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법 개정안…재개발·재건축 등 분양계약 미체결자도 현금청산
재개발·재건축 사업에서 분양신청을 해놓고 계약하지 않은 조합원도 아파트 대신 현금을 받을 수 있다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
이에 따라 투기 목적으로 끼어든 외지인들이 계약을 미루면서 막판까지 시세를 저울질하다 시장 상황이 나빠지면 자기 지분만 현금으로 챙겨 빠져나갈 수 있도록 탈출구를 열어 준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게다가 정부는 이와 같은 개정 법 조항을 소급적용할 방침이어서 최근 부동산 경기침체로 시세가 하락한 상당수 수도권 정비사업장들에 일대 혼란이 예고된다.
16일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신영수(한나라당) 의원실과 국토해양부 등에 따르면 도시재정비사업에서 `분양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자`를 현금청산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을 담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개정안은 국회 국토위 의결을 거쳐 법제사법위원회 심의 중이며 8월 임시국회 통과가 유력하다.
개정안 47조 1항에 따르면 재개발·재건축 등 도시재정비사업 시행자는 정비구역 내 토지나 건축물의 소유자 등이 분양계약 체결기간까지 계약하지 않으면 150일 안에 현금으로 청산해줘야 한다. 현행법 상으로는 분양신청을 하지 않거나 신청을 철회한 조합원만 현금청산 대상이다.
문제는 이 조항이 투자 목적으로 외지에서 유입된 조합원의 손실을 보전해주는 대신 실제 거주할 지역 주민들에게 그 부담을 전가하는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시세가 하락한 사업장에서 계약을 미루던 외지인 투자자는 무더기로 현금청산을 요구하고 해당 지역에 계속 정착하려고 정상적으로 계약한 대다수 주민들은 청산 비용 마련과 사업 지연 등의 손실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신 의원은 "투자 목적으로 재개발 지역에 유입된 외부인이 계약을 미루고 시장 상황을 저울질하다 막판에 현금청산으로 돌아서면 현지 정착 주민들에게 그 피해가 전가된다"며 "계약 당시의 아파트 가격에 따라 계약과 현금청산 중 유리한 방법을 선택할 수 있게 돼 선량한 계약자를 보호한다는 법의 정신에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조합원 분양계약은 분담금 규모나 동호수 배정 등의 모든 사업설계가 확정된 관리처분계획 인가 이후에 이뤄지는데, 관리처분인가는 계약 성립과 똑같은 법적 효력을 지닌다는 견해가 우세하다는 점에서 법리 논란도 불가피하다.
관리처분인가는 분양 대상자의 의무와 권리에 대한 법적 효력이 발생하는 단계로 여기서부터는 조합원이 계약서에 도장을 찍지 않더라도 이미 계약이 성립한 것과 마찬가지여서 이 단계에서 현금청산을 법으로 보장한 것은 모순이라는 주장이다.
재개발·재건축 전문 법조인인 차흥권(법무법인 을지) 변호사는 "조합원은 분양계약을 한다는 게 법률상으로 의미가 없다"며 "관리처분계획이 확정되면 법적으로 계약을 한 것과 마찬가지 효력을 지닌다"고 설명했다.
특히 개정안 47조 1항은 새로 시작될 사업뿐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인 사업에도 소급적용될 예정이어서 최근 부동산 침체로 진행에 어려움을 겪는 상당수 수도권 정비사업에서 대거 현금청산 사태로 인한 파행이 우려된다.
이에 대해 주무 부처인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분양계약 미체결자의 현금청산 권리는 이미 표준정관에도 포함돼 있다. 계약을 안하겠다는 사람을 억지로 시킬 수는 없지 않느냐"며 "당장 미계약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 소급적용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