 변화를 이끌 수 있는 규정을 제정해야 한다. 10년 전 뉴욕에 테러가 발생했을 때 소방서·경찰·항공 등이 모두 주파수 대역이 달라 통신이 불가능했다. 전면적으로 공개는 안됐지만 테러 발생을 전후에 문제를 더욱 크게 만든 주범이었다. 바로 재난 시에 서로 다른 주파수 대역이 큰 문제였다.
1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이런 문제가 여전하다. 기술적인 해결책이 있지만 부처 이기주의 때문에 해결이 안 되고 있다. 조만간 소프트웨어 기반으로 컴퓨터끼리 소통이 가능해진다. GSM·CDMA·블루투스 등 통신방식에 관계없이 양방향 통신이 가능한 칩까지 나왔다. 기술적인 조건은 모두 갖춰져 있다. 정부는 단지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주파수 사용 등 규정만 만들면 되는데 이게 쉽지 않다. 정부의 역할을 이런 곳에서 찾아야 한다.
미래도 마찬가지다. 조만간 공공 데이터에 접속해 일반인이 데이터를 살 수 있는 환경이 머지않았다. 정부는 누구나 접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공공 데이터를 대중에게 공개하는 것, 축적된 과학지식과 비즈니스 정보를 플랫폼화해서 데이터를 오픈하는 작업 등 혁신 환경을 제도적으로 자극하는 작업을 정부가 시작해야 한다.
-노년층 등 소외계층의 정보 격차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
▲스카이프에서 최근 영상통화에 관한 보고서가 나왔다. 영상통화 이전에는 소외됐던 노년층이 새로운 영상통화 기술로 서비스 진입 장벽을 무너뜨렸다. 테크놀로지는 몰라도 첨단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다. 모든 계층을 연결하고 거의 무료로 사용하는 보편 기술이 떠오르고 있다. 나라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노년층을 돌보는 일도 마찬가지다. 이를 게임처럼 재밌게 만들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누군가 와서 노인들에게 식사를 챙겨주면 포인트 주는 식으로 새로운 툴을 개발 중이다. 일상의 일을 게임처럼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요즘 트렌드다.
이제는 일상적인 인간 행위는 물론이고 중요한 결정 행위를 위해서도 기계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기계가 인간을 더 많이 이해하는 시대가 왔다. 기계를 통해 이해하는 방식, 사고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더 잘 이해해야 세상을 주도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마리나 고비스(Marina Gorbis)는
버클리대학에서 공공정책학 석사를 취득했다. 사회와 기술혁신의 본질과 미래 시장 흐름을 따라잡기 위해 ‘세계 혁신 포럼(Global innovation Forum)’을 창립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세계 민족 네트워크(GEN)’를 설립하는 등 다민족 문제에도 관심이 높으며 과학기술과 사회 조직의 상호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로 학계와 산업계에서 인지도가 높은 대표적인 미래 석학이다.
2006년부터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 있는 ‘미래연구소(IFTF)’ 소장을 맡아 더 나은 기술과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 함께 참석한 마이크 리브홀드 명예연구원은 통신 분야가 주된 관심사로 컴퓨팅·데이터·미디어 서비스 등 다방면에 연구 성과를 가지고 있다. 특히 미래 통신에 대한 혜안을 바탕으로 정부 통신정책에 조언하고 있다. 애플 연구소에서도 10여년 근무했으며 미 연방통신위원회(FCC)와 의회 등에서 수석기술정책 자문관으로 활동했다.
두 사람이 몸담고 있는 IFTF는 비영리 미래 연구그룹으로 포드재단 지원을 받아 1968년 출범해 역사만 40년을 넘긴 미국의 대표 미래연구소다.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 있으며 기술 융합, 소셜 경험, 글로벌 기술 흐름이 주된 연구 분야다. 일과 여가, 기술과 사회, 헬스와 헬스케어, 글로벌 비즈니스 흐름, 변화하는 사회상 등을 소주제로 미래 사회를 조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미국)=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