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리원부품소재]<2>시스템반도체(2)팹리스 성공 모델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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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2년 전 중앙처리장치(CPU) 전문업체인 AMD가 팹(Fab)을 매각하고 팹리스(Fabless)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2009년 2월 AMD는 주주총회를 열고 전체 주주들 중 50.26%가 참석한 가운데 95%가 제조 부문을 분사하는 안을 찬성, 통과시켰다. 팹리스는 문자 그대로 팹 즉, 제조시설이 없는 반도체 회사를 말한다.

 당시 AMD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기로에 놓여 있었다. 인텔의 아성에 도전하며 빠르게 성장했던 AMD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원자재 가격 폭등, 여기에 인텔의 공격적인 마케팅까지 더해 2년 이상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생산시설을 운영하는 부담을 줄이는 대신 설계와 연구개발(R&D)에 집중할 수 있는 팹리스로의 전환은 AMD의 경영난을 타개할 수 있는 길이었던 셈이다.

 설계와 생산, 판매, 마케팅을 모두 하는 종합반도체회사(IDM)는 제품 원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고 생산환경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불황이 오거나 비즈니스가 잘 되지 않을 때에는 생산시설을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큰 부담이 된다.

 반면에 팹리스는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이 들어가는 공장을 설립하는 비용은 물론이고 운영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제품 설계를 위한 R&D에 자본 여력을 쏟아부을 수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또 시장 수요 변화에 따라 민첩하게 제품군을 바꾸는 등 시장 대응력도 뛰어나다. 기술과 아이디어만 있다면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사업모델이기도 하다.

 제조공정이 경쟁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메모리와 달리 시스템반도체에서는 팹리스 모델이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한국이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후발주자지만 한국이 갖고 있는 강점을 잘 살린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이 시스템반도체 강자가 되기 위해서는 한국형 팹리스 성공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세계 팹리스는 지금=팹리스의 가장 큰 강점은 빠른 성장성이다. 세계 주요 팹리스 업체들의 비약적인 성장이 이를 증명한다.

 세계 1위 팹리스인 퀄컴은 통신용 반도체로 단숨에 세계 시장을 장악했다. 1985년 설립된 이 회사는 2009년 기준 매출이 64억달러에 이른다.

 비록 최근 성장 정체를 겪고 있긴 하지만 대만의 미디어텍도 놀라운 성장세를 보였다. 1997년 설립한 이 회사는 2009년 세계 팹리스 4위, 모바일 칩세트 분야에서는 퀄컴 다음인 2위에 올라섰다. 지난해 매출은 무려 36억1000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대만의 노바텍, M스타는 지난 2009년 전년 대비 각각 40%, 75% 성장한 11억4500만달러와 10억6000만달러의 매출액을 올렸다.

 세계 경제위기를 지나면서 팹리스 모델은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인텔과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 정도를 제외하고는 팹에 투자하기보다는 설계에 집중하고 팹은 매각하거나 축소하는 분위기다. 대표적으로 AMD가 팹을 아랍계 자본에 매각했으며, ST마이크로 또한 일부 팹을 매각한 바 있다.

 ◇한국 팹리스, 명과 암=1997년을 전후해 한국에도 팹리스 모델이 도입됐다. IMF와 반도체 업계 대기업 빅딜을 거친 후 벤처 붐을 타고 삼성과 LG, 현대 출신의 엔지니어들이 팹리스를 창업했다.

 팹리스 1세대는 수요처를 찾지 못하고 상당수 사업을 접어야 했지만, 휴대폰·디지털TV 시장을 공략한 2세대들은 빠른 성장을 보이며 기대를 모았다. 특히 휴대폰 멀티미디어 프로세서를 개발해 삼성전자와 LG전자에 공급했던 코아로직과 엠텍비젼은 팹리스의 대표주자로 성장가도를 달렸다. 매출 1000억원을 훌쩍 넘기고 2007년 2000억원 돌파를 눈앞에 두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코아로직의 매출은 200억원대로 떨어졌다. 지난해 매출 209억원에 그친 이 회사는 전년 매출보다도 38%가 줄었다. 엠텍비젼도 지난해 전년 대비 40%가 줄어든 807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하지만 시장 변화에 대응하면서 꾸준한 성장을 거둔 기업들도 있다. LCD 패널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설계하는 실리콘웍스는 지난해 팹리스 업계 처음으로 2000억원의 매출을 돌파한 2500억여원을 올렸다. 이 회사는 올해에도 성장을 이어가 3500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전망했다.

 또, 넥스트칩과 어보브반도체가 전년 매출 500억원을 돌파했다. 이들 기업에 주목할 점은 어보브반도체는 전년 매출 347억원보다 약 45.7% 증가했으며, 넥스트칩은 전년 매출 404억원보다 24.7% 늘어나는 등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는 점이다.

 이들 기업은 주력 제품군을 키우면서도 새로운 제품군을 발굴하고 시장을 개척한 것이 성장의 열쇠가 됐다.

 한대근 실리콘웍스 사장은 “한 제품 매출이 커지면서 회사 내부에서 빨리 상장하자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포트폴리오를 갖추기 전까지는 안 된다는 방침을 고수했다”며 “업계를 보면서 시장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한국형 성공모델을 만들자=지난 15년간 팹리스 역사의 굴곡을 교훈삼아 한국에 맞는 성공모델을 만들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내 팹리스들의 주요 성장동력은 대부분 삼성과 LG의 휴대폰·LCD·디지털TV에 들어가는 부품에서 나온 것이 사실이다. 글로벌 세트 업체가 한국에 있다는 것은 국내 팹리스가 성장할 수 있는 큰 기반이 됐지만, 한 업체와 품목 의존도를 높이는 독약이 되기도 했다.

 핵심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장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제품군을 갖추고 고객군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또 국내 기업들 간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협력 모델을 확산하려는 움직임도 힘을 얻고 있다. 시스템 업계와 시스템반도체 업계가 문제를 함께 헤쳐 나가자는 취지에서 시스템-반도체 포럼이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으며, 정부에서도 임베디드소프트웨어 산업과 시스템반도체 산업을 함께 키울 수 있는 발전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업계도 공동 투자나 공동 개발 모델을 확산시키고 있다.

 허염 실리콘마이터스 사장은 “글로벌 수준의 세트 산업을 공략한 반도체를 주력으로 하되 중소기업이 협력해 세계 시장을 함께 발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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