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이슈]지역 화폐 운동

 구제역 파동이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이제는 방사능 유출 문제가 온 국민을 두려움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먹을거리에서 시작된 불신과 공포가 공기·물 등 환경 문제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안정적인 에너지원으로 추앙받던 원자력 발전에 재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자원이 부족하다’는 불가피한 상황을 이유로 원자력 발전 의존도를 늘려왔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서는 지나친 원자력 발전 의존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기존의 성장과 집중 중심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구제역 파동, 방사능 유출 등은 전 지구적 문제며 각각 동떨어진 것이 아닌 하나로 연결된 사안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탐욕이 늘어날수록 식량, 에너지, 환경 등 전 분야에서 문제점이 계속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 따라서 집중보다 지역 중심의 생활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다시 주목받는 것이 바로 ‘지역 화폐 운동’이다.

 

 ◇지역 화폐 운동, 마을을 살리다=지역 화폐 운동은 1983년 캐나다 코목스밸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처음 시작됐다.

 이곳은 당시 실업자가 양산되고 있었다. 마을을 지탱하던 목재산업이 침체되는 가운데 공군기지까지 이전하면서 마을 주민이 동시에 일자리를 잃게 된 것.

 지역 경제 회생 방법을 궁리하던 마이클 린턴이라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지역 화폐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노동력은 충분한데 일자리와 돈이 부족한 것이 마을의 현실이라면 지역 화폐를 만들어 문제를 극복해보자는 생각이었다. 다시 말해 지역 화폐 운동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일치시키는 것이다. 주민이 서로 노동력과 물품을 교환하는 질서를 만들면 외부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지역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만들어진 시스템이 바로 ‘레츠(LETS:Local Exchange and Trading System)’다. 지역 화폐 운동은 이처럼 코목스밸리를 시작으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동일한 문제의식을 지닌 이들에게 호응을 얻으면서 세계적으로 3000개 이상의 지역 화폐가 유통되고 있다.

 이 중에서도 대표적인 곳이 바로 영국의 토트네스다.

 1986년 광우병이 휩쓸고 간 뒤 이곳은 한동안 활력을 잃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주민은 ‘토트네스 지역 화폐’를 도입했다. 지역 경제를 살리겠다는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다.

 상점에서는 지역 화폐인 ‘토트네스 파운드’를 취급하고 노동력의 대가로 이 화폐를 지급한다. 이뿐 아니다. 마을 사람들은 지역유기농 농업과 친환경 목축 방식을 도입해 건강한 먹을거리를 공급하고 에너지 절약을 위해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했다. 이들은 ‘석유에너지 독립 계획’까지 추진했다. 마을 단위에서 전 지구적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선 것이다. 현재 이곳은 지역 화폐 운동을 추진하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모범사례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에서 지역 화폐 운동을 벌이는 대표적인 지역은 대전이다.

 ‘한밭레츠’는 1999년 회원모집을 시작해 2000년 공식 출범했다. 2008년 기준으로 620가구가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한밭레츠에서는 ‘두루’라는 지역 화폐를 유통한다. 얻는 방법은 간단하다. 회원 사이에 품앗이와 물물교환 같은 노동력을 제공하면 두루를 받을 수 있다. 받은 화폐는 가맹점에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이 가능하다.

 대구에서도 ‘늘품’이라는 지역 화폐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이곳 회원은 1200명에 이른다. 늘품 역시 도시락배달, 물품 판매 등에서 화폐를 받을 수 있다. 사용은 회원 간 직거래나 지역 나눔 장터에서 할 수 있다. 이 밖에 서울 송파구 등에서도 품앗이를 기반으로 한 지역 화폐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 지역 화폐 운동은 대부분 도시에서 이뤄진다. 따라서 물품의 생산보다 품앗이와 같은 노동력 제공이 주가 된다.

 

 ◇지역 화폐 운동은 지속 가능한 미래를 보장할까=지역 화폐 운동을 추진하는 이들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 지역 내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창출된 부가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역 내 네트워크 구축에도 도움을 주며,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저소득층이나 취약계층에도 관심을 둘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다는 장점도 있다. 지역 내 거래를 장려하므로 자원과 에너지 낭비를 줄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토트네스의 사례에서 보듯이 중앙집중적이며 해외의존적인 식량, 에너지 수급은 항상 외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물론 자본주의 시스템의 기본 질서와 배치된다는 주장도 있다. 기업이 부를 창출하는 바탕이 상실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에 처음 지역 화폐 운동을 소개한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은 기후변화, 생태계 파괴를 막기 위해서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구제역 사태 등을 근거로 들며 “세계 전역에서 먹을 것을 확보한다는 게 점점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징후가 뚜렷해지고 있다”며 지역공동체 복원이 지속 가능한 사회 건설의 필수요건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 뉴욕에서 생활조합 운동을 벌이고 있는 더글러스 러시코프는 “우리의 노력은 지역적이지만 그 효과는 전 지구적”이라며 “당신의 삶에, 당신의 동네에, 당신의 상황에 맞아떨어지는 그 무엇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 화폐 운동 유형=캐나다 코목스밸리의 ‘레츠’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퍼진 지역 화폐 운동이다. 국가에서 정한 화폐 없이도 사람들이 물품과 서비스를 교환할 수 있게 돕는다. 회원들은 자신이 제공할 수 있는 노동력이나 물품을 내놓고, 다른 회원들은 지역 화폐를 통해 이를 구매할 수 있다. 유형의 화폐 대신 무형의 화폐가 거래되기도 한다. 거래 내용 기록이 필요하다.

 ‘아워즈’는 큰 줄기 면에서 레츠와 유사하나 유형의 화폐를 사용한다는 점이 레츠와의 차이점이다. 유형의 화폐가 있기 때문에 회원들은 이 화폐를 사용하기만 하면 된다. 회원이 아닐 경우에도 화폐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레츠와는 다르다. 또, 아워즈에서는 노동의 가치가 시간으로 계산된다. 대신 고도의 기술에 기반을 둔 노동은 여러 시간의 단순 노동과 교환할 수 있다.

 ‘타임달러’ 유형도 있다. 물품 거래보다 자원봉사가 주가 된다. 시간당 노동 가치는 동일한 것으로 간주된다.

 

박창규기자 kyu@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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