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예상된 재해에만 대처할 수 있는 DR 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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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재해복구(DR) 취재를 위해 금융권과 IT업체의 여러 재해복구(DR) 담당자를 만났다. 취재를 하는 동안 한 가지 혼란스러웠던 것은 한국씨티은행의 전산시스템 마비 사고를 바라보는 이들의 시각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쪽에서는 이른바 글로벌 은행이라는 씨티은행이 낡은 전산센터의 결함으로 모든 업무가 마비됐다는 사실과 24시간이 지나서야 원상복구가 됐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큰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이 사건으로 고객이 겪었던 불편과 한국씨티은행의 이미지 손실은 돌이킬 수 없는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에 비해 한국씨티은행을 칭찬하는 쪽도 있다. 비록 금융감독원의 3시간 복구지침을 준수하지는 못했지만 국내에서 이 같은 대형 사고로 DR시스템을 가동시킨 사례가 없는데도 무사히 시스템을 원상 복구한 상황대처 능력은 칭찬받을 만하다는 것이다. 실제 상황이 벌어졌을 때 한국씨티은행만큼 DR체계가 가동되는 곳이 과연 몇 곳이나 될지는 의아스럽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런데 이렇게 엇갈리는 의견 중에서도 한 가지 공통적인 얘기가 있었다. 바로 국내 기업이 실제와 같은 수준의 DR 모의훈련을 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한국씨티은행이 3시간 복구지침을 지키지 못한 것도 결국 실제 상황에서의 훈련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금감원은 1년에 2회 이상 DR 모의훈련을 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문제는 이 모의훈련이 미리 예고된 날짜나 기간에 진행된다는 점이다. 한 은행 관계자에 따르면 어느 날 불쑥 예고 없이 모의훈련을 진행하게 되면 출장이나 교육을 간 사람 등으로 인력운용이 어렵다고 한다. 이에 따라 ○일 ○시까지는 아니더라도 ○주 또는 ○일경 DR훈련을 할 것이라고 사전에 정보가 주어진다고 한다.

 미리 준비된 상태에서 훈련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재해가 예고를 하고 찾아오지 않는다. 실제로 재해 발생 시 관계자가 부재 상태일 수도 있다. 그런 경우마저 대비해야 하는 것이 재해복구 훈련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는 재해의 대전제를 무시한 DR 체계는 결국 실제 상황에서는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취지는 무색해지고 비용과 시간을 낭비하는 형식적 예비군 훈련과 같은 것이다. DR에 대한 보다 현실적이고 근본적인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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