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점휴업 기관도 등장하면서 예산낭비 지적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근거리무선통신(NFC) 공인 시험기관을 보유한 한국. 정식으로 근거리 무선통신 관련 시험 수주 실적은 한 건도 없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차세대 성장동력으로서 NFC 가능성이 부풀려지면서 ‘묻지마 투자’가 기승을 부렸기 때문이다. 정부 예산으로 설비를 갖춘 공공기관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16일 현재 NFC산업 관련 세계협의체 NFC포럼이 공식 승인한 국제 NFC 시험인증기관은 모두 21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한국은 6개로 국가별 인증기관이 가장 많다. 대만이 5개로 뒤를 이었지만, 프랑스·독일·일본 등 선진국은 각각 1개에 불과했다.
NFC가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각광받는 상황에서 공인 시험기관이 가장 많다는 것을 액면만 놓고 보면 고무적이다. 그러나 이들 6개 기관 가운데 NFC 완제품 시험 의뢰를 수주한 곳은 단한 곳도 없다.
지난해 11월 가장 먼저 시험기관으로 등록된 민간기업 SGS는 10개월가량 개점휴업 상태다. 올해 들어 RFID/USN센터를 비롯해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KTC·ICTK·세테콤모본 등도 상반기 잇따라 시험기관 자격을 얻었지만 정식 시험 의뢰를 받은 사례는 전무하다.
NFC 시장이 개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시험기관 등록부터 서둘렀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갤럭시S2·베가레이서 등 일부 스마트폰에서만 NFC 기술이 처음 적용됐다.
시험기관 한 관계자는 “NFC 시장에 대한 기대감이 유독 한국에서 더 컸다”며 “NFC포럼이 회원에 한해 일정 장비만 갖추면 자격을 부여하는 등 인증기준이 낮은 것도 시험기관 난립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진입 장벽이 낮다 보니 NFC 시험기관 자격 실효성도 떨어진다.
삼성전자, 팬택 등 국내 휴대폰 업체가 NFC 스마트폰을 개발하면서 해외 인증기관을 이용하거나 아예 자체 시험으로 갈음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NFC는 전자지불 수단으로 이용되다 보니 전자지불 인증까지 일괄적으로 제공하는 해외 시험기관에서 인증을 받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RFID/USN센터가 시험기관 자격 취득을 위해 1억원 이상의 장비를 구매하고도 활용률이 저조하자 예산낭비라는 지적도 일고 있다. RFID/USN센터 관계자는 “정식 테스트를 의뢰받지 못했으나 국내 기업이나 대학에서 NFC 관련 기술을 개발하면서 컨설팅 개념의 프리 테스트 서비스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해명했다.
민간 NFC 시험기관 한 임원은 “NFC 기술은 단방향인 RF통신과 달리 양방향 통신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을 뿐이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킬러 콘텐츠도 아직 뚜렷하지 않지만 한국에서만 장밋빛 전망이 넘쳐난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국내 NFC 산업 거품론에는 정부가 육성책을 남발하면서 기대 심리를 높여 놓은 측면도 있다”며 “이런 분위기면 유명무실 인증기관 자격을 취득하려는 또 다른 기업이나 기관이 속출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