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문을 처음 여는 순간부터, 완치돼 문 밖에 나서는 순간까지’
황희 분당서울대병원 정보센터장(소아청소년과 교수)이 말하는 ‘모바일’ 진료 업무의 범위다. 아파서 병원은 가지만, 일단 문에 들어선 순간 모든 시스템이 환자를 중심으로 돌아가도록 한다는 것이다. 황 센터장은 분당서울대병원이 국내 최초로 시도한 클라우드 기반 모바일 진료를 통해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예전에는 수술 부위를 확인하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의사의 PC앞에까지 가야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병상에 누워있으면 의사가 가져온 태블릿PC로 수술한 부위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됐습니다.”
국내에서 선구적으로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을 도입한 바 있는 이 병원에는 ‘세계 최초 디지털 종합병원’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올해는 차세대 EMR 프로젝트를 통해 또 한번 의료 정보화 혁신도 꾀하고 있다.
총 250억원 규모가 투입된 이 프로젝트는 의료진과 환자를 최우선에 두고 신기술이 대거 접목된다. 2013년 개통 예정이라, 지난 2003년 풀 디지털 종합병원 시대를 연지 꼭 10년 만의 탈바꿈인 셈이다. 내년 완공되는 400병상 규모 신축 병동 개원일과도 맞춰 추진된다.
이같은 차세대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황 센터장은 소아신경학을 전공한 소아청소년과 의사다. 2002년 당시 개원 이전부터 EMR 개발을 위한 임상 의사로 참여하면서 IT와 인연을 맺었다. 2004년부터 EMR 시스템을 담당해오다 올해부터 의료정보센터장을 겸임, 최고정보책임자(CIO) 역할을 하고 있다.
◇시스템 편의성 제고=차세대 EMR 프로젝트의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모든 시스템을 ‘서비스’ 중심으로 재구성한다는 점이다. 시스템을 최대한 단순화하면서 각 모듈을 따로 활용할 수 있도록 나눈다.
황 센터장은 “ICU·외래 모듈 등 각 담당자들이 필요한 모듈을 조합해 활용하고 서비스를 위해 시스템들이 즉시 적용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데이터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서비스를 중심으로 필요한 모듈들이 가볍게 엮여야 한다”고 말했다. ‘사용자가 원하는’ 시스템 구성이 가능토록 이른바 서비스지향아키텍처(SOA) 개발론을 접목한다. 시스템 유저인터페이스(UI)도 사용자 편의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바꾼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애니타임(Anytime), 애니웨어(Anywhere)’ 즉 환자가 병원에 들어와 나갈 때까지 모든 프로세스의 모바일 업무 구현을 목표로 한다. 모바일 진료를 위해 한국EMC와 추진하고 있는 데스크톱가상화(VDI) 시스템 구축은 이달중 완료된다. 이미 의료진과 간호사들에게 약 300대의 아이패드2를 지급, 병원 안에서 가상사설망(VPN)을 거쳐 개인 PC를 모바일 기기로 접속할 수 있다.
황 센터장은 “일부 업무만 모바일로 구현해서는 완전한 진료가 안된다”며 “중간에 열었다가 안되면 다시 PC앞으로 가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진·동영상도 첨부해 보여줄 계획이다.
병원 밖의 VDI 적용을 위해 별도 컨설팅을 추진해 ‘보안’ 문제에 대한 해법도 강구하고 있다. 황 센터장은 “원내에서는 방문자와 내부 임직원간 망이 분리돼 있어 보안에 문제가 없다”면서도 “원외에서 VPN을 통해 데이터에 접속했을 때 보안에 문제가 없는지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컨설팅이 완료되면 원외 VDI 적용 여부도 결정할 예정이다.
원외 VDI를 통해 진료 수준을 한층 높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매우 높다. 황 센터장은 “원외에서 VDI로, 응급실에 환자가 도착한 즉시 환자 주치의의 통찰력과 경험에 기반한 진료가 가능해진다”며 “의사가 외부 회의 중에도 모바일 기기를 통해 적합한 의료 처치 처방을 내릴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과감한 IT투자와 ‘스피드’ 정보화 전략=분당서울대병원은 2003년 개원 당시부터 차트, 필름, 슬립, 페이퍼 등이 없는 풀 디지털화가 가능하단 것을 세계 최초로 증명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기존 시스템에 있는 정보를 옮겨야 할 병원들은 쉽지 않겠지만 우리는 아직 환자가 한명도 없으니 처음부터 디지털화를 하자”며 국내 첫 EMR 기반 디지털 종합병원(Digital Hospital)을 탄생시켰다. 후에 EMR은 대형 병원으로 급속히 확산됐다.
황 센터장은 “선례가 없어 과감히 시작했지만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운영되면서 업계 시초가 된 셈”이라고 회고했다. 105개 질환에 대해 의사와 환자의 프로세스를 정한 표준진료지침(CP, critical pathway)시스템, 200여개 의료 지표를 관리하는 지표관리시스템(CI, critical indicator)등도 일류 수준이다.
2005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유헬스 기술 개발도 활발하다. 재택 혈당관리 사업 등을 통해 실제 병원에서 진료받는 것 보다 재택에서 받는 진료가 더 효과가 높다는 논문도 내놨다. 현재 아이폰을 이용한 ‘욕창 환자대상 유헬스 시범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이 병원의 의료정보센터에는 약 100명의 인력이 상주한다. 웬만한 대기업 IT부서를 능가하는 규모다. 정보화 수준이 서비스 수준을 좌우한다는 기본적 생각이 깔려있다. 속도감있는 IT투자 의사결정 체계도 갖췄다.
황 센터장은 “원장·부원장 등 경영진 전체가 IT에 대한 투자에 관해서라면 ‘얼리어답터’”라며 “부원장을 주축으로 기획조정실장 등 경영진으로 꾸려진 ‘의료정보운영위원회’가 의사 결정체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의료정보운영위원회에서 승인된 사항은 4개 서울대병원의 정보화 전략이 논의되는 정기 의료정보통합위원회에서도 공유된다. 차세대 EMR 프로젝트에서도 나머지 3개 병원의 요구사항까지 수렴했다.
지난해엔 미국보건의료정보관리 및 시스템학회(HIMSS) 애널리틱스(Analytics) 7단계 인증을 받으면서 정보화 수준을 전 세계에 증명시켰다. 국내에서 7단계 인증을 받은 것은 처음이고 세계에서 9번째다. 이 평가를 위해 3박4일간 의료정보화 분야 세계적 석학들이 직접 실사에 참여했다.
실사단이 유난히 감탄한 분야는 전자태그(RFID) 물류통제시스템이다. 황 센터장은 “모든 약, 처치 재료에 RFID 태그가 부착된다”며 “이 자재들이 배치·소비되는 현황과 재고 현황을 RFID로 실시간 파악한다”고 설명했다. 입원 환자도 RFID 밴드를 착용, 적합지 않은 투약이나 수혈 사고 등을 미연에 방지한다. 투약 정보도 중앙 시스템으로 실시간 전송돼 기록을 남긴다.
장기적으로 ‘IT융합병원’의 비전도 실현할 계획이다.
황 센터장은 “‘상황인지’ 진료 시스템을 통해 환자를 미리 인지하고 맞춤형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시대를 실현할 것”이라며 “액티브형 RFID 등 다양한 기술 접목이 다시 한번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다.
◇황희 분당서울대병원 의료정보센터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이후 1998년부터 서울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로, 2002년부터 소아신경학 전임의로 근무했다. 2004년 분당서울대병원으로 온 이후 소아청소년과 전임강사를 거쳐 현재 소아청소년과 교수로 근무 중이다. 2004년부터 이 병원의 EMR 시스템을 담당해 온 데 이어, 올해부터는 의료정보센터장을 겸임하면서 이 병원의 CIO 역할을 하고 있다.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