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1월 일본 지바현에서 열린 ‘FPD 인터내셔널 2010’ 기조연설자로 나선 장원기 삼성전자 사장(LCD사업부장)의 표정에는 비장함이 서려 있었다. 장 사장은 이 자리에서 2007년 이후 3년간 정체 및 역성장을 경험한 전 세계 평판디스플레이(FPD) 산업에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바로 ‘창조적 대체(Creative Replacement)’를 통한 지속 성장이 그것이다. 장 사장은 1995년 이후 2010년까지 평판디스플레이 시장 규모가 36배나 급성장했지만, 지속 성장을 위해 새로운 동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또 스마트 TV, 스마트 오피스, 스마트패드(태블릿PC)와 대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창조적인 신제품이 기존 디스플레이를 대체하는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창조적인 신제품을 기반으로 5년 후 평판디스플레이 시장은 현재보다 30% 이상 성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5년께 디스플레이 시장이 1500억달러 규모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대형 LCD를 비롯한 주력 제품의 성장이 한계에 다다랐으며, 디스플레이 시장이 정체 상태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장 사장은 연설 막바지에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글귀를 통해 ‘스승을 뛰어넘는 제자’와 같은 차세대 디스플레이의 출현을 자신했다.
전 세계 평판디스플레이(FPD) 시장에 차세대 디스플레이 개발이 최대 과제로 부상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전 세계 LCD TV 수요 부진으로 LCD 업체들의 적자가 이어지는 등 위기감이 커지면서, 창조적인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당면 과제로 다가왔다.
삼성전자 LCD사업부, LG디스플레이,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SMD) 등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우리나라 패널 업체들도 차세대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자유롭게 휘어지거나 말 수 있는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창문처럼 배경을 볼 수 있는 투명 디스플레이 등은 상용화를 위한 기술 개발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또 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 전기습윤(EWD) 디스플레이 등 소비 전력을 대폭 줄일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의 상용화도 머지않았다.
지난달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국제정보디스플레이학회(SID) 2011’ 전시회에서는 이 같은 패널 업체들의 차세대 연구개발 동향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특히 삼성전자 LCD사업부가 선보인 투명 및 양면 LCD와 MEMS, EWD 패널에는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삼성전자는 내년까지 차세대 패널의 기술 검증을 마치고, 2012년부터 양산 체제를 갖춘다는 계획을 밝혔다. LG디스플레이도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에서 출발한 고해상도 패널인 AH-IPS 기술을 대형 패널까지 적용, 해상도 경쟁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과시했다.
이 같은 국내 패널 업체들의 발빠른 대응은 대형 LCD 시장에서 대만과 중국 등 신흥 세력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한 움직임이다. 장진 경희대 교수(정보디스플레이학과)는 “LCD 시장에서 우리나라 업체들이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대만·중국 등 신흥 국가와의 기술 격차는 크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차세대 디스플레이 개발을 통해 경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창조적인 차세대 제품이야말로 디스플레이 업체들에 지속 성장 가능한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은 물론이고 경쟁의 패러다임을 바꿔 초격차(超格差)를 확보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과제라는 분석이다.
평판디스플레이 산업은 끊임없는 대체를 통해 성장해 왔다. 대표적인 제품인 대형 LCD 패널은 10인치급의 노트북을 벗어나, 모니터와 TV 시장으로 진입하면서 폭발적인 성장을 이어왔다. 70년 이상 시장을 주도해 온 브라운관(CRT)을 빠른 속도로 대체했다. 이 과정에서 광시야각 기술 및 7·8세대 대면적 양산 라인 기술 개발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LCD TV 시장이 성숙하고, 11세대 투자가 지지부진하면서 경쟁의 틀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창조적인 플랫폼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가 능동형(AM)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을 통해 시장을 창출하고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업체는 전신인 삼성SDI 시절부터 10년이 넘는 꾸준한 연구개발을 통해 일본이 포기한 AM OLED 패널 양산에 성공했다. 특히 양산 장비 개발은 물론이고 기초 소재에 이르기까지 국산화 비중을 크게 높였다. SMD는 또 지난달 세계 최초로 5.5세대 AM OLED 양산에 나섬으로써 후발 주자와의 기술 격차를 크게 확대했다. AM OLED는 이제 패널 대형화를 통해 LCD TV 시장을 대체하기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남은 과제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개발 및 상용화 과정에서 핵심 원천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패널 업체들이 그동안 뛰어난 양산 기술을 통해 시장을 주도해 왔지만, LCD 액정 모드 등 핵심 원천 기술에서는 약점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차세대 디스플레이 연구개발 과정에서 핵심 기술 확보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장진 교수는 “LCD는 물론이고 우리나라 기업이 세계 시장을 석권한 AM OLED도 인광 재료의 핵심 원천 기술은 빈약한 것이 사실”이라며 “차세대 디스플레이 연구개발 과정에서 원천 기술 확보를 위한 투자가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실패 확률이 높고 장기간 투자가 필수인 원천 기술 개발 과정에서 정부 지원과 함께 패널업체들의 역량 집중도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장 교수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양산 기술도 중요하지만, 핵심 원천 기술 확보를 위한 투자에도 적극 나서야 할 것”이 “패널 업체들의 연구개발 투자 중 최소 20%는 원천 기술 확보에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서동규차장(팀장) dkseo@etnews.co.kr, 서한·양종석·윤건일·문보경·이형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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