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시장에는 다양한 경쟁 요소가 있다. 애플이 처음 아이폰을 내놓았을 때는 소프트웨어가 최대의 경쟁력이었다. 그 후 안드로이드 진영이 반격의 체계를 갖추면서 하드웨어와 최적화 도 만만찮은 경쟁 요소로 부상했다.
삼성전자가 1㎓ 듀얼코어를 달고 나올 것이라는 당초 예상을 깨고 1.2㎓ 듀얼코어를 탑재한 갤럭시S2를 출시한 후,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 ‘속도 경쟁’이 불붙었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접속 속도가 중요한 경쟁 요소로 부각됐다.
팬택은 갤럭시S2를 ‘동급 스펙’으로는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고 속도로 앞서 나가기로 결정했다. 팬택의 연구개발 인력은 경쟁사의 10분의 1 수준. 박병엽 부회장 이하 직원들이 밥먹듯이 밤을 지샜다. 그러기를 수개월, ‘스마트폰의 페라리’라고 자칭하는 세계 최초의 1.5㎓ 듀얼코어 프로세서를 탑재한 ‘베가 레이서’가 세상에 나왔다. 문지욱 팬택 중앙연구소장이 “거를 수 있는 문제는 모두 거르고 나왔다”고 자신 있게 말할 만큼 꼼꼼한 테스트를 거쳐 만들어진 단말기다.
퀄컴의 1.5㎓ 듀얼코어 프로세서를 처음 적용한 단말기이기 때문에 ‘검증되지 않은 프로세서를 탑재했다’는 우려가 있었다. 발열문제, 안정성 등 꼼꼼히 검사하지 않으면 출시되자마자 버그 논란에 시달릴 수 있다. 수 일간 사용해본 결과 이 같은 우려는 속도에 대한 만족감을 넘어서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물론 출시 이후 다양한 사용 방식에 따라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임성재 팬택 마케팅본부장은 “지난 20년 간 팬택이 가져온 모든 열정과 혼을 담았다”고 말했다. 피처폰 사업을 중단하고 ‘프리미엄 스마트폰 전문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팬택은 내심 베가 레이서가 회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 줄 수 있는 효자 노릇을 할 것이라는 기대다. 비교적 고정적인 마니아층을 타깃으로 했던 기존의 베가 시리즈의 한계를 넘어 다양한 층의 소비자에게 소구, 국내 100만대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최대 500만대 이상 판매하는 것이 목표다. 국내에선 이번 주부터 SKT·KT를 통해 판매되며, 내달부터 LG유플러스를 통해서도 구입할 수 있다.
<하드웨어·디자인>
‘미니멀리즘의 극대화.’ 베가 레이서의 디자인 콘셉트다. 4.3인치의 큰 화면 크기에도 불구하고 처음 봤을 때 꽤 슬림해 보인다. 이는 좌우 베젤의 폭을 최대한 좁혔기 때문. 덕분에 그립감이 편안하다. 앞면에 정전식 터치키 외에는 물리적 버튼이 따로 없어 깔끔한 느낌을 준다. 상단과 하단에 다른 크기로 얇게 장착돼 있는 스피커는 가로로 놓고 동영상을 주로 감상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국내 스마트폰 최초의 듀얼 스피커로, 디자인과 함께 엔터테인먼트 성능을 강화했다.
측면의 은색 테두리는 세련된 느낌을 준다. 화면을 바라볼 때 오른쪽 측면에 잠금 버튼과 검색 버튼, 마이크로USB 외부 단자가 배치돼 있다. 왼쪽 측면에는 상단에 소리 조절 버튼을 배치해 놓았다. 이는 통화 중에 필요한 소리 조절 버튼만 손가락이 닿는 왼쪽에 배치해 보지 않고도 헷갈리지 않게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후면에는 800만 화소의 카메라와 LED 플래시가 탑재돼 있다. 카메라는 HD1080(1920X1080) 해상도의 동영상 촬영도 지원한다. 배터리 커버는 통신사에 따라 다른 소재와 디자인으로 나온다. 현재 검정색과 흰색 모델이 공개됐고, 향후 다양한 색깔로 나올 예정이다.
전원을 켜자마자 가장 먼저 실행한 것은 웹 브라우저. 1.5㎓ 듀얼코어 프로세서의 속도를 느껴보기 위해서다. 속도 비교를 위해 1.2㎓ 듀얼코어 프로세서를 탑재한 단말기를 함께 두고, 작업 중인 애플리케이션을 모두 지운 상태의 동일한 조건에서 실행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첫 페이지가 열리는 속도부터 베가 레이서가 다소 빨랐다. 화면을 전환할 때도 ‘눈을 한번 깜빡일’ 정도의 간격으로 베가 레이서가 빠른 속도를 보여줬다. 유투브를 켜고 최근 방한한 마룬파이브의 공연 동영상을 동시에 틀어봤다. 동영상 로딩은 1초 이상 베가 레이서가 빨랐다. 1.2㎓ 듀얼코어 스마트폰과 비교하면 사용자가 훨씬 높은 편리성을 느낄만큼 긴 시간 차이는 아니지만, 초기 스마트폰인 아이폰3G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속도인것은 확실하다.
16GB의 내장 메모리와 1GB DDR2 RAM 메모리를 적용해 콘텐츠 저장 기능과 멀티태스킹 성능도 남부럽지 않게 누릴 수 있다. 근거리 무선통신인 NFC도 탑재했다(LG유플러스향은 없음). 다만 듀얼코어로 전력 소비량을 30% 가량 낮췄다고 해도 1620㎃h의 배터리 용량은 그렇게 넉넉하지 않다는 평가다.
<표> 베가 레이서 주요 하드웨어 사양
<소프트웨어·UI>
구글의 최신 스마트폰 OS인 진저브레드(안드로이드 2.3버전)을 탑재했다. 차기 버전인 ‘아이스크림 샌드위치’가 나올 올 연말까지 업그레이드 이슈는 부딪히지 않고 즐겁게 쓸 수 있다.
여기에 ‘스카이’ 브랜드를 단 다양한 기본 소프트웨어를 추가했다. ‘SKY미’는 일정과 연락처, 사진 등을 웹상에 저장할 수 있는 팬택 전용 모바일 클라우드 서비스다. ‘SKY 스테이션’은 애플리케이션을 ‘가나다’ 순으로 정렬하고 초성으로 검색하는 등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SW다. ‘SNS 매니저’는 트위터와 미투데이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동시에 관리할 수 있어 편리하다. ‘SKY 피트니스’는 목표치를 설정해 체중과 칼로리를 관리하는 건강 도우미다.
눈에 띄는 새로운 기능은 ‘시크릿 뷰’ 기능이다. 사용자가 시크릿 뷰 기능을 설정하면 화면에 특정 패턴을 겹치게 보여줘 정면에서 보는 사람 이외에는 화면의 내용을 볼 수 없다. 스마트폰 화면이 커지면서 생기는 일상 속 보안 위협에 대비한 기능으로, 기존 PC 화면에 흔히 쓰던 필름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원할 때만 사용할 수 있다. 강도 조절도 가능하다.
잠금 화면에서 곧바로 주요 기능을 실행시킬 수 있는 팬택의 고유 UI인 ‘이지UX’는 최근 발표한 HTC의 스마트폰 ‘센세이션’ UI의 모티브가 될 만큼 편리하다. 잠금 화면의 중앙원 옆에 붙어 있는 아이콘을 원으로 옮겨오면 선택한 기능으로 이동하는 방식이다.
7개의 홈 화면에는 각기 다른 배경화면을 삽입할 수 있다. 또 ‘퀵패널’을 통해 와이파이망과 조명, 사운드 등을 별도의 관리 페이지에 들어가지 않고도 조절 가능하다. 아이폰이나 갤럭시S가 설정 메뉴 등 2~3단계를 거쳐야 와이파이를 선택하는데, 퀵패널이 이런 번거로움을 없앴다.
<총평>
“스마트폰으로 사람들이 뭘 할까를 사전에 정말 열심히 들여다 봤다.”(김진희 마케팅전략 과장), “정장 입다가 슈퍼맨 옷입는 클라크처럼 디자인의 정체성을 깨고 싶었다.”(최중호 디자인부문 연구원), “중간에 경쟁사의 1.2GHz 출시로 씁쓸했다. 성능 극대화 측면에서 전체를 변경했다.”(유남영 하드웨어부문 책임연구원)
지난 19일 팬택이 서울 상암동 팬택빌딩에서 베가 레이서를 공개하며 들려준 직원들의 육성이다. 그만큼 ‘독하게’ 만들었고, 속도를 비롯한 다양한 성능을 자랑한다. 갤럭시S2의 1.2㎓ 듀엁코어 탑재가 알려지자 급하게 1.5㎓ 듀얼코어로 성능을 높였지만, 이에 따른 불안정성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아직 팬택이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제대로 존재감을 가지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무엇보다 경쟁사들이 가지고 있는 탄탄한 브랜드 인지도가 절실하다. 베가 레이서는 속도를 통해 팬택에 처음으로 ‘현존하는 최고 성능의 스마트폰’의 타이틀을 안겨줬다. 팬택이 기대하는 대로 베가 레이서 발표날 깜짝 공개된 5인치 ‘태블릿폰’과 함께 팬택을 또 한 번 업그레이드 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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