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초 제2이통사업권 자진 반납, 정부 외압에 의한 것으로 밝혀져

 지난 1992년 8월 이동통신 업계는 물론이고 정치권까지 뜨겁게 달궜던 선경(현 SK텔레콤)의 이동통신 사업권 반납 사태가 정부의 압력행사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사실상 국내 이동통신 산업의 첫 단추를 채우는 상황부터 정치논리에 의해 좌우되면서 최근의 통신비 인하 논란에 이르기까지 산업보다 정치가 앞서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9일 본지가 입수한 당시 청와대가 선경그룹 등에 보낸 공문에 따르면 정부는 이통사업권을 따낸 대한텔레콤의 대주주인 유공이 사업권을 자진 포기하도록 유도해 정경유착 특혜논란 사태를 조속히 수습하는 데 협조할 것을 직접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대한텔레콤이 자진반납 입장을 밝힌 것과 달리 실상은 사업권을 부여한 정부가 정치권의 외압을 받아 민간기업의 사업권 반납을 강요한 것으로 밝혀졌다.

 <관련기사 12면>

 정부의 외압은 1992년 8월 20일 대한텔레콤이 제2 이동통신사업자로 선정되자 노태우 대통령의 사돈인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을 배려한 특혜라는 의혹이 확산된 데 따른 것이다.

 당시 체신부는 대한텔레콤을 비롯해 포철-신세기이동통신, 코오롱의 제2 이동통신 등 3개 법인을 대상으로 심사를 벌여 대한텔레콤을 제2 이동통신사업자로 선정했다. 심사를 주관한 체신부가 공정한 심사였다고 강조하고, 최 회장이 통신사업 이익의 사회환원 계획을 밝히며 직접 진화에 나섰지만 특혜 의혹설은 수그러들지 않고 온 나라로 확산됐다.

 이에 따라 청와대는 사업자 선정 일주일 뒤인 8월 27일 정해창 비서실장 명의로 최 회장과 손길승 대한텔레콤 사장, 김항덕 유공 사장에게 ‘이동전화 사업에 관한 권고’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냈다.

 공문은 △공정한 기준에 따라 귀사를 제2 이동통신사업 신규허가 법인대상으로 확정했으나 대주주인 유공이 대통령과의 특수관계임을 이유로 국론이 분열되고 정치사회적 불안을 초래하고 있다 △국론을 조속히 통일하고 정치사회 안정을 이룩하기 위해 유공이 자기 책임 하에 구성주주를 설득, 사업권을 자진 포기하여 현 사태를 수습하는 데 협조하기 바란다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정부가 민간기업에 사업권을 허가한 후 일주일 만에 다시 반납하라는 통첩을 보낸 셈이다. 공문을 접수한 손길승 사장은 이날 즉시 체신부에 반납서류를 제출하고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자진 반납을 발표했다. 다음날 체신부는 사업자 선정을 차기 정부로 넘긴다는 계획을 밝혔다.

 통신업계는 “소문으로만 무성하던 정치권 외압의 실체가 드러나 충격적”이라며 “하지만 뒤늦게라도 밝혀진 만큼 이러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보다 투명하고 공정한 정책 집행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힘써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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