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3월 10일 오후 4시쯤 서울 종로구 종로5가 동대문역과 종로5가 역을 잇는 지하 5m 깊이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동화은행 종로 5가 지점 근처 지하 58번 통신구 안에 설치된 광케이블에서 난 불은 전국적인 통신두절 사태를 빚었다.
수도권과 전국 대부분의 지역을 잇는 통신케이블 화재로 인한 파장은 순식간에 확산됐다. 서울 전역과 수도권 일부의 시내전화, 시외전화는 물론이고 국제전화, 이동전화, 팩시밀리, 컴퓨터통신까지 모든 종류의 통신이 마비됐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입출금과 송금 등 주요 업무가 마비됐고, CBS와 MBC의 방송 송출이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겉으로 보이는 피해 내용은 서울시내 7만여가구의 시내전화와 110여만명의 무선호출 서비스가 불통, 서울, 경기, 강원지역의 15만4900여회선의 마비 등이었지만 사람들이 체감하는 피해는 더욱 컸다. 보안시스템이 마비된 업체는 일일이 가입자를 찾아다녀야 했고, 고객들의 전화 주문에 의존하던 상가들은 매상이 뚝 떨어져 피해를 호소했다. 화재로 인한 2시간가량의 지하철 운행 중단 역시 시민들이 겪은 불편이었다. 통신이 사람들의 일상에 자리 잡기 시작한 시점에서 급작스러운 통신망의 마비가 가져다 준 불편은 9만대의 통신 불통 이상이었다.
피해 규모뿐만 아니라 사건 발생 초기에는 화재 원인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고 초동대처도 늦어 많은 비판을 받았다. 통신 선진국이라 자처하기에 부끄럽다는 목소리가 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피해 복구에 있어서는 다른 여느 나라에서 발생한 유사사례보다 발빠른 대처를 보였다. 당시 복구에 걸린 시간은 85시간 50분으로 유사한 사고인 도쿄 센터가야 전화국 지하 케이블 화재나 뉴욕 지하터널 화재 사건에 비해서 매우 짧았다.
종로구 광케이블망 화재로 우리나라 통신 시설의 문제점에 대한 점검과 대안을 마련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우선, 당시 화재가 난 케이블은 혜화전화국 담당이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이동 통신 전용회선 등 주요정보 통신망이 혜화전화국과 구로전화국 두 통신시설에 밀집돼 있었다. 전용회선이 한곳에 집중돼 있을 경우 작은 사고가 나더라도 미치는 피해범위는 광범할수밖에 없다.
이수운기자 per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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