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인구 1만5000명 남짓한 작은 마을에 지금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다. 일명 ‘똑똑한 전력망’으로 불리는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가 이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는 민간이 관련 사업을 주도하는 해외와 달리 정부가 적극 지원한다는 점에서 프로젝트 진행이 일사불란하고 실증 타당성도 높다. 세계 전력 전문가들이 제주도에 관심을 쏟는 이유다.
◇신재생 에너지의 시험대=구좌읍은 제주화력발전에서 해안을 따라 차로 10분 정도 달리자 나타났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부웅~부웅~’ 힘찬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풍력발전기. 1500㎾급으로 70m 높이의 기둥 꼭대기에 세 개의 블레이드(날개)가 힘차게 돌아가고 있다. 각각의 블레이드 길이만 해도 35m에 이른다. 발전기 1기당 구좌읍 내 500여 가구가 사용하는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블레이드는 바람세기가 초속 3.5m만 되면 돌아가는데, 1분에 18번 회전하고, 타워 안쪽에 있는 발전기에서 1분에 1800번 회전해 전기를 생산한다.
현재 실증단지에서 진행 중인 ‘스마트 리뉴어블’ 사업을 통해 업체들은 풍력발전기로 생산한 전력을 보다 안정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다. 향후 이 사업이 성공적으로 완료되면 출력이 불안정하다는 풍력발전의 단점을 극복하고, 보다 효율적으로 청정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실증단지 주변 각 가정 지붕에는 자체 전력생산을 위한 태양전지가 설치돼 있다. 이를 통해 생산된 전기는 가정에서 직접 사용할 수 있으며, 향후에는 남은 전력을 한국전력에 되팔 수도 있다. 결국 마이너스(-) 전기요금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한 달에 350㎾h의 전력 생산을 기준으로 하면 월 4만5000원 정도의 전기요금을 아끼는 셈으로, 전력사용량이 많은 가구의 경우 누진제 적용을 받기 때문에 절감효과는 더 크다.
특히 PMP처럼 생긴 스마트미터 디스플레이(IHD:In Home Display)를 통해 가정에서 사용되는 전기의 양과 효율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IHD는 스마트소켓과 연결된 개별 가전기기를 게이트웨이(인터넷 통신장비)를 통해 제어할 수 있다. 스마트소켓은 스마트 가전이 등장하기 전 과도기적인 형태로, 화면으로 가전제품의 전기 사용량을 표시하고 해당 정보를 지그비로 게이트웨이에 보낸다. 스마트소켓에 있는 램프는 전력사용량을 나타낸다. 평상 시 녹색에서 전력사용량이 많아지면 점차 적색으로 변해 사용자들이 전력을 효율적으로 소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실증단지 시범가구의 한 주민은 “시범가구로 참여한 이후 평소 4만~5만원 나오던 전기요금이 1000~2000원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지척에 위치한 제주 첨단과학단지에는 저속전기차량을 시승해 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다. 전기자동차 특성상 가속페달을 밟아도 진동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승차감이 좋다. 최고 분당 회전 수(rpm)는 9000에 달한다. 단지 물로 냉각하는 방식이라 물을 순환하는 데 필요한 모터소리만 종종 들릴 뿐이다.
◇사업지역 확대와 관련 교육 ‘절실’=스마트그리드 실증은 앞으로 보다 넓은 지역에서 시행될 전망이다. 지식경제부가 실증사업 참여기업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실증지역을 제주시내 상가·아파트 등으로 확대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개인 가구는 전기를 많이 쓰지 않기 때문에 스마트그리드 설비의 효과를 제대로 인지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지적돼 왔다.
또 내년 이후로 결정이 미뤄진 스마트그리드 거점지구 지정도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지경부는 스마트그리드 실증사업을 통한 기술·사업모델 검증과 제도개선이 완료된 이후 전국 상용화를 위한 스마트그리드 거점지구 지정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올 초 발표했다.
이 밖에 스마트그리드 설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주민들도 많은 점을 고려할 때 효율적인 사용을 위한 교육도 필요해 보인다. 고가의 설비를 집에 들여놓고 정작 사용하지 않아 전기요금 절감 등의 효과를 기대하지 못함은 물론이고 실증을 진행하고 있는 업체 입장에서도 데이터 확보가 제대로 안 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안석현기자 ahngij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