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신뢰, 왜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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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각국은 ‘큰 사회’ ‘부자 사회’를 향해 쉼없이 달렸다.

 산업화 경쟁을 통해 세계일류, 부국강병, 만인복지를 완성하는 일에 제1의 가치를 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했다. 9·11 테러-아프가니스탄 침공-이라크 전쟁이라는 연이은 문명충돌로 수많은 글로벌 시민이 죽어갔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은 2011년 글로벌 재정 위기까지 세계경제는 신음하고 있다. 수억명이 굶어 죽고, 빈부 격차는 나날이 커지고 있다.

 이제 믿음을 주는 사회, 서로를 챙기는 사회, 함께 발전하는 사회로 나아가지 못하면 산업도, 경제도, 시민사회도 모두 무너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됐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정의(正義)’ ‘공정(公正)’ 같은 단어들이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경제 용어도 아닌 철학이나 사회 용어들이 글로벌 경제 흐름이 이렇게 뒤흔든 것도 인류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이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저서 ‘정의는 무엇인가’ 신드롬이 그렇고, 아프리카 대륙 에티오피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커피를 둘러싼 공정무역 운동이 그렇다.

 이 단어들이 가진 철학적 개념은 올해 이명박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 ‘공생발전’ 선언으로 이어졌다.

 정의, 공정, 공생 등의 단어는 서로 쓰임은 달라도 ‘믿음(信)’이란 기초 뿌리는 같이 하고 있다. 이들 단어가 세상 사람 입에 많이 오르내리고, 강조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이를 이루는 기초인 믿음이 세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무너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굳게 믿고 의지한다’는 뜻의 신뢰는 왜 무너진 것일까.

 많은 학자의 연구에서 비슷한 결과가 도출됐지만, 이전까지의 사회·경제 구조가 믿음이나 신뢰를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산을 늘리고,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신뢰는 거추장스러운 장신구에 불과했다. 신뢰라고는 생산시간을 늘리고, 원료구매 단가를 낮추고 하는 계약관계에만 문구로 존재할 뿐이다. 정부와 국민, 생산자와 소비자, 고용인과 피고용인 등의 상호 관계에 있어선 완전한 민주성과 자율성이 완성됐지만, 서로의 신뢰는 깨졌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터졌을 때 타락한 금융 공룡을 탓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관리감독을 소홀리했던 미국 정부를 욕했다.

 세계 최고 서비스와 품질로 존경받던 도요타는 해외 생산 제품의 관리 실패로 수십년 동안 쌓아온 명성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렸다. 우리나라 한 대기업 총수는 주주들에게는 고액배당을 하면서도, 흑자상황에서 생산직 근로자들을 일방적으로 해고해 말썽을 빚었다.

 우리를 둘러싼 곳곳의 ‘신뢰 붕괴’ 현상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결국, 신뢰 붕괴는 한 국가의 정부 신인도 추락은 물론 신용까지 추락시키기에 이르렀다. 또 시대적 요구와 명령을 거스른 기업들은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기업의 생산 불안과 노사관계 악화는 기업 생존은 물론 국가경제의 큰 골칫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것이다.

 하루빨리 신뢰 회복에 나서 우리 사회와 경제를 ‘믿음’이 통용되는, 그래서 시스템적으로 ‘믿음’이 정착된 구조로 만들지 않으면 장래의 성장과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

 생존하는 일본 기업인 중 가장 이상적인 존재로 꼽힌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회장은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주창하며 한평생 ‘이타(利他)경영’을 펼쳤다. 그의 노력은 기업이 사람들에게 줄수 있는 가장 최고 가치의 믿음 그 자체였다. 이나모리 회장은 언론에 “리더는 나 혼자 많이 벌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다 함께 행복하겠다는 생각으로 경영해야 한다”고 자주 강조했다.

 그는 양육강식과 정글의 법칙 속에 당장 살아남아야 하는데, 너무 한가한 말 아니냐는 반문에는 “길가의 한 포기 풀, 한 그루 나무도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인간도 열심히 일해야 한다. 다만, 일할 때의 마음은 자비와 배려가 바탕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회사는 세습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남기고 65세이던 1997년 회장직에서 물러났고, 2005년엔 이사직에서 떠나면서 받은 퇴직금 6억엔을 모두 대학에 기부하며 세상에 그만의 가르침을 실천했다.

 ‘신뢰’가 주는 힘은 개인, 기업, 국가 등 고유하게 속한 범위를 뛰어넘는다.

 이미 지구촌이 됐듯, 70억 인구는 함께 호흡하고 있으며 국가들은 글로벌 무대에서 함께 경쟁하고 뛴다. 기업은 이미 세계인을 소비자로 경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있다.

 이런 환경에서 한 개인, 기업, 국가가 만든 하나의 좋은 신뢰 모델은 급속도로 다른 개인, 기업, 국가로 전파될 수 있다. 신뢰 회복 방법과 선례를 몰라 목말라하는 개인과 기업, 정부는 너무나 많다.

 ‘신뢰 바이러스’ 전파는 21세기 지구촌을 좀 더 살기 좋게 가꾸는 일이기도 하다.

 쓰나미, 대지진, 화산폭발 등 자연재앙으로 인한 지구촌 사망 규모는 이미 어떤 질병에 의한 사망규모 보다 많다. 아무리 의술이 발전해도 죽어가는 사람 수를 줄일 수 없는 것이다. 이럴 때 나라와 개인, 기업들이 조그마한 정성과 사랑으로 피해자를 돕는다면, 자연재해는 피할 수 없을지라도 이후 피해복구는 세계적 운동으로 승화될 수 있다.

 따뜻한 마음으로 이어진 지구촌은 이기심과 승부욕이 할퀴어 놓은 지구촌을 치유하면서 더 많은 자연재해도 줄일 것이다.

 ‘더 큰 사회’ ‘더 부자 사회’를 쫓던 마음을 버려야 한다.

 옆을 보고, 살피는 따뜻한 눈빛을 되찾아야 한다.

 그래야 ‘오래, 멀리’ 갈 수 있다.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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