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제임스 C.스콧 예일대 교수는 얼마 전 그의 책 ‘국가처럼 보기(Seeing Like a State)’에서 20세기 하이모더니즘(High Modernism)은 결국 실패한 것으로 간주했다.
단순화·표준화·획일화·대규모화 등을 추구한 하이모더니즘이 다양성·가역성·창조성·지역성 등을 배제함으로써 본래의 이상적 목표를 실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국가 주도형 공공계획들이다. 과학과 기술의 진보를 앞세워 인간의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하이모더니즘이 권위주의적 사회공학과 결합하면서 인류 문명에 엄청난 해악을 끼쳤다는 것이다.
혁명은 물론이고 브라질리아의 건설, 탄자니아의 우자마아 강제촌락 등 사회 개혁을 위한 하이모더니스트의 권위주의적 국가계획의 실패가 그것이다.
하지만 스콧이 본 것은 인간의 오만이다. 단순화·표준화·획일화·대규모화를 기치로 국가 주도의 개발계획을 강제로 이식시켜서라도 인류 사회를 재설계하겠다는 인간의 오만을 꾸짖은 것이다.
혹시라도 지금의 MB정권 핵심인사들이 그런 오류에 빠진 것은 아닐까. 최근 들어 만지작거리고 있는 초대형 ‘지류살리기 종합계획’이 그것을 방증한다. 이미 진행하고 있거나 추진해온 4대강 사업, 과학비즈니스 벨트, 신공항 프로젝트, 뉴타운사업 등도 마찬가지다.
정부 정책 또한 ‘재벌 프렌들리’다. 정부가 투자를 늘려 재벌기업과 부유층의 부를 먼저 늘려주면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에도 혜택이 고루 돌아가 결국 경기가 활성화돼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논리다.
이른바 트리클 다운(Trickle Down) 효과다. 세제정책, 환율정책 등 금융정책이 좋은 예다. 금리는 낮춰주고 세금은 깎아주되 고환율 우선정책이다. 그러다 보니 재벌만 앉아서 떼돈을 벌어들인다. 사실상 국민의 세금으로 재벌을 살찌우는 꼴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실제로 최근 3년 동안 상위 10대 재벌은 그룹 계열사가 5일마다 한 개 꼴로 늘어났다. 지난 3년간 GDP와 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 재벌기업 매출을 비교하면 2007년 GDP 901조2000억원중 43%인 386조8000억원이던 것이 2010년엔 GDP 1172조8000억원중 51%인 603조3000억원으로 대폭 늘었다.
성장의 과실이랄 수 있는 기업의 순이익은 더욱 그렇다. 공정위에 따르더라도 지난 3년간 재계 1~20위권 재벌기업의 순이익은 71%나 성장했으나 21~50위권 기업은 순이익이 오히려 3.7% 감소했다. 재벌의 세전 순이익률이 2007년 7.9%에서 지난해 8.4%로 올랐으나 중소기업은 순이익이 2007년 3.8%에서 2.9%로 떨어졌다.
한 마디로 정부가 앞장서 ‘재벌처럼 보기’를 한 결과다. 모든 것이 대규모화·단순화·표준화·획일화의 대상이다. 그러다 보니 정책과 자본을 앞세운 은밀한 불공정이 판을 치고 시장 지배력과 독점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계열사에 일감 몰아주기, 중소기업이 일군 시장 뺏기 등이 일상화됐다. SSM과 중소협력사 줄 세우기도 좋은 예다.
재벌의 시각으로 산업의 과학적 삼림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래저래 대한민국이 ‘재벌 국가’냐는 힐난까지 들린다. 그런데도 재벌은 정부 정책이 낙제점 수준이라고 한다. 아직도 세금을 더 내려야 하고 환율정책도 미지근하다고 한다.
정부의 트리클 다운 효과는 말의 성찬일 뿐이다. 동반성장은 아득하고 일자리 창출 역시 구두선에 그쳤다. 초과이익공유제는 곧바로 사회주의 정책으로 매도됐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중소기업 없는 ‘재벌 프렌들리’는 종국적으로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다양성과 창조성·가역성·구성성만이 경제와 사회의 건강성을 회복하고 각종 리스크에 대비할 수 있는 내성을 키우는 법이다. 삼림의 다양성이 산을 더욱 푸르게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21세기‘재벌처럼 보기’의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박승정 부국장 sj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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