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인터넷을 감시하고 디지털 세계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인터넷상의 많은 문제를 풀기 위해 규제로 해법을 찾기 전에 기술적 해결방안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
지난 5월 24, 25일 이틀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e-G8’은 인터넷을 규제하려는 정부와, 이를 열린 공간으로 두고 산업 자정기능에 맡기자는 기업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는 단순히 인터넷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규제가 유효한지의 문제를 넘어선다. 정부는 시장 질서를 유지하거나 시장 활성화를 위해 새로운 산업을 규제하려는 습성이 있고, 이는 개방과 협업이 강조되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과거와 같은 방식의 규제나 정책은 오픈 시대에는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경쟁과 신속한 변화에 정부 규제는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고, 개방조차 정부가 주선하려는 태도는 구시대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오픈 환경에서는 정부 정책과 규제의 역할도 새롭게 요구된다. △기업이 창의성을 발현할 수 있도록 자율을 보장하고 △혁신과 소비자 이익이 보호될 수 있는 열린 경쟁 환경을 만들며 △스스로도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 오픈 시대 정책의 역할이다.
◇산업 자율 우선하는 최소한의 규제=사르코지 대통령 발언으로 유럽 정부가 강력한 인터넷 규제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재까지 유럽은 관련 규제에서 업계 자율을 중시한다.
대표적인 예가 게임등급제다. 독일을 제외한 유럽연합(EU) 소속 국가는 2003년 발족한 산업자율규제기구 범유럽게임정보(PEGI)의 등급제를 따르고 있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PEGI 등급제지만 대부분 기업이 이를 지키며 건전한 게임 이용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별도로 게임등급제를 실시하는 독일 역시 자율규제기구인 USK가 이를 총괄한다. 이는 미국과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업 스스로 만든 규약을 지킴으로써 한층 성숙한 산업과 다양한 문화 형성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전자상거래에 분쟁이 발생하면 자율기구인 FDI에서 이를 조율한다. 자율기구 중재지만 이를 이용해 갈등을 해결한 경우가 89%에 이를 정도로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문제가 발생하면 정부가 나서서 관련법을 제정하거나 강제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
팔크 피에로탱 FDI 회장은 “인터넷을 통제하기보다는 지금의 법적 권위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적용하고, 생태계를 활성화할지 고민해야 한다”며 정부 역할을 정의했다.
◇열린 경쟁 보장이 정책의 핵심=아이폰이 처음 출시됐을 때 한 국가당 한 이동통신사에서만 공급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 원칙이 가장 먼저 깨진 곳이 프랑스였다. 프랑스 공정거래위원회는 프랑스텔레콤에서만 아이폰을 독점 판매하는 것이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막는다며 다른 이통사를 통한 판매를 명령했다. 결과는 단순히 아이폰을 여러 통신사에서 구매할 수 있는 것을 넘어 프랑스 내 무선인터넷 생태계 조성으로 이어졌다.
유럽 각국은 올 들어 개정된 통신 규제법안을 국내법에 적용하느라 분주했다. 유럽 이통사들은 국가 간 경계 없이 서비스를 제공해왔지만 나라별로 상이한 규제 때문에 시장별로 서비스를 다르게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존재했다. 편린화된 규제가 신규 사업자 진출을 어렵게 한다는 판단에 따라 EU는 통신 규제 프레임워크를 재정비한 것이다.
이 두 사례를 관통하는 핵심은 ‘열린 경쟁’ 보장이다. 스마트시대에는 플랫폼을 소유한 기업의 시장 지배력과 독점적 영향력이 더욱 강화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오픈이라는 스마트 시대 강점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신규 사업자들이 자유롭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규제의 벽을 낮춰야 한다. ‘열린 경쟁’이 보장될 때만이 혁신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개방하는 적극적인 자세=개방을 촉진하기 위해 해외 주요 국가 정부는 규제 완화와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는 정책을 도입하는 동시에 스스로 개방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공공DB 개방이다.
국내 IT 업계에서 공공정보 개방은 수년간 요구된 분야다. 특히 스마트폰과 앱 생태계 구축으로 높은 신뢰도를 바탕으로 다양한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공공정보에 대한 수요는 더욱 높아졌다.
해외 주요 국가는 공공DB를 개방하는 것을 넘어 민간이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 상업적 활용까지 적극 권장하고 있다. 오픈 생태계에서는 민간의 창의성이 공신력 있는 정보와 결합할 때 시너지가 발생, 새롭고 창의적 산업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해외 정부들은 오픈소스 SW를 정부기관 시스템 구축에 적극 활용함으로써 IT산업에서 열린 경쟁 환경 조성에 앞장서고 있다.
이수운기자 per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