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44>

 정보화기획실 설치<1>

 정보화기획실은 미래 부서로 출범한 정보통신부의 날개였다.

 1996년 6월 18일.

 각 부처는 이날 오전에 열린 국무회의 안건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정부는 권오기 부총리(현 성곡언론문화재단 이사) 주재로 서울정부종합청사 19층 회의실에서 국무회의를 열어 35개 부처 직제개정안을 심의, 의결했다. 공무원 인사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직책은 유지하되 직급을 높이는 복수직급제도 이날 도입하로 의결했다.

 그러나 가장 눈길을 끈 안건은 정보통신부 조직 확대 및 개편안이었다.

 개편안의 골자는 국가 정보화추진과 초고속정보통신 기반구축을 전담할 조직으로 정통부에 1급이 담당하는 정보화기획실을 신설한다는 것이었다. 35개 부처 중 1급자리가 신설된 부처는 정통부가 유일했다.

 정통부에는 큰 경사(慶事)였다.

 흔히 전쟁보다 더 어려운 일이 부처 내 조직 신설이라고 한다. 1급 보직의 조직신설은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나 지원 없이는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정보화기획실을 신설함에 따라 정통부는 국가정보화 주도 부서로 새로운 면모를 갖추게 됐고 부처 위상도 수직상승했다.

 어느 부처건 조직 축소는 인력 감축의 아픔과 부처 파워의 약화를 수반하지만 조직 확대는 그 반대다. 정통부는 후자에 속했다.

 이석채 정통부 장관의 회고.

 “1급 조직신설은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많은 분이 도와주셨지만 윤웅규 총무처 차관(작고)의 도움이 컸습니다. 결코 쉽지 않았지만 정보화기획실 신설은 시대의 필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이 정보화강국으로 도약하려면 국가 정보화 정책과 통신산업정책을 별개 조직에서 추진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직제개편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통부 실무진이 고생을 많이 했어요.”

 정보화기획실은 기존 정통부 정보통신정책실장(1급)이 겸직하던 초고속정보통신기획단을 별도 조직으로 만든 것이다.

 정보화기획실 설치 구상이 언론 앞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96년 3월 20일.

 이석채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기존의 초고속정보통신기획단을 확대 개편, 정보화기획단을 정보통신부 내에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 장관은 “정보화 정책과 통신산업정책은 별도로 추진해야 한다”며 “정보화 촉진을 위해 1급이 담당하는 정보화기획단(실)을 정통부의 정식부서로 설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통부는 3월 30일 초고속정보통신기획단의 본부조직 확대개편과 정보통신 관련 정책기능을 보강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정통부와 그 소속기관직제중 개정령(안)을 만들어 총무처로 넘겼다.

 직제개정 실무작업을 총괄 지휘한 박성득 정통부 기획관리실장(정통부 차관 역임, 현 한국해킹보안협회장)의 회고.

 “개정안은 1급 정보화기획실장 아래 2급인 3명의 심의관과 4급인 14개과를 둔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보화기획실은 정보화촉진기본계획의 종합 조정, 초고속정보통신 기반 구축사업 추진 및 정보화추진위원회 사무국 기능을 수행키로 했어요. 또 정통부 내 정보통신정책실과 정보통신협력국, 전파방송관리국의 업무를 일부 조정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총무처가 이런 정통부 안을 쉽게 수용할 리 없었다.

 개정안을 놓고 두 부처는 이날부터 팽팽한 샅바싸움을 시작했다. 정통부 기획관리실은 날마다 야근을 했다. 휴일도 없었다. 입에 단내가 날 정도로 고된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최임규 총무처 조직국장(국민고충처리위원회 사무처장 역임, 현 백석대 교수)의 말.

 “당시 정통부 직제개정안은 대폭이었습니다. 1급 실장에다 국장, 과장급 등 마치 청(廳)이나 처(處)의 규모와 맞먹을 조직이었어요. 조직이란 한번 신설하면 인력과 예산을 투입해야 합니다. 더욱이 한번 만든 조직은 쉽게 없앨 수가 없습니다. 총무처는 그런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총무처 실무자인 이형구 조직1과장(총무처 의정관리국장, 강원도 행정부지사 역임)은 정통부의 직제개정요구안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그 근거로 정보화기획실 신설은 총리실과 재경원, 총무처, 과기처, 교육부 등 관련부처와 기능 등에 관해 사전협의가 필요하며 더욱이 1급이 담당하는 조직 설치는 작은 정부 구현방침에 배치된다는 것이었다.

 4월 8일 오전10시.

 김영삼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본관 집현실에서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했다. 각 부처 장관들은 주요현안에 대해 3분간 씩 보고했다.

 이석채 장관은 김 대통령에게 “정통부 내에 국가정보화 촉진계획 수립과 추진을 전담할 정보화기획실을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보고했다. 김 대통령은 이 장관의 이런 보고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후 박성득 기획관리실장 등은 청와대를 비롯한 총리실, 총무처 등 관계부처 실무자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일에 총력을 기울였다.

 박 실장의 증언.

 “그 무렵, 총무처를 내집 드나들듯 했습니다. 1급인 내가 2급인 총무처 최 국장 방에 가서 살다시피 했어요. 정통부 기획관리실장실 아래는 국장이 없고 과장만 있었어요. 국장에게 과장을 보낼 수는 없잖아요.”

 기획관리실에서는 강대영 행정관리담당관(정통부 공보관, 미래정보전략본부장, 행안부 소청심사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현 청호컴넷 대표이사)이 박 실장을 보좌해 이 업무를 담당했다.

 최 조직국장의 회고.

 “박 실장께서 날마다 아침 8시반 경이면 제 방으로 오셨어요. 잘 아는 선배가 날마다 제 방으로 출근을 하니 저도 중간에서 곤혹스러웠어요.”

 최 국장은 박 실장의 대학 후배였다. 더욱이 박 실장과 사무자동화를 위해 동남아를 1개월여 같이 다닌 적도 있었다. 최 국장은 행정전산화 10개년 계획에도 참여했고 이석채 장관이 청와대 사회간접자본투자기획단 부단장시절 함께 근무해 이 장관과도 잘 알고 지냈다.

 하지만 업무에서 공(公)과 사(私)는 엄격히 구분했다.

 정통부는 직제개정안에 대해 1안과 2안을 만들어 총무처와 협의를 진행했다.

 총무처는 4월 15일 정보화추진위원회를 열어 관계부처 이견을 사전에 조정한 후 직제개정안을 심사하자고 제안했다. 정통부는 정보화기획실 신설은 시급한 국가현안이므로 이 문제를 동시에 추진하자고 맞섰다.

 4월 30일.

 총무처는 1급 보직인 정보화기획실을 늘릴 것이 아니라 기존 정보통신정책실을 정보화정책실로 변경해 업무를 담당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정통부는 임시조직인 기획단으로 정보화추진이 어려운 점과 정통부 내 2실 운영의 불가피성을 거듭 주장했다.

 이석채 장관은 김 대통령과 이수성 국무총리(새마을중앙회장 역임, 현 통일을 위한 복지기금재단 이사장) 등에게 정보화기획실의 필요성을 보고해 동의를 얻었다. 박성달 청와대 행정수석(대구직할시장, 체육진흥공단 이사장 역임)과 김범일 행정비서관(산림청장 역임, 현 대구직할시장) 등에게도 직제개정안에 관한 협조를 구했다.

 이 장관은 조해녕 총무처 장관(내무부 장관, 대구광역시장 역임, 현 대구세계육상대회조직위원장)과 윤웅규 차관 등에게도 협조를 요청했다.

 박 실장은 정보화기획실 신설의 필요성과 초고속추진기획단 운영의 문제점 등을 소상히 분석한 자료를 토대로 조건호 국무총리실 제2 조정관(과기처 차관,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역임, 현 한화손해보험 사외이사)을 비롯해 관계부처 실무자를 만나 설득과 협상작업을 병행했다.

 5월 3일.

 이석채 장관은 조해녕 총무처 장관과 전화통화를 하고 정보화기획실 신설에 대한 협조를 거듭 요청했다.

 최 국장의 회고.

 “이석채 장관은 특유의 직설적인 어법으로 저에게 ‘당신이 정 그런 식이면 대통령의 결재를 받아서 내려보내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정통부 안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이 장관은 수시로 전화를 해 ‘윗분에게 다 보고해 동의를 구했다. 빨리 정통부 안대로 처리해 달라’고 독촉하곤 했습니다.”

 이 장관은 일에 관한 한 소신파로 업무추진력이 대단했다. 이 장관은 김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의 경복고 선배라는 인연으로 ‘김현철 사단’의 핵심인물로 거론되기도 했다.

 이 장관의 강공 드라이브에 견디다 못한 최 국장은 강봉균 국무총리실 행정조정실장(정통부 장관, 재정경제원 장관 역임, 현 18대 민주당 의원)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실장님, 이 문제에 관해 조정을 좀 해 주십시오.”

 그러나 강 실장은 “총무처에서 알아서 하라”며 관여하지 않았다.

 총무처는 ‘이제까지 초고속기획단 같은 임시조직을 본부 내 실로 확대개편한 일이 없다’며 정통부 안에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박 실장은 다른 부처의 실(室)에 관한 실태를 파악해 이를 총무처에 제시하며 총무처가 정통부 안을 수용해 줄 것을 거듭 요청했다.

 신설조직 직급과 인원 등에서 조직을 확대하려는 정통부 입장과 이를 막으려는 총무처 간 이견 조율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직제개정안 조율은 난항이었다.

 그러나 두 부처 간 이견에 아랑곳없이 5월 하늘은 티 없이 맑고 높기만 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