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긴 것도 징그럽다. 작고 초라해 딱히 쓸모도 없어 보인다. 눈에 띄면 탁 때려잡곤 했던 곤충에 대한 생각이다. 일상에서 곤충을 일컬을 때 ‘벌레’라고 한다. 하찮고, 보잘것없고, 쓸모없다는 인식이 고스란히 담긴 셈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 중 4분의 3을 차지하고 있는 곤충. 바퀴벌레, 지네, 파리와 같이 이름만 들어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곤충이 생체모방공학(Biomimetics)에 새로운 가능성을 주는 소재로 떠오르고 있다.
◇생체모방공학, 인간 한계에 도전=미궁에 갇힌 다이달로스는 탈출을 위해 깃털을 모아 새의 날개를 모방한 날개를 만들어 그의 아들 이카루스와 미궁을 벗어났다. 다이달로스의 조카 페르딕스는 물고기의 척추뼈를 모방해 톱을 만들었다.
인체는 다른 어떤 생명체보다 유약하다. 빨리 달리지도 못하고 체온을 유지할 털도 없으며 나는 것은 꿈도 못꾼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그리스로마 신화 속 다이달로스와 페르딕스처럼 인간은 다른 동물의 강점을 모방하려는 시도를 했다. 이처럼 생체모방공학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인류의 오랜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전해온 것이다.
생체모방공학은 말 그대로 생명체가 가진 여러 가지 특성을 이용하는 기술로 생명체를 뜻하는 ‘Bio’와 모방을 뜻하는 ‘Mimesis’가 결합된 말이다. 1969년 미국의 과학자 오토 허버트 슈미트가 처음 쓰기 시작한 이래 생체모방공학은 산업, 군사, 환경 등 전 분야에서 고루 활용되고 있다.
미래 세계를 먹여 살릴 10대 기술로도 꼽히는 생체모방공학이 친근해진 계기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부터다. 당시 수영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 중 상당수가 몸에 달라붙는 전신 수영복을 입고 나와 뛰어난 성적을 거뒀기 때문이다. 이 수영복은 상어 비늘을 모방해 만든 것이었다. 상어 비늘에 있는 작은 돌기가 물의 마찰 저항력을 줄이는 원리를 입고 0.1초에 승부가 갈리는 수영에서 선수들은 조금 더 빠르게 헤엄칠 수 있었다.
생체모방공학 분야에서 탐구하는 생명체는 하늘을 나는 조류, 육지의 포유류, 어류까지 한계가 없다. 그리고 최근에는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곤충까지도 생명모방공학에서 중요한 소재로 떠오르고 있다.
◇곤충, 로봇을 만나다=특별한 지능도 능력도 없어 보이는 곤충을 과연 어디에 쓸 수 있을까. 대부분의 곤충은 지능이나 인지 능력은 인간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지만 환경에 대처하는 능력이나 외부 환경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신체 구조 등이 뛰어나 생체모방공학 분야에서 활용할 요소가 많다. 특히 로봇 분야에서는 곤충의 신체적 특성을 이용해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실험이 지속되고 있다.
울퉁불퉁한 지면도 똑바로 갈 수 있는 로봇을 만들기 위해서 바퀴벌레 다리의 움직임을 적용했고, 은밀한 정찰을 위한 로봇 개발에는 파리나 소금쟁이가 모델이 되기도 한다. 특히 곤충이 나는 원리를 활용한 초소형 비행 로봇은 수색 및 구조, 농업 및 환경 감시 등 다양한 분야로 응용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에 각국에서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TR)는 지중해대학 연구팀과 공동으로 스스로 이·착륙, 고도조절이 가능한 초소형 헬리콥터 로봇을 개발했다. 곤충이 비행하면서 일정한 고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시각적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의 엔지니어링 및 응용과학 연구자들은 일상의 돌풍, 날개 충격 그리고 실제 위협이 되는 요소들에 비행체의 날개가 비대칭적으로 반응하도록 하는 원리를 초소형 헬기 로봇에 도입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미국이 이라크 전에 사용한 길이 15㎝ 이하의 초소형 무인 비행체 MAV(Micro Air Vehicle)는 파리를 모델로 만들어졌다. 정찰, 수색, 테러 진압 등 군사작전에서부터 원자로 청소, 인명 구조에까지 활용되는 이 로봇은 2㎝의 날개, 무게는 0.1g, 1초에 200번 날갯짓으로 3m를 날 수 있다.
애벌레가 가진 능력은 지뢰 탐색 로봇에 적합한 것으로 꼽히고 있다. 각시과 나방의 애벌레는 몸의 마디당 70개의 근육을 갖고 있는데, 이 근육들이 하나의 신경에 의해 제어된다. 과학자들은 간단한 규칙에 의해 움직이지만 놀라울 정도로 유연한 이동 능력을 지뢰탐지기와 접목한다면 지뢰 탐색과 제거에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국내에서는 이상희 국가수리과학연구소 박사가 흰개미의 개체 간 상호 작용을 분석해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위험지역에서 고도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소형 집단 개발 로봇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곤충의 생태계, 삶에 대안을 주다=곤충을 활용한 생체모방공학은 IT와 접목한 로봇 개발에만 그치지 않는다. 곤충의 감각 시스템이나 생태계 특성을 활용해 인간의 삶을 보다 편안하고 친환경적으로 영위할 수 있도록 하기도 한다.
거미가 뽑아내는 거미줄은 같은 굵기의 강철보다 10배는 강하면서, 유연성도 있어 신소재로도 주목받고 있다. 만약 거미줄을 철사 정도의 굵기로만 뽑아낸다면 피아노도 천장에 너끈히 매달 수 있을 정도다. 최근 이상엽 한국과학기술원(KAIST) 특훈교수 연구팀과 박영환 서울대 교수팀이 거미의 실크 단백질을 대사공학으로 개량한 대장균을 이용해 강철보다 강한 거미 실크 섬유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국내 연구진이 개발한 거미가 만드는 초고분자량의 실크 섬유는 미국 듀폰의 고강력 합성섬유인 케블라(Kevlar)에 견줄 강도를 갖고 있으며 탄성력이 뛰어나 의료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의 라이프니츠 연구소는 거미줄을 이용한 신소재를 개발해 수술 시 상처를 꿰매는 실로 적용할 수 있게 했다. 이 소재는 몸 속에서 저절로 녹기 때문에 수술 후 실을 제거하기 위해 다시 병원을 찾을 필요가 없게 됐다. 의료영역에서는 거미줄 외에도 모기의 침에서 힌트를 얻어 아프지 않은 주사바늘을 만들기도 했다.
건축에서는 이미 사바나의 흰개미 집의 원리를 응용한 냉난방장치나 꿀벌과 개미의 집짓는 능력을 활용한 첨단 건축 기술 구조를 도입하고 있다. 이외에도 곤충들의 다양한 능력을 생활에 유용하게 쓰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장수풍뎅이가 습도에 따라 색깔이 자동으로 변하는 데서 착안해 별도의 내부 전원장치 없이도 작동하는 습도계나, 나방, 모기와 같이 야간에 활동하는 곤충의 겹눈표면을 이용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LED 개발 실험 등이 대표적인 예다.
◇정부, 곤충의 가능성에 주목=곤충의 이같이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주목한 선진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국가차원에서 곤충산업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은 곤충과 생체모방공학을 접목해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고, 일본 역시 1993년 ‘곤충기능 이용기술 개발연구’를 국가 생명공학 연구의 최우선 과제로 선정한 바 있다.
국내에서는 2010년에야 농림수산식품가 2월 ‘곤충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공포해 곤충에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등 이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1월에는 ‘곤충산업 육성 5개년 계획’을 발표해 곤충산업을 미래 고부가 생명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2020년 38조원의 규모로 클 세계 시장에서 우리나라 역시 다양한 곤충자원을 확보하고 연구 역량을 집중해 이를 공략하는 것이 목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우리 IT를 생체모방공학의 바이오센서 분야에 접목하고 산업화 잠재력이 큰 환경보호와 신재생에너지 영역에 집중 투자한다면 세계시장 선점의 가능성도 높아질 전망이다.
가장 큰 실험실, 자연 속에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곤충, 이제 인간의 삶 곳곳에 곤충의 단면이 담길 날이 머지않았다.
이수운기자 per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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