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연구개발(R&D) 자금을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도입한 실시간통합연구비관리시스템(RCMS)이 일부 출연연과 대학 반발에 부딪혀 확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약정을 맺은 시중은행 몇 곳을 제외하면 거의 손을 놓은 상태다.
지식경제부와 6개 시중은행은 지난해 RCMS 구축을 위한 약정을 맺었으나, 1년이 지난 현재까지 기업은행과 우리은행을 제외한 나머지는 관련 상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올해 초 시중은행 4곳이 추가로 약정을 체결했지만 이들 역시 상품 개발을 미루고 있다.
RCMS는 정부금융기관자금수요기관을 모두 연결하는 통합 정산·관리시스템으로 지난해 5월부터 시범 운영 중이다. 올해는 전체 R&D 자금 중 약 40%에 해당하는 신규과제에 이를 적용하고 있다. 과거에는 출연연이나 대학에 각 연구과제별 자금을 통으로 배분해 마음대로 쓰도록 했으나, RCMS 체제에선 자금 관리기관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계좌에 돈을 묶어두고 연구 수행 단계별로 출연연이나 대학들이 승인을 받아야 쓸 수 있도록 고쳤다.
연구비 전용 등 자금이 다른 목적으로 새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고, 국가가 자금을 관리함으로써 이자 수익의 재투자도 가능해졌다. 출연연과 대학 역시 각종 서류를 따로 확인, 제출하는 번거로움을 덜게 됐다. 실시간으로 자금이 이체되는 시스템의 특성 상, 은행들이 관련 상품을 개발하는 방식으로 사업에 참여해야 한다.
RCMS가 가진 장점이 확인되면서 교육과학기술부, 환경부 등 타 부처에서도 도입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산하기관 한 관계자는 “정부는 각 부처별로 별도 시스템을 쓰면 혼동되는 점도 있어 RCMS를 전체 부처로 확산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일부 출연연과 대학이다. 이들은 RCMS 도입 확대를 반대하고 있다. 특히 R&D 자금 활용이 활발한 산학협력단 등에서 불만이 높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대학들은 연구자금을 쓸 때마다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데 불만을 갖고 있다”고 털어놨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시중은행도 RCMS 개발에 소극적이다. 기업·우리은행을 제외한 하나·신한·농협 등 다른 은행은 협약을 맺고도 선뜻 이 시장에 뛰어들지 못하고 있다. 일부 은행은 RCMS 상품 출시 여부를 묻는 출연연이나 대학에 다른 조건을 제시하며 만류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RCMS는 개발비용 대비 수익이 높지 않아 개발을 꺼리는 게 사실”이라며 “확산을 막는 대학들이 강력하게 반대한다면 굳이 개발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판단해 일단은 지켜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 산하기관 한 관계자는 “일각에서 불만을 표출하는 등 저항이 있지만 자금 활용을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이 확고한 만큼, 내년쯤이면 RCMS가 피할 수 없는 환경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용어설명>
◆RCMS(Realtime Cash Management System)= 정부 R&D자금 관리시스템으로 불리기도 한다. 연구개발 자금을 사용할 때 마다 승인을 받는 시스템이다. 전자세금계산서, 연구비카드 전자증빙, 회계처리 자동화, 실시간 자금 보고서, 전자결제 등의 기능을 지원한다. 과거와 달리 별도 정산 과정을 거칠 필요 없어 편리하면서도, 자금 흐름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어 투명성을 높였다.
박창규기자 k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