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1일 일본 동북지방의 미야기현 인근 해상을 진원지로 발생한 대규모 지진(Magnitude 9.0)으로 센다이를 비롯한 동북지방 및 일부 관동(關東) 지방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 일본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3월18일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동북(아오모리, 이와테, 미야기, 아키타, 야마가타, 후쿠시마)지역 뿐만 아니라 동경 주변 관동(동경, 사이타마, 카나가와, 치바, 이바라기, 도치기, 군마) 지역의 공장 등으로 피해가 확산되고, 계속되는 여진으로 인한 피해도 겹쳐 일본경제에 대한 충격이 우려되고 있다. 산업 피해는 전력, 석유, 화학, 철강, 제지, 자동차, 전기전자, 기계, 식료품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발생하였다.
일본은 세계 제3위의 경제대국이자 첨단 부품·소재 강국으로서 아시아 역내 제조업의 분업 구조 속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진 피해가 장기화될 경우 아시아 역내 산업 및 미국 등의 첨단 산업에 타격을 줄 우려가 있다. 또한 3조 달러에 가까운 세계최대의 순채권국인 일본의 글로벌 자금 공급 능력이 이번 지진과 원자력 재앙으로 크게 저하될 경우 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는 국제금융시장에도 충격을 주고 세계경제를 위축시킬 수 있다. 일본의 거대 지진 피해의 향방이 주목되고 있다.
1. 지진 피해와 일본경제의 향방
전력 복구에 달린 주요 산업의 공장 피해 상황
이번에 지진 피해가 집중된 동북 지역에는 일본 인구의 9.7%인 1,233만 명(2009년 기준)이 거주하고 있으며, 일본 농업에서 차지하는 동북지방의 비중은 15%를 넘고 있다. 동북은 대표적인 농업 지대라고 할 수 있으나 상대적으로 노동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에 전자 산업의 진출도 활발하다. 부가가치 기준(GDP통계 기준)으로 동북지방의 전자 산업 비중은 10%를 넘고 있고 기타 제조업에서도 일정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1995년에 발생한 한신대지진의 경우 고베라는 경공업 및 항만 물류 산업 위주의 소비형 대도시에 지진 피해가 집중되고 인근의 산업 지대인 오사카 등이 오히려 지원에도 나설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이번 동북대지진의 경우 지진과 함께 쓰나미 피해가 겹쳐 각 지역에 산재된 일본 주력 산업이 타격을 받고 있다. 기계 및 건물 등의 파손 및 침수와 함께 이 지역의 전력, 수송·물류 인프라에 큰 피해가 발생함으로써 수많은 공장이 가동을 중단하고 있다. 또한 동북지방은 관동 지방과 인접하여 분업구조를 형성하고 있어서 동북 지역 공장 가동 중단으로 인해 관동을 포함한 일본 공장 전체의 생산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 자동차 : 완성차의 생산 재개 시기 불투명
자동차산업에서는 도요타가 미야기현에 있는 공장뿐만 아니라 부품 공급 차질로 일본 내 완성차 공장 전체의 가동을 중단했으며, 완성차의 생산 재개 시기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도요타는 일본 내 생산대수 320만대(2010)의 13%에 해당하는 42만대의 생산 능력을 동북지방에 가지고 있고 덴소, 아이신 등의 부품 공장도 있기 때문에 동북지방 공장의 가동 중단은 다른 지역의 자동차 생산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혼다자동차 4개 공장, 닛산자동차 6개 공장의 가동을 중단했다.
다만, 각 공장의 물리적 파손은 경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부품 공장의 전력 부족 등이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도요타는 17일부터 다른 지역의 부품 공장 가동을 재개하고 있다. 일본 자동차 산업은 과잉생산 능력이 부담이 되어 왔기 때문에 일본 자동차 업계가 수 주 동안 일본 내 전체 공장의 가동을 중단하더라도 그 후, 전력 사정이 개선되면 잔업 등을 통한 증산으로 지진 피해로 인한 생산 감소분을 만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전기전자 : 여진 지속이 첨단 공장 재개에 부담
전자산업에서도 수많은 기업이 크고 작은 피해를 입어 가동을 멈춘 공장이 속출하고 있다. 샤프의 도치기현(관동) LCD TV 조립 공장의 가동이 중단되었으며, 소니는 리튬이온전지, IC카드 등을 생산하는 미야기현, 후쿠시마현의 6개 공장 가동이 침수 등으로 중단되었다.
소니케미컬에서 생산하고 있는 ACF(Anisotropic Conductive Film)은 반도체나 프린트 기판을 LCD 등에 장착하기 위해 필요한 소재이기 때문에 생산 차질이 장기화될 경우 전자산업에 대한 영향이 확대될 수 있다.
도시바의 경우 이와테현 시스템 반도체 공장의 가동이 멈추었으며, Panasonic의 AV(Audio & Visual) 관련 2개 공장, 백색 가전 관련 2개 공장 가동이 중단되고 일부 부상자도 나왔으나 설비나 건물의 심각한 파손은 없는 것으로 발표되고 있다. 히타치제작소의 경우 이바라기현의 원자력 기기, 모터, 첨단기계 등 6개 공장이 가동을 중단하였으나 부분적으로 가동을 재개하기 시작했다.
대체적으로 보면, 침수가 확인된 소니의 일부 공장을 제외하면 일본의 대형 전자업체의 피해는 경미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들이 높은 정밀도를 요구하는 첨단 제품을 생산하기 때문에 여진이 지속되고 전력 공급도 원활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공장을 쉽게 가동하기가 어려운 측면도 있다.
전문 전자 부품업체의 경우도 TDK, 알프스전기, 무라타제작소 등 주요 기업들에서 일정한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 TDK는 아키타, 야마가타, 이와테, 이바라기(관동)에 소재한 13개 공장이 정전 때문에 생산을 정지했지만, 생산설비에는 큰 피해가 없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들 공장은 코일, 세라믹 원재료, 세라믹 콘덴서 등을 생산하고 있으며, 보수 점검에 시간이 소요되고 있는데, 공장의 재가동이 늦어질 경우 애플 등의 고기능 단말기 생산에도 악영향을 줄 수가 있다.
알프스전기의 경우 동북지역의 11개 공장에서 슬림형 코넥터, 자동차 전장 부품, 통신부품(noise cancel microphone), 스위치, 저항기, 센서, 터치패널, 내비게이션, IT 주변기기 등을 생산하고 있는데 동사는 이들 공장의 조업 재개에 주력 중이지만 전력, 가스, 수도 등의 인프라 여건 악화, 설비 일부의 고장 등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무라타제작소의 경우 도치기현의 1개 공장, 미야기현의 공장 2개의 가동이 중단되었으며, 미야기현 2개 공장의 복구 시기가 다소 늦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공장에서는 전자파 제거 필터(휴대폰용 등), 코일, 압전(壓電) 제품, 고주파 디바이스 등을 생산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보면 전자부품 공장의 경우도 피해는 경미하고 인프라 복구로 생산 재개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이나 휴대폰 등 일부 통신단말기 관련 부품의 공급 차질이 우려된다.
● 석유 : 피해 완전 복구에 10개월 정도 소요
석유 산업의 경우 화재 발생이 크게 보도된 코스모석유 치바 공장을 비롯하여 5개 공장이 정지됨으로써 심각한 석유 부족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지진 발생 이전에 일본의 정유 공급능력은 20% 정도의 과잉 상태에 있었으나 5개 공장의 생산능력이 122만 배럴/일(일본 생산능력의 27%) 정도에 달하기 때문에 공급 차질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화재가 발생한 동북 지방 2개, 치바 1개 정유소의 합계 생산능력은 62만 배럴/1일이며, 이들은 수개월(2003년에 있었던 정유공장 사고 때는 10개월) 동안 가동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머지 정유소는 단시일에 복구될 것으로 보여 기타 지역을 포함한 각 공장이 가동률을 높일 경우 공급 불안은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피해 규모가 큰 3개 정유소의 경우도 화재가 진화되고 있으며, 여진에 따른 불확실성은 있으나 10개월 정도면 복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 화학 : 수출 물량 감축으로 유화 제품 가격 상승 압력
화학 산업에서는 일본 최대 연간 83만톤의 미쓰비시화학 카시마(이바라기현) 에틸렌 유화 공장이 자동 정지되었으며, 이에 따라 같은 유화단지에 있는 하류 기업인 신에츠화학, 카네카, 카오, JSR 등 20개 공장의 가동도 중단되었다. 화재 등의 심각한 피해는 없으나 정규 보수 때의 공장 가동 정지와 달리 갑작스러운 정지로 파이프라인에 잔존물이 남아있고 여진도 계속되고 있어 안전 점검에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 정유시설에서 화재가 발생한 치바 소재의 스미토모화학이나 미쓰이화학의 경우는 계속 공장이 가동되고 있다.
물론, 미쓰비시화학 공장의 가동 재개에는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지 않고 다른 지역 공장에서의 원료 조달도 가능하다. 다만, 최근 중국의 왕성한 수요로 일본 공장들의 가동률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다른 나라로의 수출물량을 줄일 가능성도 있으며, 나프타 가격, 합성고무 가격 등이 더욱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정보전자 화학소재에서는 신에츠화학의 후쿠시마현 시라카와 공장의 가동이 계속 중단된 상황이다. 시라카와 공장은 반도체 웨이퍼를 생산하는 유력 공장이며, 가동이 늦어지게 되면 반도체 산업에 큰 영향이 발생할 수도 있다.
● 철강 : 피해 복구 진전
철강 산업의 경우 가동이 멈추었던 신일본제철의 치바현 기미즈 공장이나 JFE스틸 등의 고로가 다시 가동에 들어갔다. JFE스틸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으나 생산시설에 큰 손상이 없다. 대규모 철강 산업에서의 영향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단, 전기로, 중소공장의 가동에 어려움이 있다.
이상과 같이 일본 각 산업의 생산 활동이 크게 위축된 상황이긴 하지만 공장에 대한 물리적 손상은 대부분 미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통신기기용 부품, LCD 회로용 필름, 반도체웨이퍼, 정유 등의 분야에서는 불안정성은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여진이 멈추고 전력 및 인프라 사정이 개선될 경우 빠른 생산 회복세를 나타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력 사정 5월경에 다소 호전, 완전 해결에는 2~3년 소요
이상 본 바와 같이 각 산업의 공장 정상화를 위해서는 전력 사정의 개선이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을 비롯한 발전소의 손상으로 전력 불안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다. 전력회사는 일본정부와 함께 기타 화력 발전소의 복구, 노후 시설의 재가동 등을 통해 전력 부족 문제의 해결에 주력하고 있다.
동북전력의 경우 지진 직후 최대 483만 세대에 달했던 정전 사태가 3월 14일 기준으로 84만세대로 개선되었으며, 아키타, 야마가타, 니가타의 각 지역에서는 복구가 완료됐다. 다만, 동북전력의 미야기현 원전 1~3호기가 지진 피해로 계속 멈추고 있고 정기점검 중이었던 아오모리현 1호기의 경우도 운전 재개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지진 피해가 컸던 태평양 연안 지역의 화력 발전소의 복구에도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여 지역 내 일본기업 공장의 가동 재개와 함께 전력 부족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동북전력도 도쿄전력에 이어서 전기 공급을 계획적으로 제한하는 ‘제한 송전’을 추진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충격을 받고 있는 도쿄전력은 원전을 동북지방의 후쿠시마에 두고 있으나 공급 관할 지역은 도쿄를 포함한 관동 지역이기 때문에 전력 부족의 영향이 일본경제의 중심부로 파급되고 있으며, 이바라기현의 1만 5,800세대(3월 14일 기준)에서 정전이 계속되고 있다.
도쿄전력의 원래 발전 능력은 2010년 3월 기준으로 6,448만kw이지만 현재는 절반 이하인 3,100만kw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도쿄전력은 제한 송전으로 국민들의 전력 소비 억제를 유도하는 한편 화력 발전소의 복구, 노후 화력 발전소의 재가동 등에 주력하고 있다.
도쿄전력에 따르면 향후 1~2주 동안 피해를 입은 화력 발전소의 발전 능력 절반 정도가 복구되고 4월말까지는 이를 완전 복구하는 한편 휴면 상태에 있었던 노후 화력 발전소도 재가동시켜 1,000만kw의 추가 발전 능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발표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큰 피해가 발생한 후쿠시마의 모든 원자력 발전소를 완전히 폐기하고 지진 발생 이전부터 점검 중이었던 카시와자키 원전을 가동시키지 않을 경우에도 5월에는 전력 생산능력이 4,100만kw로 확대 되어 전력 수급을 맞출 수 있다는 계산이다. 도쿄전력은 제한 송전을 4월 말까지 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수도권 지역에서의 제한 송전은 경제활동의 위축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미쓰비시UFJ모건스탠리증권은 4월까지의 제한 송전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연간GDP의 1.04%로 추정하였다. 골드만삭스는 제한 송전 해제 이후의 성장세 확대 효과도 고려하면 경제적 손실은 연간 GDP의 0.5%로 추정하고 있다.
물론, 4월말까지 전력 생산량이 회복되더라도 여름이 되면 냉방수요의 폭증으로 전력 수요가 6,000만kw로 확대되기 때문에 전력 부족 상황이 다시 재발할 가능성도 있다. 제한 송전이 일시적으로 해제된 후 여름에 다시 도입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가정용 냉방 수요 등을 억제하면서 전력 부족에 따른 기업 활동의 위축 요인을 억제하는 것이 계속 중요하다. 다른 지역으로부터 전력을 공급 받는 방안도 있을 수 있으나 일본의 경우 지역별로 전력 주파수에 차이가 있고 이를 대규모로 전환하는 시설을 건설하는 비용이 발전소 건설비용과 비슷하고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
결국 동북지역, 관동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극심한 전력 부족 상황은 향후 수 주 내에 어느 정도 완화되고 1~2개월 정도로 크게 호전될 것으로 보이나 전력 부족으로 인한 수송 차질, 조명 제한, 공장 및 사무실에서의 근로자 조기 퇴근 등 경제활동을 저해하는 악영향은 2~3년 정도 지속될 것이다.
일본경제, 수개월 동안 위축 후 복구수요로 회복 예상
일본경제를 강타한 지진으로 생산 활동이 중단되고 교통물류, 전력 사정 악화로 소비 생활에도 지장을 받고 주식시장도 연일 급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경제의 위축이 당분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막대한 지진 피해가 확실해진 지난 3월 15일에 일본은행은 ‘3월 금융경제월보’를 통해 일본경제가 경기 호전 속도의 둔화 상황에서 탈출하는 과정에 있고 수출, 생산, 설비투자가 개선되고 있다고 언급하는 한편 이번 지진의 영향에 대한 우려감을 표시했다. 그리고 앞으로 일본경기가 완만한 회복 경로에 복귀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러한 일본은행의 분석은 너무 낙관적으로 보이지만 아직 지진 피해가 거시경제 데이터로 확인되지 못하고 있어서 현재 활용 가능한 자료를 기초로 한 분석 결과임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일본경제는 작년에 3.9%(2차 수정치)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2008년 리만쇼크에서 회복하면서도 4분기에는 1.3%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 등 회복 과정에서의 조정 국면에 있었다. 그리고 중국 등 신흥국의 경기 호조, 미국의 경제회복세에 힘입은 수출 확대, 소비의 꾸준한 회복으로 인해 일본경제는 경기조정 과정에서 점차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올해 1분기에는 다시 플러스 성장으로 회복될 것으로 기대되었던 터였다.
이러한 시기에 발생한 이번 동북대지진은 일본경제의 회복세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나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전력 및 석유제품 생산량의 점진적 확대와 함께 물리적 피해가 적은 각 산업의 공장 가동 재개 가능성 등을 고려할 경우 일본경제가 장기간 마이너스 성장에 빠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할 수 있다.
막대한 지진 피해에 대한 복구 수요 또한 점차 확대될 것이다. 지진 피해로 파괴된 가옥, 인프라 시설의 복구를 위한 건설투자, 자동차, 가전제품 등의 내구재와 각종 비내구 소비재에 대한 추가적인 수요가 확대될 전망이다.
1995년에 발생한 한신대지진 당시에는 지진 발생과 함께 오히려 경제성장률이 계속 높아지는 패턴을 보였다. 그러나 한진대지진의 경우 전력 복구에 8일 정도 밖에 소요되지 않았던데 반해 이번 동북대지진의 경우 전력 불안이 장기화되고 있고, 광범위한 지역에서 쓰나미 피해가 발생했다는 차이가 있어서 이번의 경우는 회복세가 더딜 수 밖에 없다.
다만, 이번 대지진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정부는 재정확대 정책과 금융완화에 주력하여 지진 피해 복구에 주력할 것으로 보여 이번 경우에도 일반적인 재해 복구 과정에서 나타나는 수요 확대 효과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일본정부는 여야 대립으로 재정정책 집행에 어려움도 많았지만 이번에는 막대한 지진 피해로 인해 야당도 일본정부의 지진대책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며, 보다 과감한 재정확대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러한 일본정부의 정책 방향을 고려할 경우 일본경제는 금년 2/4분기에 지진 피해의 여파로 크게 위축되겠지만 3분기 이후 서서히 회복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신대지진의 경우 수출과 설비투자의 확대로 성장세가 어느 정도 회복된 후에야 공공수요가 뚜렷하게 확대되었지만 이번 대지진의 경우에는 공공수요의 집행이 보다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해외경기의 호조로 수출 확대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발 빠른 대응에도 불구하고 전력과 석유제품의 부족 문제로 경제 회복 속도는 지난 번 한신대지진의 경우처럼 빨라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일본 전체적으로는 공급 과잉 상태에 있는데다가 이번 지진이나 원전 피해의 영향이 적은 나고야, 오사카, 큐슈 등의 경제권에서 대체 수요가 발생하면서 산업 활동이 확대되고 경제 성장이 촉진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2. 세계경제의 불확실성 판단
핵 재앙이 없을 경우 세계경제에 미칠 충격은 제한적
향후 관동 인근의 후쿠시마현에서 발생한 원전 사고에 따른 방사능 누출량이 얼마나 확대되고 이것이 어느 정도 관동지역, 동북지역의 경제활동을 위축시킬 것인지 불확실한 측면이 있다. 만약, 동북지역에 이어 관동 지역의 경제 및 금융 활동이 크게 위축될 경우 아시아 제조업에 대한 타격뿐만 아니라 국제금융 중개 기능의 약화로 인해 세계경제에도 큰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일본, NICs, ASEAN, 중국 간에 형성되고 있는 제조업의 분업구조, 투자 교류, 인프라 건설 등의 상호 경제 연관구조를 고려할 때, 일본의 부품 및 소재 산업의 생산 차질이 발생하면 그것이 다른 아시아 각국의 생산차질로 이어져 전체 피해 규모가 누적적으로 확대되는 특징이 있다. 대체적으로 각국 기업은 부품 등의 재고를 1개월 이상 보유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일본 제조업의 피해가 장기화될 경우 세계경제의 성장 센터가 되고 있는 아시아 경제가 타격을 입고 세계경제의 성장이 악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승승장구하고 있는 아시아경제도 일본의 첨단 부품 및 소재에 의존하고 있는 분야에서의 생산 차질이 나타나면서 어려움에 빠지고, iPhone, iPad를 비롯한 IT산업의 생산 충격이 미국 등 아시아 역외기업으로까지 확산될 우려가 있다.
다만, 원전 피해에 따른 방사능 유출량이 제한적 수준에 그친다면 앞에서 본 바와 같은 동북 지진에 따른 산업 피해 복구 가능성, 전력 사정의 단계적 개선, 일본정부의 복구대책 등을 고려할 때 이번 지진이 세계경제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인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보다 높다.
그리고 수요 측면에서의 영향을 보면, 일본경제의 세계경제 비중은 IMF의 실질 기준으로 5.8%(2010년 구매력평가환율을 기준으로 한 세계경제 성장률 기준)에 불과한 데다 최근 성장세도 저조해 세계경제에 대한 성장기여도도 높지 않는 상황이다. 사실 2010년의 일본경제의 세계경제 성장기여도는 0.2%p 정도이며, 이는 중국의 1.3%p에 비해 1/6 수준에 불과하다. 만약 일본경제의 성장률이 2011년에 당초 전망보다 1%p 정도 하락해도 이것이 세계경제 성장률에 미치는 효과는 0.058%p에 불과하다.
결국, 세계경제는 일본 원전 사고의 영향 등으로 도쿄를 비롯한 관동지역 경제가 그 기능을 상당부분 상실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 경우 동북지진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견실한 회복세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 비해 취약한 재정여건 우려
아직 현재진행형인 이번 대지진의 여파로 일본경제가 입게 될 피해규모를 당장 추산하기는 어렵지만, 지난 1995년 발생한 한신 대지진(약 10조엔, GDP의 2.5%)을 능가할 것이라는 의견이 다수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번 지진발생 직후부터 각 연구소 및 금융회사들이 잇달아 내 놓고 있는 추산들을 종합해 보면, 동북대지진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한신 대지진의 1.5~2배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당장 복구에 드는 재정부담부터가 문제이다. 한신 대지진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통해 1995년 한 해에만 3조2천억 엔이 넘는 규모의 재건비용을 지출했다. 이번 대지진의 경우 작년과 올해 재정에 편성돼 있는 긴급예산 1조 엔과 자연재해 대비 예산 3500억 엔, 국제구호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국채발행 등을 통한 추가적인 재원확보가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일본정부의 재정 상태는 과거에 비해 더욱 악화된 모습이다. 1994년 당시 일본정부의 재정적자 규모는 GDP의 3.8% 정도였으며, 국가채무 비율도 86.2%로 OECD 회원국 평균을 약 10% 남짓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당시에 비해 지금은 재정지출을 크게 늘릴 여력이 부족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재정지출을 크게 늘린 결과 2010년 일본의 재정적자는 GDP의 7.5%에 달하고, 정부부채 비율도 200%에 근접한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향후 국채를 발행하고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무디스를 비롯한 국제 신용평가 회사들은 이번 지진으로 발생하는 재정충격으로 인해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이 즉각 하락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향후 재정의 구조적 취약성을 개선시키기 위한 조치들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일본재정의 신뢰상실이 조기에 가시화될 수도 있음을 함께 경고하고 있다.
일본국채의 신뢰상실로 인한 금리급등 가능성은 낮아
하지만 인구노령화와 경제의 저성장 기조에도 불구하고, 일본경제의 20%가 넘는 총저축률 수준과 260조 엔이 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순대외채권국 지위를 감안하면, 이번 대지진으로부터 비롯되는 재정충격을 흡수할 여력은 아직 있다. 또 경상수지 흑자국으로서 국채에 대한 투자수요의 90% 이상이 국내 연기금 및 금융기관을 통해 소화되고 있기 때문에 부채의 해외의존도가 낮으며, 그에 따라 정부부채에 대한 신뢰도도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아울러 일본은행(Bank of Japan)이 양적 금융완화를 비롯한 완화적 통화정책기조 유지를 통해 현재의 우호적인 국채발행 여건을 지속시킬 것으로 기대되고 있어, 일각에서 우려되고 있는 ‘일본국채의 위기’ 사태는 도래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지진발생 이후 현재까지 3거래일 동안 일본정부가 발행한 외화표시 국채에 대한 신용부도스왑(CDS) 프리미엄의 상승국면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국채금리는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모습을 나타내면서 안정적인 국채시세가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또 불안한 조짐을 보이고 있는 단기 시장금리의 안정을 위해 일본은행은 30조 엔 이상을 자금시장에 긴급 투입하면서 금융불안 확산 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재정확대와 양적금융완화는 통화가치 절하 및 물가 상승 압력을 고조시킬 수도 있지만 일본의 경우 디플레이션 억제나 엔고 저지가 급선무이기 때문에 큰 부작용 없이 재정확대와 양적금융완화를 동시에 추진할 수 있다. 한신대지진 당시에 비해 현재 일본의 재정 사정이 크게 악화된 상황이지만 당시와 달리 물가상승 압력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만큼 과감한 재정 및 금융정책을 전개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해외투자 위축의 영향이 부분적으로 발생
다만 향후에 국채발행물량이 크게 늘어나는 과정에서 시장금리가 상승하고 해외투자가 감소하는 등의 파장이 현실화될 위험은 남아 있다. 당장 생필품 조달이 차질을 빚으면서 해외자산이나 금융상품에 대한 개인들의 투자심리는 극도로 악화되고 있다. 일본 국내에서도 주가가 폭락하고 자금시장의 위험도가 높아지는 등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나타나면서 일본 및 일본 진출 증권사들도 예정했던 해외투자 상품의 판매 자체를 연기하거나 취소할 가능성이 있다.
최악의 지진과 쓰나미 피해에 이어 핵 재앙 가능성까지 고조되면서 이러한 움직임이 본격화될 경우 일본발 주가약세, 금리상승 및 투자 감소의 파급효과는 국제금융시장으로까지 확산될 전망이다. 앞에서 지적한 해외자산에 대한 투자심리 악화와 향후 재건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일본의 시장금리 상승은 단기적으로 이러한 캐리 트레이드를 크게 위축시킬 수 있는 요인이다.
금리수준이 1990년대 중반 이후 제로 수준에 가깝게 유지되면서 일본은 세계경제에 있어 주요한 투자자금 조달처 가운데 하나로 기능해 왔다. 보다 높은 수익률을 찾는 일본 국민들의 해외투자 붐과 더불어 일본 바깥의 비거주자들도 저금리의 엔화자금을 빌려 수익률이 높은 대상에 투자하는 이른바 엔 캐리 투자가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직전까지 전 세계적으로 성행했다.
엔화 저금리에 기반한 각종 투자의 청산이 가시화되는 경우 경상수지 적자나 국내신용의 과도한 증가 및 투자과열 등의 취약성을 지닌 나라를 중심으로 외국인투자자금이 이탈하면서 외환위기 등 경제 및 금융시장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 특히 국제적인 금리상승세와 더불어 일본의 국채발행이 급증하게 될 경우, 위기상황이 진행 중인 유럽의 고부채 국가들의 신규 국채발행은 더욱 어려움에 빠질 수 있으며, 원리금 상환부담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당장은 미국이나 유럽의 저금리 정책이 지속되고 있는데다, 금융위기 발생 이후에는 캐리 트레이드의 조달통화가 달러화로 크게 다변화되었기 때문에, 엔화 조달금리가 상승하더라도 그 충격은 과거에 비해 상당부분 제한적인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엔화금리 상승으로 인한 글로벌 유동성 부족이 주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 미국, 유럽 등 선진국들은 이번 대지진으로 인한 경제적 충격이 세계경제로 확산되는 조짐이 나타나는 경우에는 현재의 저금리 및 완화적 통화정책기조를 향후에도 상당기간 유지시켜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양적 완화 등을 통한 일본 정부의 엔저 유도 정책에 대해서도 당분간은 용인하는 입장을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엔화는 당분간 강세 후 약세 나타낼 듯
일본재정의 취약성이 가중됨에 따라 엔화환율은 현재 나타나고 있는 초강세 국면을 일정 기간 거친 후 점차 약세로 반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신 대지진 당시와 마찬가지로 현재 일본에서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엔화는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금융시장의 위험증가에 따른 투자심리의 위축과 안전자산 선호, 그리고 일본 내에서의 자금수요 증가 등 여러 요인들로 인해 전 세계로 공급되었던 투자자금들이 다시금 일본경제로 환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재난발생에 따른 보험 및 재보험금 지급액도 일본으로 유입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단기적으로 엔화강세 요인이 이번 대지진 이후 재건과정에서 나타날 재정지출 증가 및 양적완화 등 엔화약세에 대한 기대요인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이다. 실제로 1995년 한신 대지진 직후 3개월 동안 엔화환율이 달러당 100엔에서 80엔 수준으로 25% 가량 절상된 바 있어, 금융위기 이후 강세를 지속해 온 엔화가치의 추가적인 강세는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번 동북대지진의 경우 과거 한신 대지진 당시와 비교해, 엔화의 강세요인이 약화되었으며, 약세요인은 더욱 커진 것으로 판단된다. 앞에서 설명한대로 해외투자의 위축 정도가 과거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으로 2007년 이후 엔 캐리 트레이드는 이미 상당부분 청산된 상태이며, 2009년 이후의 순증가분은 적지 않은 부분이 엔화가 아닌 달러화로 대체되어 왔다. 따라서 향후 일본의 해외투자를 비롯한 엔 캐리 트레이드의 청산이 본격화되더라도 그 파장은 예상보다 크지 않을 수도 있다.
한신 대지진 당시 실제로 엔화가 절상된 정도 또한 명목 엔/달러 환율의 하락폭을 통해 나타났던 것보다는 작았던 것으로 평가된다. 당시 엔/달러 환율의 하락은 지진발생으로 인한 엔화강세 요인 못지않게 달러 쪽에서의 약세요인도 함께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즉 1993년 이후 미국의 대일무역수지 적자가 다시 늘어나고 있었으며, 특히 1994년 말 발생한 멕시코 페소화 위기로 인해 1995년 1분기까지 달러화는 대부분의 주요통화에 대해 약세를 나타내, 여러 교역 상대국 통화에 대한 평균적인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의 명목실효환율은 4.6%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같은 기간 엔화의 달러 대비 가치가 25% 절상된 것에 비해, 엔화 명목실효환율의 절상폭은 9.4%에 그쳤다.
엔화약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일본은행의 양적 완화 규모는 1995년 당시 엔화강세를 막기 위해 이루어진 외환시장 개입 규모를 큰 폭으로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규모 및 재건에 소요되는 비용은 한신 대지진 당시에 비해 크게 늘어나는 데 반해 재정적 제약은 당시보다 커졌기 때문이다.
다만 1995년 4월 이후 나타난 엔화의 약세 전환이 1차적으로는 이른바 ‘역플라자합의’, 즉 달러가치 안정을 위한 선진국 간 정책공조의 결과였음을 감안하면, 향후 엔화강세의 지속기간과 약세전환 시기를 한신 대지진 당시의 경험만 가지고 속단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아울러 달러와 엔화의 가치를 둘러싼 선진국들의 통화 및 환율정책의 향방도 이번 대지진이 국제금융시장에 미칠 파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여겨져 귀추가 주목된다.
원자재 가격 약 보합세 후 복구 수요 가시화로 상승세 반전 예상
한편, 국제원자재 가격은 일본경제의 위축, 일본의 국제유동성 공급 감소 기대와 엔화 강세에 따른 투기 자금 감소 압력으로 동북대지진 이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국제유가는 중동 소요 사태가 사우디아라비아로까지 크게 파급되지 않는 등의 영향도 겹쳐 WTI 기준으로 100달러에서 90달러대로 급락했다. 향후 수개월 동안 일본 경제 불안과 함께 세계경제 향방에 대한 우려, 엔화 강세 기조로 인해 원자재 가격은 약보합세를 면치 못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일본 산업이 점차 복구되고 복구수요 발생으로 일본경제의 성장세도 회복되면서 엔화도 점차 약세 기조로 전환될 것으로 보여 원자재 가격이 세계경제의 건실한 성장세에 힘입어서 2011년 하반기 이후에는 회복세를 나타낼 가능성이 있다.
원전 사고로 석탄, 가스, 석유 등의 대체 원료 확보에 나설 수밖에 없으며, 경제활동이 회복되는 대로 원전 사고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 압력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원전 사고로 인한 원자력 발전 기피 경향이 선진국을 중심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일본의 원전 사고가 중장기적으로 원유 등 화석연료 에너지 가격의 상승과 재생에너지 산업의 성장을 촉진하는 효과를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3. 한국경제에 미칠 영향
일본으로부터의 부품소재 공급 차질 우려
한국경제가 일본 동북대지진의 영향을 직접 받을 경로 중 하나는 한일 무역을 통한 충격이다. 먼저 대일수입의 관점에서 그 정도를 가늠해보기 위해 고베대지진 때와 현재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의 전체 수입에서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24.6%에서 15.3%로 크게 낮아진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10여 년 간 수입선의 다변화와 제품의 국산화 등이 진척되면서 전반적인 대일의존도는 줄어든 상황이다.
그러나 양국의 분업구조상 우리나라는 여전히 중간재와 완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각종 핵심 부품 및 소재를 일본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일본에 대한 수입의존도는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는 수출상품 제조용 원자재가 우리나라의 총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고베대지진 당시의 3.7%에서 최근 5년 평균 4.4%로 높아졌다.
대일수입 가운데서는 수출용 원자재의 비중이 1990년대 중반 15.1%에서 현재 28.8%로 늘어났다. 여기에는 각종 정밀화학, 플라스틱 제품들과 철강류 등이 포함돼 있다. 그 외에 대일수입의 나머지를 내수용 원자재, 수출 및 내수용 자본재(부품 및 생산설비)가 차지하고 있어 이들(수출용 원자재 및 자본재+내수용 원자재 및 자본재)을 모두 합하면 대일수입에서의 비중이 93.6%에 이른다.
2010년 일본으로부터의 수입 품목들은 철강판, 반도체, 플라스틱 제품, 반도체 제조장비, 기타 화공제품, 유리제품, LCD 제조장비 등의 순이며, 모두 부품·소재, 기계류에 해당하는 제품임을 알 수 있다. 현재 일본 동북대지진의 영향으로 생산시설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었거나 전력공급 차질로 가동 정상화에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품목들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적게는 수주에서 수개월 이상 일본기업들의 조업 차질이 예상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해당 품목들에 대한 재고 보유 수준이 짧게는 1개월에서 길게는 3개월 정도를 견딜 수 있는 물량이라고 알려져 있다. 당장은 우리 기업들의 생산 활동에 큰 지장이 초래되지는 않겠지만 보유중인 부품·소재의 재고 소진 기간과 일본 기업들의 생산 정상화 시점 간에 미스매치가 나타날 수도 있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대기업과 달리 부품소재의 재고 여력이 없어 충격이 오기까지의 시차가 더욱 짧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제조업체들이 주로 수입하는 일본 제품들의 경우 수입선 다변화나 대체가 힘든 것들이 대부분인데다가 자칫 급한 조업 재개로 품질 문제까지 제기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된다.
대일수출의 경우 당장 거래선의 조업중단, 물류 기능의 마비 등으로 차질을 빚고 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인 요인이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고베대지진 이전 우리나라의 대일수출은 소비재가 50%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는 구조였다. 그런데 지진이 발생하면서 소비심리가 급격히 위축되어 의류와 같은 소비재의 대일수출은 타격을 받은 반면 일본 정부의 재정 투입으로 인한 인프라 건설 수요 확대로 원자재와 자본재 수출이 크게 늘어난 바 있다. 대일수출에서 소비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후 지속적으로 낮아져 2010년 기준으로 15.5%에 불과한 상황이다.
나머지 84.5%에 해당하는 석유제품, 석유화학 제품, 철강, 복구에 필요한 건설 관련 자재와 장비 등의 수출이 일본판 뉴딜 정책의 시행에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향후 1~2분기 정도에 걸친 경기 침체 이후 일본경제가 재정지출의 효과로 회복국면에 진입하게 되면 관련 산업 부문의 대일수출도 늘어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수출, 일본 공백 메우기는 오래가지 못할 것
중국과 미국 등 주요 시장에서 경합도가 높은 한국과 일본의 수출구조 특성상 일본 업체들의 조업 차질에 따른 대체 물량을 우리나라 업체들이 공급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특히 단기적으로 생산 차질이 야기될 것으로 전망되는 석유화학 분야와 반도체, 자동차, 전자기기 등에서 일본의 생산 공백을 우리가 부분적으로 메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극단적인 경우를 배제하면 일본 기업들의 생산차질이 장기간 지속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수출 제조업 가동률이 이미 높은 부문이 많아 이번 지진을 계기로 추가적인 생산 확대를 할 여력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동북대지진으로 인한 우리 수출에의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엔화 가치의 향방을 가늠해보는 것 또한 중요하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우리 수출에의 엔화 영향력은 매우 높다. 일본의 수출총액 대비 우리나라의 수출총액 비율과 원/엔 환율의 상관계수가 0.92에 이른다. 엔화가 강세인 시기에는 우리나라 수출총액이 일본 대비 63.5%(2009년 2분기)까지 높아졌던 반면 엔화 약세 시기(2006~2007년)에는 50% 초반에 머물렀다. 그런데 앞서 전망한 것처럼 현재의 단기적 엔화 강세는 점차 약세 전환될 것이다. 재정적자 부담에도 불구하고 국내저축과 통화증발을 활용하여 지진 복구자금을 조달함으로써 일본의 수출기업 경쟁력 제고와 디플레이션 압력 완화를 꾀할 유인이 일본정부에게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우리 기업들의 일본제품 공백 대체는 지속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오히려 일본 기업들의 조업이 정상화되고 환율까지 그들에게 우호적으로 작동한다면 주요 수출시장에서 일본과의 경합 관계는 좀 더 치열해질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분업구조 변화에 따른 영향 가능성도
좀 더 넓게는 아시아의 분업구조 자체가 변화하는 경우를 상정해볼 수 있다. 일본은 전세계 부품소재 공급기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 그 중 우리나라와 중국, 동남아시아로의 수출 비중이 매우 높다. 2007년 기준으로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으로의 부품 공급이 1,104억 달러에 달하며 동북아 국가들의 우회생산기지가 있는 동남아로의 부품 공급도 592억 달러에 이른다. 일본으로부터의 부품 수출물량이 차질을 빚게 되면 우리나라와 중국, 동남아 등의 교역에 차례로 병목현상이 발생하면서 미국과 EU 등 선진국과의 무역까지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중장기적으로 글로벌 분업 차질이 지속되고 대지진의 파장이 더욱 악화될 경우 첨단 기계와 장비 등 생산여건이나 환경 변화에 예민한 장치를 활용하는 부품소재 산업의 주요 시설을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일본에 설치하고 가동하는 것에 대해 국내외 기업들의 인식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 지진을 포함한 재난이라는 리스크 요인의 가능성을 더 높게 평가하고 이러한 장치산업의 전환 배치를 시도할 경우 우리나라 등 다른 나라들이 고려 대상에 오를 것이다. 그리고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에서 부품소재에 대한 대일의존도가 전반적으로 변화를 맞이할 수 있다.
원자재 가격 안정에 따른 국내물가 영향 제한적
무역을 통한 파급경로 외에 원자재 가격 변동과 금융시장의 불안 등 간접적인 환경 변화 또한 유의해야 할 대목이다. 먼저 원자재 가격의 경우 일본의 생산시설 피해에 따른 수요 감소로 어느 정도 안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고 실제로 원유는 대지진 이전 기록한 고점 대비 유종별로 4~5달러가량 하락하기도 했다. 그러나 앞서 전망한대로 세계경제에의 영향이 제한적이고 중동의 정세 불안이 여전하며 글로벌 수요가 신흥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늘고 있는 구조가 그대로인 상황이어서 대폭적인 하락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 지진으로 인한 석유화학 등 각종 제품 가격이 상승 압력과 함께 일본에서 본격적인 복구활동이 시작될 원자력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면 원유 등에 대한 수요가 오히려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이번 동북대지진 발생 이전 각 기관들의 올해 두바이유 전망치가 배럴당 100달러를 상회하였는데 2010년 기준 78달러 수준이었으므로 올 전망치가 90달러대로 내려간다 하더라도 전년대비 20% 안팎 오른 수준이다. 따라서 국내 물가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도 제한적이라고 보아야 한다. 2008년 산업연관표에 따르면 유가가 10% 오르는 경우 국내물가는 0.68%p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 금융시장에 동북대지진이 단기적으로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09년 말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투자 잔액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7.9%로, 우리나라에 대한 주요 투자국인 미국이나 유럽보다 작기 때문에 직접적인 파급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 가운데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기타 투자(은행간 대출을 포함 10%) 측면에서의 부정적 파급효과는 비교적 클 수도 있다. 게다가 문제는 이번 사태가 악화될 경우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전 세계로 확산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를 통해 우회 유입되는 투자자금까지 동반 유출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유럽 재정위기까지 악화되는 경우 외화자금시장 등 금융시장 전반에 적지 않은 파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원화는 장기적으로 강세 전환할 것
대지진 발생 이후 엔화의 강세가 지속되는 동안 원화가치는 하락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와 일본이 지리적으로 같은 동북아시아 지역 내에 위치한 국가로서 산업 측면에서 긴밀한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 하더라도, 특히 금융부문의 위험도가 높아져 변동성이 증가하는 경우에는 과거와 같은 동조적 관계가 성립하기 어려울 수 있음을 시사한다. 금융측면에서 일본은 선진국 투자자금의 대표적인 원천으로 기능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신흥국 투자처 가운데 하나로서의 위상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민간부문 신용위험이나 유럽의 재정위험, 일본의 자연재해와 같은 위험요인이 불거질 때마다, 엔화가 해외투자자금의 환류로 인해 강세를 나타내는데 반해 원화는 위험자산으로 인식되어 강한 절하압력을 받아 왔다. 대지진으로 인해 증폭된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정도에 따라 한동안 약세 흐름을 이어가다가 강세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이러한 과정에서 원/엔 환율은 급등국면 이후에 다시 큰 폭으로 하락하며 높은 변동성을 나타낼 전망이다.
경기 관점에서 볼 때 현재 우리나라는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연초부터 물가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대지진으로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이 크게 떨어지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이다. 현재 금리가 중립적인 수준보다 낮은데다가 1분기의 높은 유가 수준이 시차를 두고 물가 압력으로 나타날 것이다. 여타 생필품 가격도 아직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기존의 정책금리 인상 기조는 이어나가는 것이 옳을 듯하다. 다만 향후 대내외 경기 여건의 불확실성이 워낙 큰 만큼 상황을 좀 더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각국 정부와 기업의 노력으로 이번 사태로 인한 부정적인 효과를 결국 만회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인 측면에서 이번 사태는 과거의 자연재해와는 그 의미가 다르다.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에서 대체하기 어려운 핵심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세계 유동성 공급의 주요 주체 중 하나인 일본이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일본 동북대지진의 여파는 장기화될 것으로 보이며, 우리에게는 부품·소재 조달난, 금융불안의 파급이라는 리스크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가능성은 낮으나 일본의 핵재앙으로 일본 및 세계경제가 위축되고 국제금융시장도 일대 혼란을 겪는 파국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번 일본대지진의 리스크가 기존의 유럽재정 위기, 국제원자재 파동과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모니터링하면서 대비하는 자세도 필요할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이번 지진으로 인한 아시아 역내 제조업 분업구조의 재편 방향을 지켜보면서 발빠르게 대응하는 적극성 또한 중요할 것이다.
[LG경제연구원 이지평 수석연구위원 · 배민근 책임연구원 · 윤상하 책임연구원 www.lgeri.com]
<재난포커스(http://www.di-focus.com) - 유상원기자(goodservice@di-f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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