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동반성장,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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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MB)정부의 핵심 정책어젠다 ‘동반성장’이라는 거대한 함대가 산으로 가고 있다. 동반성장위원장을 맡은 정운찬 전 국무총리의 일련의 행보와 스캔들을 언급하자는 게 아니다. ‘중도실용’ ‘공정사회’를 국정운영 기조로 내세워 MB정부가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하려했던 우리 경제의 성장방향과 분배, 그리고 공존의 해법에 관한 얘기다.

 동반성장이 MB정부 국정운영 전면에 등장한 것은 지난해 7월부터. 희망근로·공공근로·지역공동체 일자리 등 서민의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수조원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일회적인 생색내기에 그쳤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근원적 해법 찾기가 시급했다. 이 과정에서 도출한 것이 바로 중소기업 활성화와 관련 규제 개혁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다.

 지난해 7월 29일 이 대통령과 관계부처 장관들이 머리를 맞댄 제 67차 국민경제대책회의 주제는 ‘중소기업 실태조사와 향후 정책과제’였다. 중소기업의 실질적 현황을 파악하라는 이 대통령 지시에 전국 산업단지에 입주해 있는 중소기업들의 사례와 문제점이 보고됐다. 그들은 최고의 실업률에도 만성적인 인력난을 겪고 있었고, 금융위기 이후 자금조달은 사막에서 바늘찾기라고 토로했다. 가장 시급한 과제로 제시한 것은 바로 대기업과의 관계 설정. 납품단가, 공정거래 등 하도급 거래질서 정비였다.

 이후 MB정부는 속도를 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의 개념을 ‘동반성장’으로 바꾸고 9월 8일 이 대통령과 중소기업 대표단 간담회, 이어 9월 13일에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등을 비롯한 주요 대기업 총수 10여명을 청와대로 불러 연쇄 간담회를 벌였다.

 정부가 대기업에 압력을 행사한다는 불만도 표출됐지만 이 대통령 의지가 확고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최종 결과물이 나왔다.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 72차 국민경제대책회의(9월29일)에 30대 그룹 대표와 5대 경제단체장, 1·2·3차 협력업체 사장과 주요 협동조합 대표 100여명이 참석해 ‘진정한 파트너십으로 새로운 성장을 일궈내겠다’는 약속을 내 온 것이다. 이날 참석자들은 중기협동조합에 납품단가 조정신청권을 부여하고 중기 사업영역 보호체계를 구축하며 대기업이 협력사 경쟁제고를 위해 투자재원을 추가로 조성하는 한편, 매월 그 이행실적을 민관이 함께 챙겨 발표하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지금, 대·중기 동반성장의 약속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대·중기 상생지수(win-win index)를 만들겠다던 이민화 중소기업 옴부즈맨은 외압(?)을 이유로 중도사퇴했다. ‘초과이익공유제’로 새 어젠다를 제시해 차세대 대권주자로 주목을 받았던 정운찬 전 총리는 동반성장을 자신의 정치적 카드로만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동반성장 선두에 섰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정 위원장의 ‘초과이익공유제’에 대립각을 세웠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의 저자이자, 대표적인 진보경제학자인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대기업의 사업 분야를 제한해 중소기업과 서민에 일정 소득을 확보했던 개발도상의 시대도 지났고, 대기업 규제완화와 경쟁촉진으로 빈부 격차와 사회적 갈등을 야기했던 무한자유경쟁도 답이 아니었다. 과실을 나눌수록 서로 이익은 커진다. 한국경제가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성장과 분배를 위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MB정부는 하루빨리 초심(初心)을 되짚어보고 동반성장의 배를 다시 바다로 되돌려야한다.

 정지연 정책담당 차장 jy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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