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이슈]슈퍼컴퓨터 `왓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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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일 독일 하노버에서 폐막한 정보통신 전시회 ‘세빗 2011’. 4000여 업체가 참가해 열띤 신기술 경연을 벌였다. ‘IT붐’이 최고조에 달했던 2000년대 초반 전성기에 비해 위상이 많이 떨어졌지만 참가업체와 전시장 규모로는 세계 최대였다.

 조용한 전원 도시인 하노버도 전시 기간만은 축제 분위기였다. 이번 전시회에는 좀 특별한 손님이 방문해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바로 IBM이 개발한 슈퍼컴퓨터 ‘왓슨(Watson)’이다. 왓슨은 세빗 개막식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새뮤얼 팔미사노 IBM 회장과 나란히 등장할 정도로 VIP대우를 받았다. 왓슨을 전시한 IBM부스는 연일 관람객이 북적일 정도로 유명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왓슨을 만나다=IBM부스 중앙에 전시한 왓슨은 그저 평범하고 네모난 박스였다. 왓슨이라는 설명이 따라 붙지 않으면 컴퓨터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작동 원리도 컴퓨터와 유사했다. 사람이 입력하면 반응하는 식이다. 초보적인 기본 대화도 불가능하다. 사실 왓슨과 거창한 대화 정도는 아니더라도 초보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기대했지만 꿈에 불과했다. 기껏 제퍼디 쇼에서 어떻게 왓슨이 데이터를 조합하고 분석해 내는지를 좀 더 기술적으로 확인했을 뿐이다. 인공 지능이라는 거창한 수식어가 붙지만 성능이 뛰어난 컴퓨터 수준이었다.

 그러나 왓슨이 누군가. 올해 초 미국 유명 퀴wm쇼 ‘제퍼디’에 출현해 2명의 퀴즈 챔피언을 모두 물리친 주인공이다. 제퍼디 쇼는 세 번의 라운드 형태로 진행하는데 배정된 문제를 사회자가 읽어 주고 퀴즈 도전자는 빠른 시간 안에 버저를 눌러 정답을 맞히면 점수를 얻는다. 제퍼디 쇼는 단순히 단답형 질문이 아니라 속어와 비어는 물론이고 문맥을 틀어서 질문하는 경우가 많아 다방면의 지식과 정확한 요점을 찾지 못하면 헷갈리기 십상이다. 가령 정답이 ‘시카고’라면 미국 북동부에 있는 국제 공항이 있는 도시라고 평범하게 질문하기 보다는 2차 세계대전 영웅의 이름을 딴 공항이 있는 미국 도시라는 식으로 해설을 달아 주는 식이다.

 왓슨은 아직 음성 인식이 불가능해 질문을 다시 텍스트로 바꿔 입력해 이를 인식하는 형태로 퀴즈쇼는 진행됐다. 왓슨은 질문과 동시에 버저를 울리도록 프로그래밍돼 항상 먼저 답변하는 기회를 얻었다. 실제로 왓슨은 사회자가 문제를 다 읽기 무섭게 버저를 눌렀다. 간혹 엉뚱한 오답도 있었지만 결국 74회 연속 우승자 켄 제닝스를 따돌리고 7만7140달러의 상금을 확보했다. 당시 컴퓨터가 인간을 이겼다고 미디어에서는 연일 대서특필했다.

 ◇왓슨 경쟁력은 분석과 추론 능력=왓슨은 냉장고 10대 크기의 15테라바이트 메모리를 내장한 슈퍼컴퓨터다. 최고급 PC가 두 시간에 걸쳐 풀 수 있는 문제를 2~3초 내에 연산할 수 있는 능력이다. 저장 공간은 4테라바이트에 달한다. 200만 페이지를 3초 안에 검색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정보 처리 면에서는 더 이상 따라 올 수 있는 강자가 없는 셈이다. 물론 이는 수치상 보는 왓슨의 겉모습이다.

 왓슨이 뛰어난 데는 이를 활용한 분석 능력에 있다. 수학·과학·인문학에 걸친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저장해 4단계의 연산 과정을 거쳐 정답을 추론해 낸다. 사람처럼 메모리에 저장된 정보를 기반으로 데이터를 조합해 가장 적당한 해법을 추론해 낸다. 키워드를 집어넣으면 적당한 정보를 찾아 주는 인터넷 검색과 또 다른 방법이다. 왓슨이 다른 컴퓨터와 비교하기를 거부하는 데는 이처럼 인간과 비슷한 추론 능력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IBM팀은 수백만건의 문서를 입력해 지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책·논문·백과사전·소설·성경·희곡 등 인간이 접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참고 서적을 집어넣었다.

 무엇보다 왓슨은 데이터 분석 능력을 높이기 위해 질문하고 응답하는 QA알고리즘을 개선했다. 단순한 QA시스템으로는 효과를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왓슨은 100개 이상의 알고리즘을 동시에 사용해 질문을 분석하고 수백가지 해법을 만들어 낸다. 또 다른 알고리즘이 개연성에 따라 답변의 순서를 정한다. IBM은 이를 ‘심층 질문 시스템(Deep question answering)’이라고 불렀다.

 IBM 측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수십 개의 알고리즘이 같은 답변에 도달하면 이게 정답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며 “결국 매우 많은 경우의 수를 계산한 다음 이를 평가해 순위를 매기고 질문에 가장 정확한 해답을 찾는 원리”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사람처럼 묻고 답하는 알고리즘을 구축한 것이다.

 ◇토머스 왓슨, 딥 블루 그리고 왓슨=슈퍼컴퓨터 왓슨은 2007년 IBM 데이비르 페루치 연구팀이 개발에 착수해 초보 모델을 완성했다. 사람 나이로 따지면 네 살인 셈이다. 왓슨이라는 작명도 흥미롭다. 왓슨은 IBM 창업자 이름이다. IBM을 세운 토머스 왓슨(Thomas J Watson)에서 따왔다. ‘빅 블루’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IBM은 메인프레임에서 퍼스널 컴퓨터까지 IT의 산증인이나 마찬가지다. 왓슨은 그만큼 세계 최고의 컴퓨터 기업이 최고의 기술력을 집약하겠다는 자신감에서 출발했다.

 IBM은 왓슨에 앞서 ‘딥 블루’라는 컴퓨터를 개발하며 슈퍼컴 시대를 열었다. 딥 블루가 왓슨의 아버지인 셈이다. 딥 블루는 세기의 체스 대결로 유명세를 탔다. 1997년 5월 러시아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와 체스 대결에서 이기면서 컴퓨터의 우수함을 알렸다. 딥 블루에 지기 전까지 카스파로프는 15년 동안 세계 체스 경기에서 1등을 놓쳐 본 적이 없었다. 딥 블루를 더 발전시킨 게 바로 왓슨이다. 계산과 추론 능력을 수십 단계 개선했다.

 사실 체스는 정해진 게임 규칙이 있기 때문에 예측이 가능하다. 다음 수를 어떻게 두면 그 다음에 상대의 반응에 따라 또 다른 수를 예상하는 식이다. 빠른 계산만 할 수 있고 어느 경우에 이기는지만 입력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한 마디로 딥 블루의 최대 강점은 빠른 계산 능력이다. 왓슨은 다르다. 제퍼디 쇼도 같은 게임이지만 체스와 분명히 다르다. 인간처럼 추론해서 정답을 찾아야 한다. 물론 일부에서는 제퍼디 쇼가 수십년 동안 출제한 문제집을 모두 저장해 놓는다면 우승이 가능하다고 폄하한다. 분명한 점은 왓슨은 단순한 정보 저장과 빠른 프로세서 능력 못지않게 스스로 문맥을 유추하고 해답을 찾았다는 점이다. 키워드를 입력했을 때 수많은 정보를 찾아 주는 인터넷 검색과 다르다. 그런 면에서 왓슨의 능력은 분명 놀랍다.

 ◇왓슨의 미래는=왓슨이 계속 진화한다면 정말 사람의 능력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직 컴퓨터는 인간과 많이 다르다. 무엇보다 컴퓨터는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처럼 질문을 하면 정확한 의도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유사해 보이는 수백만개를 찾아서 나열해 주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바로 컴퓨터다.

 2011년 새해, 왓슨은 컴퓨터가 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벽을 뛰어넘어 주목을 받았다. 그럼 왓슨의 후손은. 왓슨이 아버지 격인 딥 블루를 훌쩍 뛰어넘은 것처럼 왓슨의 아들은 정말 인간과 유사한 인공 지능 컴퓨터로 탄생할까. 제퍼디 쇼에서 졌던 켄 제닝스가 게임에서 진 뒤 “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하기 시작했다”고 한 말은 과연 맞는 이야기일까. 사실 미래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분명한 점은 기술은 계속 진화하고 이와 맞물려 컴퓨터 성능은 비례해 더욱 올라가고 있다. 기술이 빠르게 진화하다보면 결국 사람을 뛰어넘는 컴퓨터가 나올 수 있다는 추론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실제로 우리는 이미 많은 부분을 컴퓨터에 의존하고 있다. 과거 일일이 기억 속에 저장해야 했던 정보를 이제는 인터넷으로 간편하게 찾을 수 있으면서 사람의 암기 영역이 크게 줄었다. 스마트폰이 수첩과 백과사전을 대신하고 전자계산기가 암산을 대신하는 등 일부 사고 기능도 대체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제 아무리 뛰어난 컴퓨터도 이를 만든 주인공은 사람이다. 아직도 컴퓨터가 뛰어 넘지 못하는 고유의 능력이 있다. 바로 사유하는 능력이다. 컴퓨터를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용할지는 최종 판단은 사람의 몫이다. 생각과 깊이에 따라 얼마든지 창조적일 수 있는 게 바로 사람이다.

 그래도 불안하다면 잠시 백설공주 동화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백설공주 이야기의 흥미로운 조연 중의 하나는 마녀의 거울이다. “거울아, 거울아” 외치면서 세상에서 제일 미인을 알려달라고 하면 이를 곧바로 보여 준다.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해 정답을 찾아서 보여 주는 원리가 왓슨과 비슷하다. 마녀가 거울에 전적으로 의존하더라도 거울은 거울일 뿐이다. 거울이 맘에 들지 않으면 좀 과격하지만 깨버리면 그만이다.

 세빗 개막식에 참석한 새뮤얼 팔미사노 IBM 회장은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왓슨을 소개하며 “왓슨은 사람과 같은 뇌를 가지고 있어 원하는 답을 찾아낼 수 있는 컴퓨터”라며 “질병과 관련된 데이터를 입력하면 의료와 헬스케어 분야에서 엄청나게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아직은 컴퓨터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수많은 도구의 하나라는 이야기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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