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가 미국 램버스와 벌였던 수천억원대의 특허 소송에서 이겼다.
미국 연방고등법원은 13일(현지 시각) 미국 램버스사가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자신들의 특허권을 침해했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램버스 패소 판결을 내렸다.
법률 전문가들은 램버스가 대법원에 상고해도 미국 사법제도 관례상, 대법원에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전망, 이번 판결이 최종 확정될 여지가 높다.
지난 2009년 3월 하이닉스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연방지방법원에서 램버스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약 4억달러의 손해배상금 및 판결 이후 판매분에 대한 경상로열티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은 후 이에 불복해 연방고등법원에 항소한 바 있다.
그러나 동일한 램버스 특허를 두고 마이크론의 침해 여부를 다루었던 델라웨어주 연방지방법원에서는 2009년 2월, 램버스가 소송에 불리한 증거 자료를 불법으로 파기했다는 이유로 램버스에게 특허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판결했으며, 램버스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이에 따라 연방고등법원은 양 사건을 병합해 심리했으며 이번에 램버스의 소송 증거 자료 파기 행위가 불법이라는 연방고등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온 것이다. 램버스는 총 8톤에 달하는 특허 관련 문서 300상자를 파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연방고등법원의 판결이 최종 확정될 경우, 하이닉스는 2009년 3월 1심 판결에 따라 설정된 손해배상금 4억달러(약 4400억원)를 지급할 의무가 사라진다. 또, 연방고등법원 항소를 위해 기탁한 지급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으며 1심 판결에 따라 공탁한 2009년 2월 이후 지급해온 경상 로열티도 다시 회수할 수 있게 된다.
손해배상금과 1000억원대의 기타 비용을 모두 합칠 경우, 이번 판결로 하이닉스는 지난해 전체 순익의 20%에 달하는 5400억원을 벌어들이는 셈이다.
하이닉스는 “이번 연방고등법원의 판결을 환영한다”며 “앞으로 램버스와의 협상을 보다 유리한 입장에서 진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소송은 램버스가 하이닉스를 대상으로 지난 2000년 8월 SDRAM, DDR SDRAM 제품에 대한 자사 특허 기술을 부당으로 사용했다며 제기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반면 램버스로부터 동일한 특허 내용에 대해 소송을 당했던 삼성전자는 지난해 1월 지분투자 2억 달러를 포함한 총 9억달러(약 9900억원)를 지급하고 화해키로 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램버스가 보유한 모든 특허를 사용하는 조건으로 합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삼성전자가 항소했을 경우 같은 판결이 내려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성급히 합의해 지불하지 않아도 될 돈마저 지급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하이닉스는 이번 승소 이후에도 다른 여러 제품에 걸쳐 램버스의 특허 침해 소송에 대응해야하며 미국 특허 법원 특성상 십여년이 소요될 수 있다”며 “반면, 삼성전자는 1조에 가까운 비용을 사용했지만 램버스의 다른 제품에 대한 특허 문제를 신경쓸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어 어느 쪽이 유리한 대응법인지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서동규기자 dkseo@et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