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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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는 1996년 6월 5일 여의도 광장에서 중소기업 관계자 2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신경영실천대회 및 개인휴대통신(PCS)사업 설명회`를 개최했다.

 -PCS 비제조업군 합종연횡

 

 이권을 비켜갈 기업은 없었다. 1996년은 가히 ‘PCS춘추전국시대’라고할 만했다.

 통신장비 비제조업군의 경쟁구도는 기업 간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으로 혼전의 연속이었다.

 비제조업군에 속한 1만5000여개의 각기 다른 길을 걷는 중견·중소기업들은 3개의 컨소시엄에 참여했다. 컨소시엄 구성에 합의한 기업들이 막판에 이를 뒤집고 파트너를 바꾸기도 했다. 신의나 명분보다는 이익을 위해 ‘동지와 배신’도 불사했다.

 이런 복잡다기(複雜多岐)한 과정을 거쳐 비제조업군의 경쟁은 3자 대결로 압축됐다. 한솔-데이콤 컨소시엄(한솔PCS)과 금호-효성컨소시엄(글로텔),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그린텔, 현 중소기업중앙회)의 3파전이었다.

 한솔-데이콤 컨소시엄인 한솔PCS에는 302개 기업이 참가했다.

 한솔그룹은 처음 PCS와 국제전화사업 참여를 동시에 검토하다가 1996년 1월 23일 PCS사업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한솔 관계자인 A씨의 증언.

 “처음에는 국제전화사업 참여에 무게를 두었어요. PCS사업에 비해 초기투자비용이 적고 투자에 비해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보통신사업을 그룹의 주력업종으로 육성한다는 방침에 따라 국제전화 대신 PCS사업에 참여키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나중에 조동만 한솔부회장(현 한솔아이글로보회장)이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의 비자금을 관리해 준 사실이 드러나 ‘사전내락설’이 나돌기도 했어요.”

 한솔은 정보통신사업단 내에 있던 국제전화사업추진팀을 해체해 PCS추진팀과 통합했다.

 여기에 18개 계열사의 전문인력을 추가 영입해 인력을 종전의 53명에서 72명으로 늘렸다.

 한솔은 2월 17일 정보통신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정보통신사업단 공동단장제를 도입하기로 하고 정용문 한솔기술원 원장(삼성전자 정보통신부문 대표, 한솔PCS 사장 역임)을 정보통신사업단 단장에 선임했다. 정 단장은 기술 및 연구개발 부문을 담당하고 지난해 6월부터 정보통신사업단 단장직을 맡아온 구형우 한솔제지 사장(한솔그룹 부회장 역임, 현 페이퍼코리아 회장)은 기획·관리·자금부문을 전담하기로 했다.

 한솔PCS 컨소시엄에는 굵직한 그룹들이 주주로 참여했다. 아남산업과 고합그룹에 이어 한화그룹의 한화전자정보통신이 3월 15일 주주로 가세했다. 한화전자정보통신은 LG, 삼성, 대우 등과 함께 국내 교환기사업을 이끌어온 통신기기 제조업체로 PCS용 CDMA방식 시스템을 개발 중이었다. 3월 19일에는 쌍용그룹이 한솔 PCS 컨소시엄에 참여했다.

 한솔은 3월 22일 서울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PCS 컨소시엄 출범식을 가졌다.

 정용문 단장은 인사말에서 “한솔은 차세대 주력사업으로 정보통신사업을 선정, 오랜 기간 동안 만반의 준비를 해왔다”며 “국내유수의 중견·중소기업이 주주로 참여하는 최상의 컨소시엄을 구축한 만큼 반드시 사업권을 획득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출범식은 한솔PCS 사업설명회, 컨소시엄 출범식 및 오찬 순서로 약 3시간 동안 진행됐다.

 데이콤은 3월 28일 한솔PCS컨소시엄에 참여했다. 당초 데이콤은 금호와 짝짓기를 진행했다. 그러나 막판에 한솔이 파트너를 데이콤으로 바꾸고 한솔과 결별한 효성은 금호와 손을 잡았다. 한솔-데이콤, 효성-금호는 불과 며칠 전까지만해도 한솔-효성, 금호-데이콤 간 양사 대표끼리 구두합의까지 했었다.

 한솔과 효성, 금호 등 3사는 각자가 데이콤을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했으나 데이콤이 ‘동등한 경영권 보장, 수도권 사업지역 보장’이라는 조건을 제시해 협상이 난항을 거듭했다.

 데이콤 관계자 B씨의 말.

 “데이콤의 조건은 ‘법과 제도가 허용하는 시기와 범위 내에서 데이콤이 추가로 10%의 지분을 확보하고 한강 이북 수도권과 부산·경남의 영업권을 갖는다’는 것이었어요. 나중에 한솔이 이런 조건을 수용했습니다.”

 효성-금호 컨소시엄인 ‘글로텔’은 4월 3일 오전 서울 롯데호텔에서 출정식을 가졌다.

 김인환 효성텔레콤 사장(효성중공업 사장 역임, 작고)과 박재하 금호텔레콤 사장(청와대 국방비서관, 모토로라코리아 사장·부회장 역임, 현 모토로라코리아 고문,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날 참여업체들과 주주계약을 체결했다. 대우그룹은 자체 PCS사업권 경쟁을 포기하고 효성-금호 컨소시엄에 5% 주요주주로 참여했다.

 효성-금호는 4월 10일 법인명을 ‘글로텔’로 확정하고 초기 자본금 규모는 소요설비투자와 총자본을 포함, 2000억원으로 결정했다.

 박재하 금호텔레콤 사장의 증언.

 “컨소시엄 명칭은 글로벌기업이라는 의미에서 제가 ‘글로텔’을 주장했는데 효성이 좋다고 해서 그렇게 작명을 했습니다. 데이콤도 컨소시엄에 참여하기로 논의를 했는데 막판에 한솔PCS로 갔어요.”

 효성-금호 컨소시엄은 글로텔 사업 개시 후 1998년 하반기에 중소기업, 특히 통신장비 및 통신서비스 관련업체에 액면가 공모를 통해 10%의 지분을 할애해 중소기업 참여폭을 확대하고 대주주 지분은 초기의 36%에서 32.7%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글로텔에는 대우그룹, 대영전자, 조흥은행, 하나은행 등 주요주주 19개사와 에디슨전자, 이화전기, 국제전산 등 소액주주 510개사 등 533개 업체가 참여했다. 홍콩의 허치슨도 주주로 참여시켰다.

 박 사장의 말.

 “허치슨은 5%로 컨소시엄에 참여키로 했습니다. 사업계획서 작성을 위해 홍콩 허치슨에 가서 기지국을 둘러보고 관련 자료를 얻어 왔습니다.”

 글로텔은 5월 10일 오전 힐튼호텔에서 컨소시엄 참여업체들을 대상으로 ‘PCS 사업계획 보고회’를 개최했다.

 글로텔은 보고회에서 서비스 가격은 현재 이용되는 이동전화 통화료의 50%에서 정할 것이며 2002년까지 시장점유율 35% 이상, 매출액 1조3000억원을 실현하는 한편 앞으로 5년간 기술개발을 위해 25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글로텔은 금호의 전문인력 70여명과 효성의 60여명 등 130여명으로 경기도 안양에 있는 효성연수원에서 사업계획서를 작성했다.

 박 사장의 설명.

 “당시 금호에는 아시아나 항공에 SW개발인력이 있었습니다. 당시 박성용 그룹 회장(작고)이 적극적이었습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현 중소기업중앙회)도 PCS컨소시엄(그린텔)을 구성해 사업권에 도전했다. 그린텔에는 1만4000여개의 중소기업들이 참여했다. 개미군단의 도전이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1995년 12월 16일 총자본금 2000억원으로 하는 컨소시엄을 1996년 3월 말까지 구성해 4월에 사업허가신청서를 제출한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중앙회는 1996년 2월 10일 PCS사업단장에 성기중 전 포스데이타 사장을 영입했다. 성 단장은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한 후 교편을 잡다가 포항종합제철에 입사했다. 포철 정보통신담당 부사장을 역임한 그는 포철이 제2이동통신사업에 착수한 1991년 이동통신추진반을 맡은 경험이 있었다. 그는 정보처리응용학회 초대 회장도 지냈다. 당시 그는 미국에서 최고경영자과정을 밟고 있었다.

 성기중 단장의 회고.

 “미국에서 공부가 끝날 무렵 박상희 중앙회장이 지인을 통해 스카우트 제의가 왔어요. 포철에서 이통사업을 추진한 경험을 샀던 것이죠. 그린텔은 주요 주주 등 7~8명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에서 작명을 했습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3월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서 PCS 컨소시엄에 출자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PCS 사업설명회 및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그린텔은 5월 17일 오전 PCS사업 추진팀과 컨소시엄 참여 13개 경영주도주주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주요주주회의를 열어 그간의 사업추진 현황을 점검하고 전략 등을 협의했다.

 이어 20일부터 나흘간 청문평가에 대비, 성기중 단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모의청문회도 열었다. 21일부터 대구, 광주, 부산, 대전 등에서 열리는 지역별 사업설명회 및 결의대회를 통해 지역 주주사들에 대한 사업추진 설명과 함께 사업권 획득을 위한 의지를 다짐했다. 그린텔은 미 넥스트웨이브가 CDMA용으로 개발한 텔레디자인을 무선망 설계도구로 채택하기도 했다.

 성 단장의 증언.

 “서울 여의도 중앙회 2층에서 사업계획서를 작성했습니다. 기지국 설계 등 기술분야에 20여명의 전문인력이 작업을 했어요. 일반서류 작업은 중앙회 직원들이 담당했어요. 수시로 대규모 결의대회를 연 것은 일종의 시위성격이 강했습니다. 중소기업을 배려하라는 것이죠.”

 중소기업중앙회는 6월 5일 오전 여의도 광장에서 PCS사업 컨소시엄 구성 주주사 및 중소기업 관계자 2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신경영 실천대회 및 PCS사업설명회를 개최했다.

 이 행사는 중앙회의 PCS사업체인 그린텔의 1만4000여 주주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간의 사업추진과정과 향후 사업계획에 대한 설명을 듣고 통신사업 진출에 대한 중소기업인들의 염원을 보여주기 위해 마련했다.

 성기중 PCS사업단장은 경과보고에서 “중소기업의 독자적 PCS사업 참여에 대한 정부의 부정적 견해가 사업추진의 최대 위기였다”며 “이를 1만4295개사로 구성된 대규모 컨소시엄을 통해 극복했다”고 말했다.

 그린텔 관계자 C씨의 말.

 “박상희 중앙회장이 5월 17일 중소기업 대표들과 함께 구본영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과기처장관 역임)을 면담, 1만4000여 중소기업들이 참여한 그린텔에 대한 여론을 감안해줄 것을 요청했어요.”

 재계의 PCS사업권 도전은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였다. 스타트라인에 서려는 기업과 단체들은 사생결단의 의지를 불태웠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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