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스 클로즈업] Digital Development in Korea(한국 디지털 발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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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정보통신(IT)산업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고속성장을 해왔다. 반도체와 휴대전화를 필두로 ‘메이드 인 코리아 IT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지금도 개도국을 중심으로 ‘IT 강국 코리아’를 배우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그들에게 한국 IT를 전수하고, 그들을 큰 틀의 아군으로 끌어안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권할 수 있는 ‘교과서’가 필요하다.

 대한민국 정보통신 산업의 발전을 주도했던 오명 웅진 에너지 폴리실리콘 회장이 ‘디지털 디벨로프먼트 인 코리아(Digital Development in Korea, 한국 디지털 발전사)’를 영문판으로 출간했다.

 저자인 오명 회장은 ‘한국 IT계의 살아있는 전설’, ‘과학기술계의 대부’로 불린다. 그는 1980년대 체신부 차관 재직당시, 우편 및 전신·전화 업무를 주로 담당하던 부처인 체신부의 비전을 ‘2000년까지 정보통신 장기계획’ 수립으로 삼을 정도로 앞을 내다보는 혜안이 탁월했다.

 전전자교환기(TDX) 개발과 전국 전화 자동화 사업을 통해 당시 신청에서 설치까지 1년 가까이 걸리던 전화를 당일 개통으로 이끄는 혁신을 이뤘다. 이를 토대로 관련 통신산업의 발전이 시작됐다. 또 한국의 경제 발전을 이룩한 열쇠인 4MD램 반도체 개발 사업을 추진했으며, 행정전산망 사업을 통해 주전산기를 국산화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에는 전산 시스템을 개발, 성공적으로 운영해 세계 언론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오 회장의 삶은 대한민국 정보통신 산업의 발전 과정과 맞물려 있기에, 책을 통해 우리나라가 어떻게 지금처럼 세계 제일의 IT 강국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한 사람의 일대기를 담은 회고록이라고 여기면 오산이다. 오 회장은 서사(敍事)에 그치지 않고 당시 입안과 제도정비를 주도한 위정자로써 정부의 고민과 해결방안을 학술적으로 풀어낸다. 권위있는 기관의 데이터와 표 등을 인용해 풍부한 사례집을 만들어냈다. 독자들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IT사를 통해 흐름을 통찰하고 철학을 정립할 수 있다.

 이 책의 부제는 ‘빌딩 언 인포메이션 소사이어티(Building an information society)’다. 한국말로 풀이하면 ‘정보사회 건국기’다. 최근 개도국 정부 관계자들이 우리나라 IT산업을 시찰하기 위해 방문하는 횟수가 잦아지고 있다. 앨리 노암 컬럼비아 대학 교수는 이 책 추천사에서 시찰보다 이 책이 더 요긴할 것이라고 말한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진리라는 것이다.

 오 회장은 IT 전도사로서 현재 콜롬비아와 파라과이 등 남미의 여러 나라에 우리의 기술을 전파하고 있다. 공동 저자인 제임스 F. 랄슨 역시 스탠포드 대학에서 정보통신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촉망받는 학자다. 한국과 미국의 석학이 만나 끌어내는 시너지는 강렬하다.

 세계 IT 산업은 지금 터닝 포인트에 서 있다. 글로벌 IT 공룡들이 인수합병(M&A)을 가속화하며 시장 질서를 재편하고 있고,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서비스들이 나오고 있다. 이 상황에서 ‘온고지신’을 떠올리며 글로벌 IT산업을 주도한 한국의 역사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IT 산업의 어제와 오늘, 내일에 대해 통찰력 있는 시선을 갖게 될 것이다.

 오명·제임스 F 랄슨(Myung Oh and James F. Larson)지음. 루트리지(Routledge Advances in Korean Studies) 펴냄.

 

 <차례>

 1. 한국의 운명이었던 디지털 발전

 

 한국의 정보통신(IT)산업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고속성장을 했다. 정부의 강력한 정책 이반을 통해 반도체와 휴대폰을 필두로 IT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와 함께 그 동안 삶의 터전이 되었던 물리공간과는 별도로 인터넷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사이버공간(cyberspace)’이 창조되면서 인류의 활동영역이 무한히 확장되고 있다.

 사이버공간에서는 속도의 개념이 ‘물리적 제약이 있는 속도’에서 ‘빛의 속도’로 변화한다. 대용량의 지식·정보 교환이나 의사결정이 장소의 이동이나 시간의 제약없이 리얼타임으로 24시간 가능해지고 있다. 이는 한국의 운명이다. 강력한 정부의 리더십과 빠른 속도감을 즐기는 국민성, 그리고 좁은 땅덩어리 삼박자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2. 거인의 어깨 : 1980년대 통신 혁명

 

 ‘통신 한국’의 초석은 전전자교환기(TDX)가 닦았다. 저자인 오 회장이 방송통신위원회와 정보통신부 전신인 체신부에서 차관과 장관으로 있던 시절이다. 7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 개발에 따라 유선통신 수요가 급격히 늘었으나 교환원이 일일이 전화를 연결해 주는 기존 아날로그 교환 방식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76년부터 TDX 개발 계획을 세웠다. 77년 만들어진 한국통신기술연구소를 중심으로 연인원 1060여 명의 연구진이 투입돼 84년 세계에서 10번째로 전전자교환기인 TDX-1 개발에 성공했다. 삼성전자가 90년대 반도체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있었던 자금줄이 TDX였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전자교환기는 한국 IT산업 발전의 디딤돌이 됐다.

  

 3. 정부 주도의 ICT 발전

 

 한국의 IT 발전을 지휘한 사령관은 누구일까. 바로 한국 정부다. 한국의 ICT 성공의 밑바닥에는 고급 인력과 첨단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열망, 그리고 삼성전자나 LG전자 같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첨단기업이 도사리고 있음이 물론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그 꼭대기에 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한국 정부의 첨단산업 주도가 성공한 대표적 사례로는 단연 정통부를 꼽을 수 있다. 정통부는 기업 또는 연구소가 독자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CDMA 기술개발을 위해 외국의 원천기술 보유기업(퀄컴), 정부출연연구소(ETRI), 기기제조업체(삼성전자, LG전자, 현대전자, 맥슨), 통신사업자(SK텔레콤) 등을 공동으로 참여시켜 대규모 국책사업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 조기 상용화가 가능해졌다. 이 성공사례에서 보듯 대규모 연구 개발 사업에 있어서 정부의 역할, 특히 정부의 목표의식과 정책적 지원은 매우 중요하다.

 

 4. 한국의 브로드밴드 혁명

 우리나라는 1995년부터 2005년까지 만 10년 꼬박 ‘초고속국가망(KII)’ 사업을 진행했다. 그 와중에 통신업자들 자율에 의해 함께 이뤄졌던 ‘정보초고속망’ 사업은 이와 같은 국가망에 힘입어 민간 인터넷망으로 꾸준히 성장했다. 전자는 전국에 산재한 국가 기관들과 학교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았고, 후자는 소위 민간 인터넷 접속 환경을 개선했다. 이 때 구축한 초고속정보통신망의 핵심은 광케이블망을 주축으로 영상과 음성, 문자 등 멀티미디어 정보를 쌍방향으로 오가는데 있었다. 그래서 현재 일반 사진은 물론 비디오와 오디오 정보도 실시간으로 전송할 수 있으며, 영상전화나 원격의료, 원격화상회의 등도 가능해진 것이다.

 

 5. 모바일 혁명 : 이른 혁신과 ‘아이폰 쇼크’

 앞에서 언급했듯 우리나라는 지난 96년 독자적 연구개발을 통해 CDMA를 상용화하며 모바일 변방에서 이동통신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3G 전환에 속도를 내는 등 세계 이동통신 시장의 주류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기 한국의 이동통신은 안주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생태계, 앱스토어 등 세계시장의 변화에 동참하기 보다는 기득권을 지키려고만 했고 그 결과 한국 이동통신 시장은 ‘갈라파고스화’ 현상에 직면하게 됐다.

 지난해 애플 아이폰으로 촉발된 스마트폰 충격은 국내 이동통신 시장을 한 번에 무너뜨렸다. 이통사들은 변화된 환경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여전히 주도권을 놓지 않기 위해 무리수를 두기도 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제 국내 이통사나 제조사, 그리고 정부가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을 잡았다는 것이다. 특정부처의 주도가 아니라 범정부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6. 유비쿼터스 네트워크 사회

 

 정보통신부는 지난 2007년 한국을 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크에 접속,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유비쿼터스(Ubiquitous)’ 사회로 만들기로 했다. 일명 ‘u코리아’ 추진 전략이다. u코리아의 ‘u’는 유비쿼터스 사회(지능기반 사회)로, 모든 사물이 지능화되고 네트워크화돼 사람과 사람, 사물과 사람, 사물과 사물 사이에 정보 소통이 가능한 사회를 뜻한다. 당시 진대제 장관은 ‘IT 839 전략’을 통해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조기에 달성하기 위한 기반을 닦겠다고 보고했다. IT 839 전략은 8대 서비스, 3대 인프라, 9대 신성장동력을 서로 연계·발전시켜 시너지를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우리나라는 이 전략을 통해 서울 등 대도시 권역과 우체국 자동화 등 전산 시스템 운용에 대해서도 좋은 결과를 낳았다.

 

 7. IT 인재 양성 교육

 지난 2000년 초반 우리나라에는 이런 비판이 일었다. “한국은 빌게이츠의 머리를 가진 천재가 태어날 수 있어도 빌게이츠 같은 천재가 만들어질 수는 없는 나라다.”

 이때부터 우리나라는 IT 전문인력 양성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등이 IT분야 고급인력 양성의 산실 역할을 하고 있다. ETRI는 지난 1977년 설립이후 지난해까지 ETRI출신으로 대학에 진출한 전문 인력이 1000여명에 달하고 2500여명이 최고경영자(CEO) 등으로 산업체에 진출했다. KISDI 역시 이와 맞먹는 인력 배출을 하고 있다. 이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이 국가 연구개발(R&D) 기능과 함께 인력양성과 일자리 창출에서도 적지 않은 효과를 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8. 한국의 IT 문화와 미디어 생태계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앞선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 인터넷 이용인구의 급속한 증가와 더불어 2000년대 초반 국내 온라인 게임이 급속 확산됐다. 온라인 게임은 청소년층을 위주로 많은 국민이 즐기는 대표적인 사이버라이프의 한 형태로 자리잡아 가고 있으며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창의력에 기초한 고부가가치 지식기반산업이다.

 전자상거래 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이 시장 규모는 매년 두 자릿수 이상 성장률로 급성장하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시작해 오픈마켓(온라인 장터), 소셜커머스(공동구매) 등 새로운 IT 기술을 접목해 진화하고 있다. 전체 시장 규모는 2007년 이미 백화점 매출(작년 25조원)을 앞지른 수준이다. 이 외에도 한국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싸이월드 등 다양한 미디어 생태계를 소개했다.

 

 9. 혁신의 나라: 글로벌 사회에서 한국의 위치

 

 한국은 시간이 지나면서 글로벌 사회에서 위치가 점점 높아졌다. 1990년대까지 주문자 상표 부착생산(OEM)을 전담하던 하청국가에 불과했지만 이젠 삼성전자, LG전자 등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중국, 남미 등에 OEM을 주는 등 선도적인 역할로 바뀌었다.

 동북아시아의 허브로써 역할도 기대된다. 송도, 판교를 포함한 경제자유구역이 첨단기술의 메카가 되면서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우리나라에 입점했다. 최근에는 아마존, 다이멘션데이터 등 글로벌 기업의 클라우드 컴퓨팅 데이터센터가 부산진해 경제자유구역 지역에 대거 진출하면서 이런 기대감을 한층 높이고 있다.

 

 10. 사이버공간에서 한국

  한국은 초고속인터넷 보급률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다. ICT에 대한 철저한 공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것은 물론 정부 차원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인터넷, 온라인게임장 등 사이버공간은 한국인에게 사람들과 교류하고 공동체 활동을 하는 중요한 곳이 되었다. 단순히 정보를 주고받는 공간이 아니라 온라인에서 인간관계를 맺는 등 사회, 경제, 문화의 공간이 됐다.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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