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원 벤처의 성공 DNA] 넥슨 신화의 주역 김정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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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년 당시 카이스트 전자계산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인 김정주 회장은 지도교수에게 박사 과정을 그만두는 편이 낫겠다는 말을 듣는다. 공부보다는 창업에 관심이 더 기울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청년 김정주는 박사 과정을 6개월 만에 중도하차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11년 김정주 NXC 회장은 세계적 권위를 갖는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세계 억만장자’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포브스가 평가한 그의 순자산은 20억달러(한화 약 2조3000억원)에 이른다. 창업을 꿈꾸는 수재가 세계적 게임 업체의 리더로 성장한 셈이다. 김 회장의 공식 직함은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 대표다. 넥슨의 중요한 전략과 결정은 김 회장을 반드시 거친다. 김정주 대표의 행보가 그대로 넥슨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위 지인들은 김 회장을 ‘동물적 경영 감각’과 ‘인간적 순수함’을 모두 가진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넥슨의 초기 성공을 함께 이뤄낸 송재경 XL게임즈 대표는 그를 “(성공했어도) 여전히 순수하다”며 “어떤 아이템이 사업성이 있을지 선별해내는 탁월한 안목, 한마디로 비즈니스 감각이 매우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의 경영 감각은 빠른 의사결정에서 잘 나타난다. 1995년 말 넥슨의 모태가 된 ‘바람의 나라’를 제작할 당시, 월급을 주기 힘들 정도로 재정 상황이 악화됐다. 창업 자금과 투자받은 돈도 바닥을 보였다. 김 회장은 곧바로 소프트웨어 개발 용역에 뛰어들었다. 용역은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속칭 ‘노가다’라고 불린다. 수입은 안정적이지만 창의성보다는 단순 반복 작업이 주류를 이루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용역으로 번 돈으로 숨을 돌린 후, 홈페이지 제작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현대자동차와 한국IBM·SK텔레콤 등 대기업 홈페이지 제작을 잇달아 수주했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는 지혜를 20대 젊은 경영자가 실천했다. 마침 ‘바람의 나라’가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넥슨의 성장은 본궤도에 오른다.

 M&A는 그의 사업적 감각의 절정을 보여준다. 넥슨은 2008년 ‘던전앤파이터’의 개발사 네오플을 시작으로 2010년에는 게임하이와 엔도어즈를 인수했다. 약 3800억원 정도로 추정되는 네오플 인수금액은 당시 게임업계에 충격을 줬다. 하지만 이후 넥슨은 중국 시장에서 던전앤파이터 하나로 인수금액을 뛰어넘는 매출을 올렸다.

 김 회장은 넥슨이 자리를 잡아가던 2000년 초 넥슨의 경영 일선에서 사라진다. 그가 관심을 돌린 곳은 엉뚱하게도 ‘연극’이었다. 연극에 관심을 보이고 즐기는 수준을 넘어 아예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학과에 입학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길에서 자신의 열정을 불태웠다. 배우로 무대에 서기도 했다. 창작에 대한 그의 인간적 순수함을 엿볼 수 있다.

 김 회장의 경영철학 중 핵심은 ‘장기 레이스’다. 일부 성공한 벤처기업가들이 보이는 치고 빠지기, 이른바 ‘캐시아웃’ 전략을 경계한다. 아이템 하나로 승부를 걸었다가 잘 되면 지분을 매각해 현금을 챙기고 안 되면 금방 포기하는 식으로는 성공하기는 힘들다는 지론이다.

 그는 “남의 돈 투자받아 몇 년 안에 어떻게 해 보겠다”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람은 구하면 되고, 회사 운영도 ‘노가다’를 뛰면 어떻게든 된다”가 그의 생각이다. 김 회장의 경영 철학은 ‘무차입 경영’으로 이어졌다. 넥슨은 설립 초기를 제외하고 매출 1조를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까지 은행빚은 물론 외부 투자 없이 자기 자본으로만 성장해왔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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